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중국 선종 사찰 비교로 가치 입증
시민 공감과 참여로 등재 기반 다져
“세계유산은 행정 아닌 시민의 자산”

양주시 세계유산추진팀 김종임(44) 학예사는 요즘 하루가 짧다. 회암사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예비평가 신청서를 지난 9월 제출된 뒤 국제 질의 대응과 보완자료 준비로 눈코 뜰 새 없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엔 피곤함보다 설렘이 묻어난다.
“등재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회암사지의 진정한 가치를 세계가 알아줄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회암사지는 조선 왕실의 정신적 근원으로 꼽히는 왕실 사찰이다. 수행·신앙·생활시설이 모두 갖춰진 복합유산으로 조선의 종교와 건축, 사상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김 학예사는 “단순한 절터가 아니라 조선의 철학이 남은 ‘정신의 공간’”이라며 “이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10여 년 전 회암사지 발굴 현장에 처음 발을 들였다. 땅속에서 조선의 숨결을 마주했을 때, 이 일을 평생의 과제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등재신청서 작성, 보존관리계획 수립, 비교연구 등 등재 전 과정을 이끌었다.
김 학예사는 “세계유산위원회가 요구하는 건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왜 회암사지여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일본과 중국의 선종 사찰을 찾아 비교 연구를 진행했고, “일본 전문가들이 복원 도면을 보고 ‘이미 세계유산급’이라 평가했을 때 확신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등재를 ‘행정의 성과’보다 ‘시민의 자산’으로 본다. “세계유산은 문서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시민의 자부심과 참여로 완성된다”면서 “그동안 시는 주민협의체를 꾸리고 학술대회와 시민설명회를 이어가며 공감대를 넓혔다”고 설명했다.
회암사지는 형태·재료·축조기법 등에서 조성 당시의 진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발굴 유적의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완충구역 내에서 관리돼 완전성도 충족된다. 그는 “발굴 이전까지 거의 훼손되지 않아 진정성이 높고, 이를 보호할 체계도 잘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양주시립 회암사지박물관이 현장에 상주하며 관리하는 점도 큰 강점이다. 다만 보존관리 업무가 여러 부서로 분산돼 있어 전담 조직 운영이 시급한 과제로 남아 있다.
김 학예사는 “향후 예비평가와 본 평가에서는 동아시아 선종사원으로서의 가치와 인류사적 의미, 그리고 회암사지의 서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연구, 보존관리, 기획‧홍보 등 분야별 전문조직을 아우르는 세계유산등재추진단 구성과 예산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요즘도 그는 천보산 나옹선사 부도 앞에서 세계유산 등재를 기원한다. “회암사지는 제 인생의 숙명입니다. 조선의 정신이 세계로 나가는 그날까지 이 일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의 말처럼 회암사지는 이제 ‘조선의 사찰’을 넘어 ‘세계의 유산’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의 중심엔 10년 넘게 한결같이 흙먼지를 마주해온 한 학예사의 손끝이 있다.
/양주=글·사진 이광덕 기자 kdlee@incheon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