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개항장 백여년 시간을 걷다
제물포구락부·시장 관사·시청 건물
문화공간·시민애집·중구청으로 활용
인천우체국 '우정통신박물관' 될 예정
옛 인천세관 창고, 이전 통해 살아남아
市 자산 선정 5년 만에 10.6%사라져
“조례·법 통한 진흥 정책을” 제언도
![[보물 한가득 인천] 5. 근대문화유산, 공존을 꿈꾸다](https://cdn.incheonilbo.com/news/photo/202511/1308773_637416_623.jpg)

인천 앞바다가 바라보이는 중구 자유공원으로 오르다 보면 독특한 외관의 건축물을 마주할 수 있다. 양철 지붕으로 덮인 채 돌출된 벽면을 지닌 '제물포구락부'다. 개항장 제물포에서 외국인 사교 공간이었던 제물포구락부는 1901년 러시아인 사바틴 설계로 건립됐다.
제물포구락부 맞은편에는 중구 송학동 옛 인천시장 관사인 '인천시민애(愛)집'이 자리한다. 인천시 등록문화유산인 인천시민애집 아래로는 일제강점기였던 1933년 인천부 청사로 지어졌고, 1985년까지 인천시청이었던 국가등록문화유산이 지금도 중구청으로 쓰이고 있다.
100년 넘는 시간을 가로지르는 근대문화유산에는 역사와 문화가 공존한다.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개항장에는 낯선 풍경과 일상의 골목이 뒤섞인다. 시대의 길목마다 새겨진 흔적들은 인천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차이나타운부터 내항까지 각양각색 건축물
12일 인천시의 '제2차 건축자산 진흥 시행계획(2025~2029)'을 보면 건축물과 기반 시설을 포함한 건축자산은 총 505건이다.
특히 근대문화유산이 밀집한 중구 북성동·항동·중앙동·관동·송학동 등 개항장 일대는 지난해 '건축자산 진흥구역'으로 지정됐다.
옛 인천우체국과 제물포구락부, 홍예문, 내동 성공회성당 등 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근대건축물만 해도 7개다. 짜장면박물관으로 활용되는 '선린동 공화춘'을 비롯해 6개 건축물은 국가등록문화유산이고,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관 등 시 등록문화유산도 3개가 존재한다.
인천은 여느 개항 도시들과 다르게 청국·각국·일본 조계(외국인 거주지)가 나란히 존재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근대건축물 또한 차이나타운부터 개항장, 내항 주변을 따라 분포하면서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차이나타운에서 시작되는 화교 점포와 주택, 시 기념물로 지정된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 홍예문과 국가 사적인 답동성당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 건축물을 접할 수 있다.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볼 수 있는 개항장에선 해마다 '인천 개항장 국가유산 야행' 축제도 열리고 있다. 개항장은 인천에서 꼭 경험해야 할 9가지 관광 체험인 '인천9경'에도 포함됐다.
지난해 시와 인천관광공사는 '1883년 개항장 과거로 시간여행 떠나기'를 제1경으로 선정하며 “1883년 개항 이후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장소”라며 “과거가 재현된 거리에서 오래된 건축물과 상점들을 구경하며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건축물 특성 살리는 문화예술 공간 활용
근대문화유산 밀집 지역인 개항장을 개별 건축물이 아닌 면 단위로 묶어 접근하는 움직임도 주목받고 있다. 인천연구원은 최근 '개항장 일대 근현대문화유산 활용 활성화 방안' 정책 연구를 통해 제물포구락부와 인천시민애집, 신흥동 옛 인천시장 관사, 개항장 소금창고, '이음1977' 등 5개 건축물을 연결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건축물 특성을 살린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접목해 역사적 가치를 재해석하려는 시도다.
신흥동 옛 인천시장 관사는 2023년 시민에게 개방되면서 '긴담모퉁이집'이라는 이름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이음1977은 현대 건축 1세대인 김수근이 설계한 단독주택으로, 인천도시공사(iH)가 2020년 시작한 '근대건축문화자산 재생사업' 1호 건축물이다.
2019년 중동우체국이 이전하면서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옛 인천우체국도 우정통신박물관으로 탈바꿈한다. 1923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된 옛 인천우체국 본관은 'ㄷ'자 모양 건물로 원형이 남아 있다.
옛 인천우체국은 100년 가까이 우편 업무가 지속된 공간으로 시 유형문화유산에도 지정됐다. 현재 진행 중인 사전 절차가 끝나고, 내년부터 우정통신박물관 설립이 본격화하면 개항장에서 또 하나의 역사 관광 자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개항장 활성화로 문화유산 가치 향상”
근대문화유산 보존과 활용 이면에는 철거 문제도 상존한다.
신포역 인근에서 '인천세관역사공원'으로 재탄생한 옛 인천세관 창고와 부속 건물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수인선 철도 공사 과정에서 세관 창고 건물은 철거 위기에 직면했다. 민관 협의를 거쳐 2012년 '해체 후 이전 복원'으로 접점을 찾으면서 현 위치로 옮겨졌다. 2013년에는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되면서 역사적 가치도 인정받았다.
인천세관역사공원은 그나마 건축물 이전을 통해 철거 신세에서 벗어났지만, 근대문화유산 상당수는 개발 압박에 밀려나고 있다.
시가 2019년 수립한 '제1차 건축자산 진흥 시행계획'에서 선정한 건축자산은 492건이었다. 하지만 불과 5년 만에 10.6%(52건)에 해당하는 건축자산이 사라지거나 훼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발굴을 병행하면서 올해 2차 계획에서 전체 건축자산 건수는 늘었지만, 개발 사업으로 근대문화유산이 철거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근현대문화유산법'과 '인천시 지역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조례'에 근거해 근대문화유산 진흥 정책을 고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지역유산 조사·연구에 이은 목록화는 근대문화유산을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출발점이다. 민경선 인천연구원 연구위원은 “새로운 법률과 조례를 통한 정책은 문화유산 가치에 대한 인식을 향상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개항장 역사 문화 공간의 보존과 관리, 활성화를 위해서 소유주·이해관계자 간 유기적 협력 체계도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