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초의 정성…“이 맛에 다시 옵니다”

백령도에 추억서린 냉면 집 5곳 있어
초겨울에 수확 메밀로 면발 손수 뽑아

백령도 진촌리 '시골 메밀 칼국수집'
면 익히는 시간 '57초'…메밀향 풍부
소 잡뼈 끓여 육수 뽑아 동치미 첨가

매년 5월부터 6월까지 까나리 조업
어민들 잡아 담근 액젓…냉면 풍미 더해

[섬, 하다] ➂ 백령도 냉면, 섬이 지켜온 삶의 맛

가을과 초겨울이면 인천 백령도는 메밀 향으로 가득하다. 메밀밭에서 피어난 새하얀 메밀꽃은 마치 눈꽃이 흩뿌려진 듯 반짝이며 하얀 물결을 이루고, 그 경관과 향기는 주민들의 눈과 코를 즐겁게 한다. 메밀은 백령도 사람들에게 담백한 맛도 선사했다. 주민들은 가을에 농사를 짓고, 초겨울에 수확한 메밀로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 그때는 동네마다 있던 방앗간에서 메밀을 빻았다. 요즘처럼 면을 뽑는 유압 기계가 없었기 때문에 동네 장정 2~3명이 면을 손수 뽑았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먹을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섬에서 추운 겨울날 삼삼오오 모여 먹던 냉면은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현재 백령도에는 그런 추억을 느낄 수 있는 냉면집이 다섯 곳 있다.

▲ 인천 옹진군 백령도 진촌리 시골메밀칼국수의 냉면. 고명은 오이, 달걀 반쪽, 무가 전부다. 얼음도 없다. 하지만 사골 맛이 느껴지는 국물에다 이가 차가울 정도로 시원한 냉면 맛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메일은 백령도산만 쓰고 있다. 주인장의 자부심이 담긴 냉면 한 그릇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삶이 담긴 음식이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인천 옹진군 백령도 진촌리 시골메밀칼국수의 냉면. 고명은 오이, 달걀 반쪽, 무가 전부다. 얼음도 없다. 하지만 사골 맛이 느껴지는 국물에다 이가 차가울 정도로 시원한 냉면 맛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메일은 백령도산만 쓰고 있다. 주인장의 자부심이 담긴 냉면 한 그릇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삶이 담긴 음식이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섬이 빚은 한 그릇

지난 6월 22일 오후 1시쯤 백령도 진촌리에 있는 '시골메밀칼국수' 집을 찾았다.

예전에는 칼국수를 팔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냉면이 주 메뉴다.

“물냉면 2개 주세요.”

손님의 주문에 이곳에서 25년간 음식점을 운영해 온 김창유(60) 대표의 손이 바빠졌다.

주문 즉시 김 대표는 반죽을 손으로 한 움큼 떼어 면 뽑는 기계에 넣었다. 넣자마자 면발이 아래로 쭉쭉 떨어져 물속으로 풍덩 들어갔다.

그는 면이 떨어지자마자 유압 기계에 부착된 타이머를 작동시켰다. 면을 익히는 시간은 정확히 '57초'. 타이머가 울리기 직전 채로 면을 건져 차가운 물에 식힌 뒤 그릇에 담았다.

▲ 인천 옹진군 백령도 진촌리에 있는 시골메밀칼국수 김창유(60) 대표가 주방에서 냉면을 만들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인천 옹진군 백령도 진촌리에 있는 시골메밀칼국수 김창유(60) 대표가 주방에서 냉면을 만들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57초일 때 면이 가장 맛있고, 메밀 향이 가장 풍부하다.

고명은 오이, 달걀 반쪽, 무가 전부다. 얼음도 없다. 하지만 사골 맛이 느껴지는 국물에다 이가 차가울 정도로 시원한 냉면 맛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김창유 대표는 “소 잡뼈를 끓여서 육수를 뽑고요, 동치미도 넣습니다. 아무래도 면도 직접 뽑고 국물도 깔끔해서 육지에서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 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백령도 냉면이 시원하더라, 맛있다'고 소개하고, 그걸 듣고 오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럴 때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 냉면에 감칠맛을 더하는 까나리액젓

백령도는 냉면만큼이나 까나리로도 유명하다. 어민들은 매년 5월 초부터 6월 말까지 약 한 달간 까나리를 잡는다. 까나리는 1년간 숙성시켜 액젓으로 절여진다. 조금의 잡어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까나리로만 담근 액젓이다.

▲ 백령도에서는 냉면에 까나리액젓을 넣어 먹는다. 까나리액젓을 넣으면 비린내가 나지 않으면서 특유의 감칠맛이 난다. 냉면에 한 숟가락만 넣어도 처음엔 짜다가 먹다 보면 구수한 맛이 난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백령도에서는 냉면에 까나리액젓을 넣어 먹는다. 까나리액젓을 넣으면 비린내가 나지 않으면서 특유의 감칠맛이 난다. 냉면에 한 숟가락만 넣어도 처음엔 짜다가 먹다 보면 구수한 맛이 난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어민들의 피와 땀으로 탄생한 까나리액젓은 냉면의 풍미를 더 한다.

김 대표는 “까나리액젓을 넣으면 비린내가 나지 않으면서 특유의 감칠맛이 돌아요. 냉면에 한 숟가락만 넣어도 처음엔 짜다가 먹다 보면 구수한 맛이 나요. 그래서 냉면에 까나리액젓이 없으면 안 돼요”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메밀부터 까나리액젓, 김치에 들어가는 배추와 무 등 모든 식자재를 백령도 현지에서 직접 구해 사용하고 있다.

“백령도에서 나는 메밀과 까나리로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수 있어요. 농민과 어민들께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 백령도 진촌리에 있는 시골메밀칼국수의 냉면은 백령도산 메밀만 사용한다. 김창유(60) 대표는 본인만의 비법으로 직접 제조하고 반죽을 만들어 냉면을 만든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백령도 진촌리에 있는 시골메밀칼국수의 냉면은 백령도산 메밀만 사용한다. 김창유(60) 대표는 본인만의 비법으로 직접 제조하고 반죽을 만들어 냉면을 만든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그러면서 그는 최근 메밀 재배 면적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지난해부터는 메밀을 아예 못 심고 있어요. 주민들 나이가 많아지면서 농사짓는 분들이 거의 없거든요. 주민들이나 관광객들에게 메밀로 만든 냉면을 맛있게 해드리고 싶은데 농사를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아쉽죠.”

점점 사라져가는 메밀밭이 아쉽지만 그 맛을 지키고자 오늘도 면을 뽑는 이들이 있어 이 섬의 여름은 아직 단단히 살아 있다.

/백령도=정회진 기자 hijung@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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