북녘을 마주한 백령도…숨비소리 울리다

해녀 김호순씨
백령도 해녀 중 '상군 중의 상군'
물 속서 잠수 익히다 해녀로 성장
점박이물범, 오리발 잡은 일화도

해남 윤학진씨
선장 역할 하다 10년 전 물질 시작
김호순씨 사위, 백령도 유일한 해남
장모에게 작업 노하우 전수받아

과거 없던 참소라·남해 어종 출현
대이은 터전 '바다'…변화에 걱정

[섬, 하다] ① 영토의 최전선, 백령도 해녀의 삶을 기록하다
▲ 인천 옹진군 백령도·연평도·문갑도 3개 섬에 대한 기사가 공개됐으며 지도에는 추후 공개 예정인 대청도·소청도, 굴업도, 자월도, 덕적도, 대이작도 등 총 8개 섬이 함께 표시돼 있다. 섬마다 해녀·점박이물범·꽃게·풍산개·독공장 등 아이콘을 배치해 각 섬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인천 옹진군 백령도·연평도·문갑도 3개 섬에 대한 기사가 공개됐으며 지도에는 추후 공개 예정인 대청도·소청도, 굴업도, 자월도, 덕적도, 대이작도 등 총 8개 섬이 함께 표시돼 있다. 섬마다 해녀·점박이물범·꽃게·풍산개·독공장 등 아이콘을 배치해 각 섬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가의 3대 요소 중 하나는 영토다. 섬은 영토의 최전선에 있다. 그럼에도 섬은 주변부로 취급돼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섬에 대한 정보는 흩어져 있었고, 생활·어업·환경 변화는 기록되지 못했다.

우리는 그들의 '삶'에 집중했다. 섬에 살면서 소외받고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주민과 함께 기록하고자 인천일보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섬, 하다' 라는 기획을 시작했다.

기획 이름 속 '하다'는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기록과 기억, 동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섬을 기록하다, 섬을 기억하다, 섬을 여행하다, 그리고 섬과 함께한다는 의미다. 이번 기획은 기자들이 그 섬들에 머물며 눈으로 보고, 발로 걸으며 삶과 변화를 기록한 이야기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는 북녘을 마주한 채 물질을 이어가는 해녀와 멸종위기 점박이물범, 그리고 주민들이 즐겨 먹던 백령 냉면의 기억까지 섬의 자연과 삶을 함께 기록했다.

연평도에서는 꽃게가 줄어든 바다를 지키는 어민과 멸종위기 저어새, 그리고 여전히 포격의 기억이 남아 있는 흔적들을 취재진이 따라갔다.

문갑도에서는 한때 '새우 파시'라 불릴 만큼 많았던 새우를 보관한 새우젓 독공장과 전통 어업 방식인 '사닥 틀'처럼 삶 속에서 사라져가는 기억과 남겨야 할 흔적을 담았다.

'섬, 하다'는 단순한 르포를 넘어 섬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모색하는 여정이다. 백령도를 시작으로 우리는 인천의 섬들을 차례로 찾아가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바다가 전하는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할 것이다.

<섬, 하다> 특별취재팀

사진영상부 양진수 부장, 이재민·이호윤 기자, 양민섭 PD, 조연우 인턴기자, 디지털미디어부 정회진·이나라 기자


▲ 서해 최북단 백령도 앞바다 해녀 김호순(77) 씨가 사위 윤학진씨를 바다에서 만나 이야기를 한다. 이들은 제주도 방언으로 이야기 한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서해 최북단 백령도 앞바다 해녀 김호순(77) 씨가 사위 윤학진씨를 바다에서 만나 이야기를 한다. 이들은 제주도 방언으로 이야기 한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호오이. 호오이.”

지난 6월 23일 오전 9시쯤 인천 옹진군 백령도 두무진항에서 15분 떨어진 바닷가. 구름 한 점 없고, 파고도 없는 고요한 바닷가에서 숨비소리를 내며 평화롭게 물질하는 해녀 김호순(77) 씨가 있다.

숨비소리는 잠수로 숨을 참다가 물 밖으로 나올 때 참았던 숨이 한 번에 터져 나오며 생기는 소리다. 깊게 잠수할수록 그 소리는 더욱 크다.

해녀가 있는 바다 저 뒤에는 북한 땅이 희미하게 보였고, 서해 북방한계선을 수호하는 군함도 떠 있었다.

가마우지와 검은머리물떼새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김씨가 모는 배는 '파랑새 1호'. 그 배에는 그의 사위이자 백령도 유일한 해남인 윤학진(50) 씨가 타고 있었다. 검은색 잠수복을 입은 김씨의 오른손에는 채취 작업에 쓰는 갈고리가 들려 있었고, 몸에는 망태기가 달려 있었다.

김씨는 물속에서 10초 넘게 잠수한 뒤 잡은 성게와 해삼, 보말을 망에 넣었다. 해산물에다 물 무게까지 더해져 무거워진 망을 배 위에 있는 윤씨가 힘껏 끌어올린다.

이어 김씨가 물속으로 다시 잠수하는데, 그 모습을 사위이자 제자인 윤씨는 흐뭇하게 바라봤다.

▲ 서해 최북단 백령도 앞바다 해녀 김호순(77) 씨가 바다속에서 건져올린 성게를 보여주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서해 최북단 백령도 앞바다 해녀 김호순(77) 씨가 바다속에서 건져올린 성게를 보여주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백령도 바다와 물범이 먼저 알아본 해녀

서쪽 가장 끝 섬, 백령도. 그 섬에 해녀와 해남이 총 5명이 있다. 해녀는 4명, 해남은 1명. 몇 년 전만 하더라도 20여 명에서 5명으로 줄었다. 많지 않은 해녀 중 단연 '상군 중의 상군' 해녀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김호순 씨다.

해녀 김씨의 고향은 제주도다. 어렸을 때부터 그의 주변은 온통 바다였고, 물속에서 술래잡기하며 잠수를 익히다 해녀가 됐다.

“제주도에서 작업할 때 채취량 기준 어머님이 1등이면, 2등 해녀와 실력 차이가 크게 벌어져요. 어머님이 10개를 잡으면 다른 해녀는 3개밖에 못 잡았죠. 검은 잠수복 입고 수영하고 다니시는 거 보면 진짜 물개예요, 물개.” 윤씨는 장모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 김씨가 제주도에서 백령도로 오게 된 건 40여 년 전. “백령도에 물건이 많다”는 이야기에 터를 잡았다. 사람의 발길과 손길이 덜 닿은 덕분일까.

백령도 바다에는 성게, 해삼, 전복, 보말, 가리비 등이 풍부하고, 냉수대 영향으로 다시마와 미역 같은 냉수성 식물도 많다. 다시마 두께도 두꺼워 품질이 좋아 식감이 뛰어나다.

백령도에서 물질을 하다 겪은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몇 년 전 두무진항 인근에서 김씨는 평소처럼 잠수복을 입고 물속에서 성게와 보말을 채취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오리발을 잡는 느낌이 들었는데, 바로 점박이물범이었다고 한다.

“잠수복 색깔이 검정색이라 어머님을 물범들이 동료로 착각해 장난을 친 것 같아요.” 윤씨는 웃으며 회상했다.

▲ 사위 윤학진(50)씨는 본인이 물질을 하지 않을 때 장모님의 다음 작업을 위한 준비를 한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사위 윤학진(50)씨는 본인이 물질을 하지 않을 때 장모님의 다음 작업을 위한 준비를 한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지켜야 할 바다, 이어가야 할 삶

어머니의 바다 생활은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2010년 그의 막내딸 부부도 백령도로 입도했고, 바닷일을 배우던 막내사위는 10년 전 해남이 됐다. 백령도 유일한 해남이다.

윤씨는 처음에 장모를 따라다니며 배를 조종하는 선장 역할을 했다.

바다 위에서는 깊은 물속에 들어가 작업하는 장모의 공기 공급줄을 잡았고, 육지에서는 어머니가 따온 미역을 엮고 성게를 손질했다.

백령도 바닷속 지형을 가장 잘 아는 장모를 자랑스러워하던 윤씨도 자연스럽게 잠수를 시작하게 됐다.

좋은 스승 덕분에 윤 씨의 실력도 나날이 늘어갔다.

“어머님은 바다에서 여기 가면 뭐가 있고, 저기 가면 뭐가 있는지 바닷속 사정을 다 알아요. 어머님이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를 제가 물려받게 됐죠. 제게 좋은 스승입니다.”

어머니의 대를 이어 바다를 터전으로 사는 사람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바다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그대로지만, 바다는 점차 변화하고 있다.

“백령도에는 삐뚤이소라가 많았는데 최근엔 보이지 않던 참소라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참소라는 뻘에서 사는 수산자원인데 이제 바다가 뻘로 덮였다는 뜻이죠. 남해 쪽에 사는 돔 종류도 한 마리씩 보이기 시작했고요.”

▲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점박이물범(Phoca largha)이 지난 6월 24일 인천 옹진군 백령면 두무진항 인근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모습.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점박이물범(Phoca largha)이 지난 6월 24일 인천 옹진군 백령면 두무진항 인근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모습.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점박이물범이 평화롭게 먹이활동을 하고, 다시마가 자라는 백령도 바다. 그 바다를 가족처럼 여기는 해녀와 해남은 변해가는 바다 환경을 조심스레 걱정하고 있었다. 거센 바람에도 변해가는 물속 생태에도 사람은 여전히 바다로 향한다. 어머니의 숨비소리, 사위의 손길, 그리고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 그것이 백령도다. 그들이 지키는 바다에서 내일의 또 다른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백령도=정회진 기자 hijung@incheonilbo.com


[섬, 하다] ① 영토의 최전선, 백령도 해녀의 삶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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