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온 ‘상군 해녀’ 김호순 씨, 백령도 바다와 함께한 40년
사위에게도 이어진 숨비소리…백령도 해남·해녀가 들려주는 그들의 삶


“호오이. 호오이.”
2025년 6월 23일 오전 9시쯤 인천 옹진군 백령도 두무진항에서 15분 떨어진 바닷가. 구름 한 점 없고, 파고도 없는 고요한 바닷가에서 숨비소리를 내며 평화롭게 물질하는 해녀 김호순(77) 씨가 있다.
숨비소리는 잠수로 숨을 참다가 물 밖으로 나올 때, 참았던 숨이 한 번에 터져 나오며 생기는 소리다. 깊게 잠수할수록 그 소리는 더욱 크다.
해녀가 있는 바다 저 뒤에는 북한 땅이 희미하게 보였고, 서해 북방한계선을 수호하는 군함도 떠 있었다. 가마우지와 검은머리물떼새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김씨가 모는 배는 ‘파랑새 1호’. 그 배에는 그의 사위이자 백령도 유일한 해남인 윤학진(50) 씨가 타고 있었다. 검은색 잠수복을 입은 김씨의 오른손에는 채취 작업에 쓰는 갈고리가 들려 있었고, 몸에는 망태기가 달려 있었다.
김씨는 물속에서 10초 넘게 잠수한 뒤 잡은 성게와 해삼, 보말을 망에 넣었다. 해산물에다 물 무게까지 더해져 무거워진 망을 배 위에 있는 윤씨가 힘껏 끌어올린다.
이어 김씨가 물속으로 다시 잠수하는데, 그 모습을 사위이자 제자인 윤씨는 흐뭇하게 바라봤다.

▲ 백령도 바다와 물범이 먼저 알아본 해녀
서쪽 가장 끝 섬, 백령도. 그 섬에 해녀와 해남이 총 5명이 있다. 해녀는 4명, 해남은 1명. 몇 년 전만 하더라도 20여 명에서 5명으로 줄었다. 많지 않은 해녀 중 단연 ‘상군 중의 상군’ 해녀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김호순 씨다.
해녀 김씨의 고향은 제주도다. 어렸을 때부터 그의 주변은 온통 바다였고, 물속에서 술래잡기하며 잠수를 익히다 해녀가 됐다.
“제주도에서 작업할 때 채취량 기준 어머님이 1등이면, 2등 해녀와 실력 차이가 크게 벌어져요. 어머님이 10개를 잡으면 다른 해녀는 3개밖에 못 잡았죠. 검은 잠수복 입고 수영하고 다니시는 거 보면 진짜 물개예요, 물개.” 윤씨는 장모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 김씨가 제주도에서 백령도로 오게 된 건 40여 년 전. “백령도에 물건이 많다”는 이야기에 터를 잡았다. 사람의 발길과 손길이 덜 닿은 덕분일까. 백령도 바다에는 성게, 해삼, 전복, 보말, 가리비 등이 풍부하고, 냉수대 영향으로 다시마와 미역 같은 냉수성 식물도 많다. 다시마 두께도 두꺼워 품질이 좋아 식감이 뛰어나다.
백령도에서 물질을 하다 겪은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몇 년 전 두무진항 인근에서 김 씨는 평소처럼 잠수복을 입고 물속에서 성게와 보말을 채취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오리발을 잡는 느낌이 들었는데, 바로 점박이물범이었다고 한다.
“잠수복 색깔이 검정색이라 어머님을 물범들이 동료로 착각해 장난을 친 것 같아요.” 윤씨는 웃으며 회상했다.

“소라 종류만 봐도 백령도에는 삐뚤이소라가 많았는데 최근엔 보이지 않던 참소라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참소라는 뻘에서 사는 수산자원인데 이제 바다가 뻘로 덮였다는 뜻이죠. 남해 쪽에 사는 돔 종류도 한 마리씩 보이기 시작했고요.”
점박이물범이 평화롭게 먹이활동을 하고, 다시마가 자라는 백령도 바다. 그 바다를 가족처럼 여기는 해녀와 해남은 변해가는 바다 환경을 조심스레 걱정하고 있었다.
거센 바람에도 변해가는 물속 생태에도 사람은 여전히 바다로 향한다. 어머니의 숨비소리, 사위의 손길, 그리고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 그것이 백령도다. 그들이 지키는 바다에서 내일의 또 다른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백령도=정회진 기자 hijung@incheonilbo.com
인터랙티브 기사 링크: [섬, 하다] 숨비소리로 이어지는 삶…백령도 바다를 지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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