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솜방망이 처벌' 그 후

재심 폐지…행정심판·소송 급증
학폭위 결정 '불신' 가장 큰 이유

성남 피해자측 “자료 제대로
보고 판단한건지 의문” 토로

심의위원 전문화·지표 객관화
피해 학생 보호조치 등 목소리

▲ 29일 오후 성남시 분당구 한 중학교 앞에서 근조화환 띠를 두른 지역 학부모들이 '분당학폭' 가해학생 부모가 맡고 있는 운영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며 학교로 들어가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 29일 오후 성남시 분당구 한 중학교 앞에서 근조화환 띠를 두른 지역 학부모들이 '분당학폭' 가해학생 부모가 맡고 있는 운영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며 학교로 들어가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위(학폭위) 결정에 불복한 피해·가해 학생들이 행정심판·행정소송을 청구하는 사례가 매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년 전 재심제도가 폐지되면서 학폭위 결과에 불복하면 곧바로 행정심판·소송이 진행된다. 이에 따른 시간이 장기간 소요돼 심지어 학생들이 졸업한 뒤에야 결과가 나오는 사례가 빈번하다. 사실상 피해자는 3차 가해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29일 인천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3년간 학폭 가해·피해 학생 등이 경기도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에 심판을 청구한 건수는 2022년 354건, 2023년 501건, 올해 9월30일자 기준으로 391건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3년간 전체 행정심판 청구 건수의 평균 83%에 달하는 수치다.

전국 기준으로 보더라도 행정심판·소송 건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0년 587건에서 2021년 932건, 2022년 1133건으로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대면수업이 재개되면서 학폭위 심의 건수도 계속 증가했다.

학폭위 결정 불복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학폭위 결정에 대한 '불신'이 꼽힌다.

심의 과정에서 가해 학생이 피해자에 대한 학폭 인정을 끝까지 안할 경우, 증인신문절차가 별도로 없기에 사실관계 확정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황만 있는 경우 증거 불충분으로 처분 수위가 낮게 나온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성남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학폭 사건의 경우도 5명 가해 학생 중 1명은 증거 불충분 처분을 받기도 했다.

피해 학생 측은 “증거 불충분이 나온 1명의 학폭 행위를 우리가 18건이나 제시했는데 학폭위에서는 전혀 인용이 안 됐다”며 “학폭 심의 자료를 보면 글자도 제대로 복사되지 않은 것도 있는데 어떻게 판단한 건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피해 학생 측은 이번 학폭위 처분 결과에 불복해 행정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피해 학생 가족은 “가해 학생들에 대한 처분이 솜방망이라고 생각하지만 애들이 졸업한 뒤에나 결과가 나올 것 같아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우선 피해 학생에 대한 '학급교체' 처분이라도 철회하기 위해 행정심판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20년 '학교폭력예방법'이 개정되기전에는 재심 제도가 '가해자'와 '피해자'로 이원화 방식으로 운영됐다. 재심 제도는 학교장을 상대로한 재심, 행정심판, 소송 등이 급증하자 결국 폐지됐다. 현재 학폭위 불복 수단은 행정심판·소송으로 일원화됐다.

다만 행정심판·소송은 준사법절차다 보니 일원화되면서 건수가 증폭했다. 경기도의 경우는 최소 6~10개월이 걸리는 만큼 학폭 심의에서 불복을 줄이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단 게 전문가와 학부모 등의 주장이다. 학폭 심의위원의 전문성 강화와 객관적 심의지표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학폭 전문 전수민 변호사는 “행정심판 제도는 기간이 오래 걸려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며 “불복까지 가지 않도록 학폭위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학폭 심의위원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현행법상 행정심판·소송이 일원화돼 있는데 지방 같은 경우는 판사 1명이 모든 처분을 담당하다 보니 관련 재판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며 “가해 학생 측이 억지로 소송을 끌면서 이를 이용하려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했다.

분당지역 한 학부모는 “적절한 학폭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 학폭위 제도 자체가 정립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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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김혜진 기자 trust@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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