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평화 공존하는 '연평도'…풍산개 햇님이 전한 서해의 평온


그날의 고통
2010년 연평도 포격…아픔 간직한 섬
군인·민간인 4명 사망…40여 명 부상
벽 무너진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어
“주민 소원은 대피소 쓸모없어지는 것”


일곱 살 암컷 풍산개 '햇님'
北으로부터 선물 받은 풍산개 사이서 탄생
2018년 연평도 정착 후 7년째 살고 있어
큰 매력은 '귀'…애교없는 차도녀 스타일
간식 보다는 하루 2번 산책을 가장 좋아해

[섬, 하다] ④ 상처·평화 상징 공존하는 연평도

서해 최북단 접경지역인 옹진군 연평도는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의 아픈 기억을 품은 섬이다. 15주기를 앞둔 지금 민가의 잔해는 여전히 교육장 한켠에 남아 있고, 대피소는 주민들의 일상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북한에서 건너온 풍산개의 후손 '햇님'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분단의 긴장 속에서도 이어가는 평화의 모습을 우리는 이 섬에서 마주했다.

 

▲ 15주기 앞둔 연평도 포격전…그날의 흔적은 지금도

▲ 연평도 안보교육장에 들어서자 샌드위치 지붕이 주저 앉아 있었고, 콘크리트 벽은 곳곳이 가라져 있었다.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 연평도 안보교육장에 들어서자 샌드위치 지붕이 주저 앉아 있었고, 콘크리트 벽은 곳곳이 가라져 있었다.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지난 6월 23일 오전 10시쯤 인천 옹진군 연평도 안보교육장. 교육장에 들어서자 샌드위치 패널 지붕이 내려 앉은 민가 세 채가 눈에 들어왔다.

콘크리트 벽돌로 쌓은 벽은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다. 금이 간 벽 사이로 철골 구조가 그대로 드러났다.

바닥에는 깨진 장독대 파편이 흩어져 있었고, 붉게 녹슨 액화석유가스(LPG) 통이 쓰러져 있었다. 2010년 11월23일 북한의 포탄이 직격한 민가의 잔해다. 15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상처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벽이 조금씩 무너지고 부서지고 있어요. 골절된 뼈에 핀을 박듯이 철제 빔을 설치해 벽이 버티고 있는 거예요.”

안칠성(64) 문화관광해설사는 철제 빔이 덧대어진 벽면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같이 설명했다.

▲ 안칠성 문화관광해설사가 연평도 안보교육장에 보존된 피해 민가 앞에서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 안칠성 문화관광해설사가 연평도 안보교육장에 보존된 피해 민가 앞에서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당시 북한은 연평도에 약 1시간 동안 170여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이곳을 포함해 면사무소 창고, 수협, 우체국 등 민간지역 7곳에 포탄이 떨어졌다. 피해 주택은 400여 채, 그중 52채는 전소되거나 붕괴됐다. 주민들은 빠르게 대피했지만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졌고, 40여 명이 다쳤다.

연평도는 전체 면적의 80%에 군사 시설이 들어서 있다. 군부대는 북쪽에 집중돼 있고, 주민들은 남쪽 일부 지역에 모여 살아간다.

“연평도 집들은 옆집하고 처마가 붙어 있을 정도로 다닥다닥 모여 있어요. 마당도 없고, 집 앞이 바로 도로죠.”

빽빽한 주거 구조 탓에 포탄이 몇 발만 떨어져도 피해는 불덩어리처럼 커졌다. 당시 연평도 대부분 집은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 지붕으로 덮여 있었고, 한 집에서 불이 나면 옆집으로 순식간에 번졌다. 하지만 민간 소방차는 단 한 대뿐이었다. 동시에 여러 곳에서 발생한 불길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지금도 마을 곳곳엔 그날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붉은 벽돌 외벽에 슬라브 지붕을 얹은 집들이 눈에 띄는데, 모두 포탄으로 무너졌던 주택을 정부가 복구한 것이다. 모양도 색도 비슷해 당시 피해를 입은 집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 안칠성 문화관광해설사는 “연평도 주민들의 가장 큰 소원이 대피소가 평생 그냥 이렇게 있다가 쓸모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 안칠성 문화관광해설사는 “연평도 주민들의 가장 큰 소원이 대피소가 평생 그냥 이렇게 있다가 쓸모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안칠성 문화관광해설사는 포격 당시 어머니가 연평도에 있었다고 회상했다.

“포격 소식을 듣고 어머니께 연락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가슴이 철렁했어요. 한참 지나 연락이 닿았는데 다행히 대피소에 계셨다고 하셨죠.”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지금도 긴장 속에 일상을 살아간다고 했다.

“지금도 포성 소리가 들리면 밥 먹다 말고 밖으로 나가요. 무슨 일인가 싶어서요.”

연평도에는 대피소가 10곳 있다. 비상식량, 취사실, 비상진료소, 와이파이까지 갖춰져 있어 일주일간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평소엔 주민들이 사물놀이 연습하고 색소폰 연주하는 동아리 모임 장소로 쓰인다.

“연평도 주민들의 가장 큰 소원은 이 대피소가 평생 그냥 이렇게 있다가 쓸모 없어지는 거예요. 우리 해병대, 해군 모든 군인을 믿어요. 지금까지도 잘 지켜주고 있고, 앞으로도 잘 지켜줄 거라 믿습니다.”

 

▲ 연평도의 특별한 주민 풍산개 '햇님'…서해 최전선에서 전하는 평화

▲ 인천 옹진군 연평도 평화안보수련원 앞. 2023년부터 풍산개 ‘햇님’이를 돌보고 있는 심용섭 주무관이 햇님이와 함께 쉬고 있는 모습.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 인천 옹진군 연평도 평화안보수련원 앞. 2023년부터 풍산개 ‘햇님’이를 돌보고 있는 심용섭 주무관이 햇님이와 함께 쉬고 있는 모습.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지난 6월 23일 오후 2시쯤 인천 옹진군 연평도 평화안보수련원 운동장.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 운동장 한켠에 마련된 견사에서 풍산개 한 마리가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일곱 살 암컷 풍산개 햇님이다. 이곳 연평도에서만 7년째 살아오고 있다.

견사 근처로 다가가자 햇님이는 꼬리를 천천히 흔들며 시선을 맞췄다.

문이 열려 있어도 쉽게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낯선 방문객에게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 이곳에서 보낸 시간만큼 햇님이의 일상엔 여유가 묻어났다. 햇님이는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선물 받은 풍산개 '송강'과 '곰이'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마리 강아지 중 한 마리다. 이중 유일하게 연평도에 정착했다.

햇님이라는 이름에는 평화의 염원이 담겨 있다. 낮의 해와 밤의 달과 별이 지켜보듯 분단된 땅 위에서 평화가 퍼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연평도는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접경지역이다. 2023년 9월부터 햇님이를 돌보고 있는 인천 옹진군청 소속 심용섭 주무관은 “북한에서 온 풍산개의 후손인 햇님이가 주민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평화를 상징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햇님이는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도 분단 현실을 느끼며 살아간다. K9 자주포 등 포사격 훈련이 실시되면 '꽝꽝' 소리와 땅을 울릴 정도의 진동에 겁을 먹은 햇님이가 밥그릇을 챙겨서 쏜살같이 집에 들어간다.

심 주무관은 이런 모습을 보면 햇님이가 분단의 현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햇님이는 훈련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 햇님이는 다른 풍산개들과 달리 귀가 축 늘어져 있어 더욱 순해 보인다.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 햇님이는 다른 풍산개들과 달리 귀가 축 늘어져 있어 더욱 순해 보인다.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햇님이의 가장 큰 매력은 '귀'다. 다른 풍산개와 달리 귀가 서 있지 않아 더 순해 보인다. 하지만 애교는 거의 없다. 사람한테는 순하지만 오라고 해도 오지 않고, 앉으라고 해도 앉지 않는다. 심 주무관은 이를 두고 “완전 차도녀(차가운 도시의 여자) 스타일”이라고 표현했다.

대신 '산책하자'나 '퇴근하자'는 말을 들으면 꼬리를 흔들며 바로 반응한다. 햇님이에게 '퇴근하자'고 하면 운동장에서 놀다가도 조용히 집으로 들어간다. 그는 그럴 때 보면 사람보다 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햇님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산책이다. 간식보다 산책을 더 좋아한다. 보통 하루에 한 두번 30~40분씩 수련원 뒤편 산책로를 걷는다.

발전소 가는 길에 있는 산책로는 주민들도 운동 삼아 많이 다니는 곳이다. 그는 햇님이 덕분에 매일 산책을 하면서 자신도 건강해졌다며 웃음을 보였다.

▲ 심용섭 주무관이 연평도 평화안보수련원 운동장에서 풍산개 '햇님'이를 쓰다듬고 있다.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 심용섭 주무관이 연평도 평화안보수련원 운동장에서 풍산개 '햇님'이를 쓰다듬고 있다.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햇님이는 1년에 한 번 인천 서구 동물병원에서 건강검진도 받는다. 현재 건강상태는 양호하다. 그는 눈이 내리던 한겨울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던 날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햇님이가 커서 이동 캐리어도 매우 큰데 차량에 들어가지 않아 고생했다는 것이다. 눈도 오고 추운 날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다고 그는 회상했다.

심 주무관은 햇님이와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며 아이 키우는 기분이라고 했다.

“크게 바라는 건 없습니다. 그저 햇님이가 지금처럼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지내기를 바랍니다.”

/연평도=이나라 기자 nar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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