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진군 백령도 두무진항 인근 바다에서 먹이 활동하는 점박이물범 모습 포착
해녀를 동료로 오해한 점박이물범도…자연과 사람이 하나된 백령도

▲ 지난달 23일 인천 백령도 두무진항 인근 바다에서 점박이물범들이 먹이사냥을 하고 있다. /양진수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지난달 23일 인천 백령도 두무진항 인근 바다에서 점박이물범들이 먹이사냥을 하고 있다. /양진수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동글동글한 머리, 사슴처럼 까만 눈망울, 멋스럽게 드리운 흰 수염. 점박이물범들이 바다 위로 하나둘 머리를 내밀었다.

맑게 갠 하늘 아래 바다는 유리처럼 투명했고 까나리망 아래로는 부드럽게 물결이 흘렀다.

물범들은 마치 ‘두더지 게임’처럼 머리를 물 위로 불쑥 내밀었다가 다시 쏙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숨을 고르듯 무언가를 찾는 듯한 움직임은 빠르면서도 어딘가 익살스러웠다. 먹이를 쫓아 표류하듯 유영하는 그 모습은 자유로웠고, 망망한 수면 위에는 미동 없는 고요함이 흐르고 있었다.

파란 물결과 어우러진 점박이물범의 가죽은 햇살에 반사돼 반짝였다.

그렇게 평화롭고 경이로운 장면 속에서 취재진은 2025년 6월 23일 인천 백령도 두무진항 인근 바다에서 점박이물범의 ‘먹이 사냥’ 장면을 포착했다.

백령도 어민 윤학진(50)씨는 “점박이물범이에요. 열댓 마리 정도 되어 보이는데요. 까나리를 먹고 있나 봐요.”라고 말했다.

보통은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진 하늬해변 쉼터 바위 위에서 점박이물범들이 쉬는 모습만 간헐적으로 포착되곤 했지만 물속에서 직접 먹이를 사냥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확인한 것은 이례적이다.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될 만큼 전 세계에 서식하는 개체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검정색의 커다랗고 동그란 눈과 마주한 순간 느꼈던 감정은 단순한 신비로움을 넘어선 경이로움에 가까웠다. 마치 “날 보러 멀리서 왔구나”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돌아온 점박이물범, 백령도에 깃들다

▲ 인천 옹진군 하늬해변에서 보이는 점박이 물범, 점박이 물범들이 물이 빠지자 몸을 말리고 있다. /양진수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인천 옹진군 하늬해변에서 보이는 점박이 물범, 점박이 물범들이 물이 빠지자 몸을 말리고 있다. /양진수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크어엉, 끄르르르륵.”

2025년 6월 24일 바닷물이 빠지는 간조 시간에 맞춰 오전 10시쯤 찾은 백령도 하늬해변. 백령도 점박이물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점사모) 회원 6명과 함께 망원경으로 점박이물범을 모니터링하던 중 갑자기 동물이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날 모니터링을 진행한 문영희 점사모 회장은 “점박이물범들이 자리 다툼을 할 때 내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점박이물범은 주변 바다를 헤엄치다 바닷물이 빠지면 바위 위에 올라앉는다. 햇볕이 내리쬐면 그 위에서 몸을 말리기도 한다.

취재진이 해변에 도착했을 당시 망원경으로 확인한 점박이물범은 1~3호 바위에서 총 5마리가 관찰됐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물이 더 빠지자 개체 수는 최대 35마리까지 늘어났다.

백령도 내 점박이물범의 주요 휴식지는 총 세 곳으로 하늬해변과 연봉바위, 두무진이다.

2024년에 발간된 ‘백령도 점박이물범 주민 모니터링 5년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황해지역에 서식하는 점박이물범은 약 1500마리에 불과하며, 이 중 백령도에서는 최대 324마리가 관찰됐다. 

점박이물범은 봄에 백령도를 찾아와 늦가을까지 머문 뒤 중국 랴오둥만 등으로 이동해 겨울을 난다.

▲ 지난달 23일 인천 백령도 두무진항 인근 바다에서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등급 1등급인 점박이물범들이 먹이사냥을 하고 있다. 점박이 물범은 백령도 인근 바다에 약 300마리정도 관찰된다고 이야기 했다. /양진수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지난달 23일 인천 백령도 두무진항 인근 바다에서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등급 1등급인 점박이물범들이 먹이사냥을 하고 있다. 점박이 물범은 백령도 인근 바다에 약 300마리정도 관찰된다고 이야기 했다. /양진수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백령도 주민들 얘기를 들어보면 40~50년 전까지만 해도 백령도 해변 근처에서는 점박이물범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점박이물범은 주변에서 미역이나 조개를 캐는 주민이 있더라도 그들을 경계하지 않고 해변에 머물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점박이물범은 백령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후 2003년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듬해 백령도에서 점박이물범 실태조사가 시작됐다. 

이어 인천녹색연합과 주민들이 합심해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게 됐고, 그러면서 그때부터 사람과 점박이물범 사이의 공존이 다시 시작됐다.

점박이물범이 백령도를 다시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음숙 백령·대청지질공원 해설사는 “백령도 해안은 수산 자원이 풍부하다”며 “점박이물범은 까나리나 우럭, 놀래미를 주로 먹는데 1마리가 하루에 약 8~10㎏ 정도를 섭취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백령도 인근 대청도와 소청도 일대에서도 점박이물범의 서식이 확인되고 있다.

인천녹색연합이 지난 2024년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대청도와 소청도 일대에서 현장 조사를 실시한 결과, 23일에는 대청도 옆 갑죽도 해안에서 점박이물범 2마리가, 25일에는 소청도 등대 인근에서 2마리가 발견됐다.

문영희 회장은 “소청도 등대 바위 아래에서도 점박이물범을 볼 수 있다”며 “백령도를 찾았던 물범들의 서식 반경이 대청도까지 넓어진 것인지, 아니면 개체 수가 증가한 것인지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난도 치고, 눈도 맞추고…섬과 닮아가는 물범들

▲ 지난달 23일 인천 백령도 두무진항 인근 바다에서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등급 1등급인 점박이물범이 갈매기를 바라보고 있다. /양진수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지난달 23일 인천 백령도 두무진항 인근 바다에서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등급 1등급인 점박이물범이 갈매기를 바라보고 있다. /양진수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옛날에는 뱃소리가 조금만 나도 점박이물범들이 물속으로 사라졌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하고 가까워져서 배가 오면 고개를 내미는 애들도 있어요.”

문영희 회장은 점박이물범과 백령도 주민 간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백령도를 대표하는 특산물은 까나리다. 까나리 조업 기간은 4~7월로 백령도 어선들은 6월 현재 바다에서 한창 까나리 조업 중이다.

까나리는 점박이물범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바다 자원이다. 하지만 점박이물범이 까나리를 먹기 위해 어민들이 설치한 어망을 찢는 일이 종종 발생해 과거에는 어민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2004년 녹색연합이 백령도 점박이물범 서식지에 대한 첫 조사를 시작한 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공동체 기반의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후 2013년 지역 주민 40여 명이 모여 ‘백령도 점박이물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했고, 주민이 주체가 되어 점박이물범 모니터링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 노력 끝에 점박이물범은 사람을 낯설어하지 않게 됐고 다시마 채취 작업 중인 사람들에게 다가가 방귀를 뀌며 친밀감을 표현하는 물범도 생겼다.

박정운 인천녹색연합 황해물범시민사업단 단장은 “점박이물범이 멸종위기종이라는 점이 부각되고 지역사회도 야생 동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어민들의 인식도 달라졌다”며 “최근에는 어민들도 점박이물범을 배척하지 않고 공공 자원인 바다를 같이 이용해야 하는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 지난달 23일 인천 백령도 두무진항 인근 바다에서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등급 1등급인 점박이물범들이 까나라리 그물 인근에서 먹이사냥을 하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지난달 23일 인천 백령도 두무진항 인근 바다에서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등급 1등급인 점박이물범들이 까나라리 그물 인근에서 먹이사냥을 하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공존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해녀를 점박이물범으로 착각한 일도 있었다.

몇 년 전 두무진항 인근에서 물질을 하던 해녀 김호순(77) 씨는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에서 성게와 보말을 채취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오리발을 잡는 느낌이 느껴졌고,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점박이물범이었다.

당시 배 위에서 사진을 찍은 그의 사위이면서 해남인 윤학진(50) 씨는 “잠수복 색깔이 검정색이라 어머니를 동료 물범으로 착각하고 장난을 친 것 같다”고 회상했다.

점박이물범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커지고 있으며, 이제는 체계적인 보호와 연구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백령도 하늬해변 인근인 백령면 진촌리 140의2 일원에는 ‘백령 생태관광체험센터’가 2026년 5월 준공될 예정이다.

이 센터는 점박이물범을 비롯한 멸종위기종의 서식지를 보호하고, 생태 교육과 체험, 연구가 가능한 복합 공간으로 조성될 계획이다.

박정운 단장은 “점박이물범의 멸종을 막고 야생동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활동 목표”라며 “그 과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생태관광 등 지역에도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령도=정회진 기자 hijung@incheonilbo.com

인터랙티브 기사 링크: [섬, 하다] 점박이물범이 찾는 섬,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마주한 공존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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