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되는 13일 오전 7시쯤.
인천시교육청 25지구 제9시험장인 인천 부평구 산곡동 부광고등학교 인근에 다다르자 형광색 옷을 입고 호루라기를 불며 주변 교통 통제를 하는 경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험생들은 혼자 가방을 메고 걸어 오거나 부모님의 ‘긴장하지 말고 잘 봐’라는 응원을 받으며 담담히 수험장 안으로 들어갔다.
수시 등 다양한 입학 전형이 도입되면서 대학 입시에 수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져 온 만큼, 수능 시험장 분위기도 이전과 비교해 대체로 차분하고 편안한 편이었다.
이전처럼 정문 앞에서 학교 후배 등이 떠들썩하게 북을 치며 응원하거나 수험생에게 엿이나 떡을 먹이는 모습 등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수험생 부모들도 자녀를 들여보낸 뒤에는 자리를 지키지 않고 떠났다.
정규 수험생 입실 시간(오전 8시10분)을 다 채우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이들은 제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나온 학교 선생님들이었다.
인제고에서 온 홍정연(지리), 한승일(생명과학) 교사는 이곳에서 수능 시험을 치르는 제자들이 한 명씩 올 때 마다 포옹하며 응원했다.
홍 교사는 “매년 치르는 수능이지만 수험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항상 마음이 뭉클하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노력한 것을 모두 쏟아내는 마지막 시험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교사 역시 “올해 고3은 황금돼지띠해에 태어난 아이들이 유독 많다. 그래서 수시나 정시 모두 여느 해보다 경쟁이 더 치열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시험을 보는 선인고 태권도부 고3 학생들은 긴장한 모습 없이 밝은 표정으로 수험장에 들어갔다. 이미 대부분 대학 진학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선인고 후배들은 응원 문구를 적은 종이 박스를 입거나 손에 들고 “밥 잘 먹고 와”라고 농담 섞은 응원을 했다.
권산 선인고 2학년 학생은 “대부분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닌 한 살 위 형들”이라며 “(이미 대학 진학은 정해졌지만) 그래도 인생에 한 번 보는 수능인 만큼 오는 김에 눈에 띄게 응원을 하자고 해서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동인천고에서 수학과 지구과학을 가르치는 교사들도 ‘꼭 찍어도 정답!!’, ‘잘 풀고 잘 찍자!’라는 푯말을 들고 이곳에서 시험을 치르는 제자들을 응원했다.
이중 백모 교사는 “동인천고에서 53명이 이곳에서 시험을 치른다. 마음 편히 긴장하지 말고 잘 마무리하길 바란다”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같은 날 오전 7시30분쯤. 인천시교육청 25지구 제5시험장이 마련된 서구 공촌동 대인고에도 수험생과 학부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수능을 약 한 달 앞두고 이 학교를 대상으로 한 폭발물 설치 허위 신고가 잇따르면서 불안이 커지기도 했으나, 다행히 이날 현장에서 별다른 혼란은 감지되지 않았다.
학교 인근에서는 경찰과 모범 운전자들이 바쁘게 교통 지도를 벌이는 가운데, 경찰차도 일부 오갔다.
운동복부터 패딩 점퍼, 반바지 등 편안한 차림을 한 수험생들은 등에는 배낭을 메고, 한 손에 도시락 가방을 든 채 교문 안으로 속속 들어섰다.
이른 수능을 치르는 제상후 인천과학고 2학년 학생은 “향후 신소재공학을 전공하고 싶다”며 “(수능이) 별로 떨리진 않고, 열심히 보고 오겠다. 이후에 전형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수능이 끝나자마자 면접 대비에 돌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원을 위해 함께 온 학부모들은 시험장으로 향하는 자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고3 둘째 아들을 배웅하러 왔다는 아버지 이모(49)씨는 “덤벙대지 말고, 평상시에 하던 대로 잘하면 될 것 같다”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함께 온 어머니 윤모(48)씨도 “아들이 좋아하는 우렁된장찌개와 버섯 조림, 궁채 볶음, 장조림 등을 도시락 메뉴로 준비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났다”며 웃음을 보였다.
경찰차나 오토바이를 이용해 시험장을 찾는 긴박한 모습은 없었지만, 학부모로 보이는 한 여성이 손목 시계를 가져다주기 위해 학교로 되돌아 온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교문 앞에서는 교사들이 ‘청라고 수능 파이팅’, ‘잘 풀고! 잘 찍고! 인천해원고 화이팅’ 등 문구를 담은 피켓이나, 응원 말을 화면에 띄운 휴대전화를 들고 학생들을 배웅했다.
계산고 3학년7반 담임을 맡고 있다는 박지환 교사는 “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오전 7시부터 학교 앞에 나와 있다”며 “남자아이들이라 긴장하기보단 덤덤한 것 같은데, 떨지 않고 평소에 하던 것보다 조금 더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고, 또 수능이 인생의 끝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장애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남동구 간석동 인천남고도 이른 아침부터 수험생 맞이 준비에 붐볐다.
교직원들은 일대를 통제하는 경찰들에 커피를 건네주며 훈훈한 분위기도 연출됐다.
오전 6시52분, 첫 학생의 등교를 시작으로 ‘교통약자 이동지원차량’이라고 적힌 하얀 미니밴도 쉴새 없이 오갔다. 거동이 불편한 중증 장애 학생들을 위해 인천교통공사에서 지원되는 이동지원차량이다.
차들은 교문 앞에서 감독관들의 통제에 따라 잠시 정차를 한 후 “휠체어를 타는 장애 수험생이 타고 있다”고 설명을 한 후 건물 앞까지 가 학생들을 내려줬다.
수험생들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후회 없이 쏟아내고 오겠다는 당찬 모습을 보여줬다.
중증장애를 갖고 있는 강민혁(18)학생은 “준비해왔던 대로 시험을 보고 오려고 한다. 잘 보고 오겠다”며 “시험이 끝나고 나면 그동안 밀렸던 잠을 푹 자고 싶다”며 웃었다.
시각장애인인 이효재(18)학생 역시 “첫 수능이라 그런지 떨리긴 하지만 공부한 건 답안지에 다 쏟아내고 오려고 한다. 얼른 시험을 끝내고 친구들을 만나서 같이 놀고 싶다”고 말했다.
재수생이라는 권모(19)씨는 “재수라 그런지 긴장은 하나도 안 된다”며 “모의고사를 보는 마음으로 잘 치르고 오겠다. 오늘 수능 끝나고 나선 바로 논술을 준비할 것”이라고 야무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학부모들은 학생들을 바래다주고 애타는 마음으로 교문 앞에서 기도하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학생의 뒷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담기도 했다.
청각장애 자녀를 둔 이경화(50)씨는 “아이가 청각 장애가 있다 보니 어려움이 없진 않았겠지만, 준비를 잘 했다. 오늘 시험장에서 실력 발휘를 잘하고 오길 바랄 뿐”이라며 “아이가 오늘 수능 끝내고 돌아오면 ‘고생했다. 앞으로 즐겨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시험장을 잘못 표시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다. 인천시교육청 25지구 ‘제63시험장’으로 지정된 인천남고 현수막에 ‘제58시험장’이라 잘못 명시된 것.
시험장을 잘못 찾은 줄 알았던 보호자들의 문의가 이어졌고, 뒤늦게 이를 인지한 관계자들이 교문 앞에 ‘63시험장’ 안내문을 다시 붙이기도 했다.

연수구 연수여고에서도 수능을 치르기 위해 학생들이 연이어 고사장에 입장했다.
올해 수험생 응원을 위해 이곳을 찾은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은 학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그동안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한 수험생들이 오늘 차분하게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길 바란다”는 덕담을 건냈다.
수험생 한주희(19)양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쏟아 붓겠다. 수학 미적분에 자신이 있는 만큼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고잔고 학생들을 응원하러 온 박서연(48) 교사는 “평소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많이 오지 않으니 이런 때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얘기했다”며 “아이들이 긴장을 많이 한 듯했지만 밝은 표정으로 들어가서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이날 정문 앞에선 “아이가 점심 도시락의 식기를 놓고 갔다”며 감독관에게 전달하는 등 학부모들이 자녀들이 두고 온 물건을 전달하는 분주한 모습도 보였다.
특히 수험생 입실이 끝난 오전 8시20분쯤에는 연수여고 정문 앞에서 한 학부모가 “송도에 있는 박문여고로 시험을 보러 간 자녀가 신분증을 놓고 갔다”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급하게 경찰차를 몰고 학부모를 박문여고로 데려갔고, 오전 8시32분쯤 자녀에게 신분증 전달했다는 무전을 받았다.
한편 2026학년도 수능에 인천에서는 지난해보다 1994명(7.1%) 증가한 총 3만143명이 지원했다. 이러한 학생 응시자 증가는 출산율이 이례적으로 높았던 ‘황금돼지띠’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전국 수험생 역시 55만4174명으로, 기준 2019학년도(59만4924명) 이후 7년 만에 가장 많다.
/유희근·전민영·정혜리·안지섭·홍준기 기자 jmy@incheon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