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년 전 바다의 흔적, 나이테처럼 남은 바위
계속 자라는 풀등, 바다 위에 길을 잇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을 향한 도전

▲ 조철수 백령·대청 지질공원 해설사가 대청도 농여해변 앞에서 풀등이 형성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천일보
▲ 조철수 백령·대청 지질공원 해설사가 대청도 농여해변 앞에서 풀등이 형성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천일보

10억 년의 시간을 간직한 나이테바위와 해마다 그 면적을 넓혀가는 풀등. 대청도 농여~미아해변은 지구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살아있는 지질박물관이다.

▲ 10억년의 시간이 새겨진 ‘나이테바위’

 

▲ 약 10억 년 전 바다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대청도 농여해변 나이테바위. 겹겹이 쌓인 암석 지층이 수직으로 드러나 있다. /인천일보
▲ 약 10억 년 전 바다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대청도 농여해변 나이테바위. 겹겹이 쌓인 암석 지층이 수직으로 드러나 있다. /인천일보

“이 바위는 약 10억 년 전에 생겼습니다. 땅속 깊이 묻혀 있던 암석층이 지각에 수평 방향으로 압력을 받으면서 점차 지상으로 밀려 올라온 거죠.”

지난달 2일 오후 인천 옹진군 대청도 농여해변. 조철수 백령·대청 지질공원 해설사가 수직으로 우뚝 솟은 나이테바위 앞에서 설명을 시작했다. 

성인 키의 두세 배는 훌쩍 넘는 이 바위는 멀리서 보면 나무껍질처럼 갈라진 겹겹의 주름이 인상적이다.

“옛날 어르신들은 이 바위를 고목 껍질을 닮았다고 해서 ‘고목바위’ 또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생겼다고 해서 ‘나이테바위’라고 불렀습니다.”

이 바위는 서로 다른 성질의 암석이 동일한 방향의 압력을 받으며 휘어진 결과물이다. 시간이 흐르며 물성이 약한 층은 풍화로 깎여 나가고, 단단한 층만 남았다.

바위 표면에는 물결무늬처럼 생긴 ‘연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10억 년 전 얕은 바다에서 바람에 의한 물결이 만들어낸 무늬입니다. 신기한 건 지금도 이곳 해변에서 똑같은 연흔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이 현상은 지질학의 ‘동일 과정의 법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지구에서 일어난 지질 작용이 현재에도 동일한 원리로 반복된다는 이론인데 한 장소에서 과거와 현재의 지질 변화 과정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 가치가 크다.

조 해설사는 “나이테바위는 국내외 지질학 전공 대학생들의 교육 자료로 쓰일 만큼 전 세계적으로 가치 있는 지질유산”이라고 강조했다.

▲ 바다 위에 자라는 신비한 모래섬 ‘풀등’

▲ 대청도 농여해변 앞에 형성된 풀등이 썰물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천일보
▲ 대청도 농여해변 앞에 형성된 풀등이 썰물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천일보

“‘농여’라는 이름의 어원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농사 ‘농(農)’에 더불어 ‘여(與)’ 자를 쓴다고 하지만 전해져 오는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조 해설사는 주변 바위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대청도는 다른 섬보다 지각변동을 강하게 받아 바위들이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모습이 장롱, 즉 ‘농짝’을 닮았다고 해서 ‘농(籠)’ 자를 썼고, ‘여(礖)’는 물속에 잠긴 바위를 뜻하는 옛말에서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

나이테바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사막의 모래언덕처럼 하얀 모래톱이 길게 펼쳐져 있다. 이것이 바로 ‘풀등’이다.

“저기 허옇게 쌓인 게 풀등입니다. 바다에서 이런 모래 지형이 생기는 건 우리나라에서도 흔치 않아요.”

풀등은 원래 강 하류에서 물이 빠진 뒤 드러난 모래 위에 풀이 자라며 형성되는 지형이다. 하지만 이 풀등은 바다 위에 생겼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썰물 때 모습을 드러내는 모래톱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백령도 방향으로 길게 뻗은 모습이 장관이다. 일반 해수욕장보다 모래가 단단해 맨발로도 쉽게 걸을 수 있다.

조철수 해설사는 풀등 면적이 해마다 점점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물 빠지면 잠깐 드러날 정도였지만 지금은 풀등 크기가 눈에 띄게 커졌고, 새로운 모래톱이 여러 겹으로 생겨나고 있어요. 주민들 사이에선 언젠가 풀등이 백령도까지 이어져 자연스러운 다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 지질 유산을 세계로, 유네스코를 향한 도전

▲ 한때 바닷물에 잠겨 있던 농여~미아해변 구간이 지금은 모래가 쌓이며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지질명소로 바뀌었다. /인천일보
▲ 한때 바닷물에 잠겨 있던 농여~미아해변 구간이 지금은 모래가 쌓이며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지질명소로 바뀌었다. /인천일보

나이테바위를 지나 농여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미아해변이 나타난다.

과거에는 농여해변에서 미아해변으로 이어지는 길과 나이테바위 주변은 바닷물에 잠겨 있었다.

“15~20년 전만 해도 여기 대부분 바위가 물에 잠겨 있어서 당시 주민들은 물속 바위에 붙은 전복이나 해삼을 따서 먹기도 했죠.”

하지만 최근 수십 년 사이 모래가 점차 쌓이면서 해변이 육지처럼 연결됐고, 이제는 관광객들도 걸어서 지질 명소를 둘러볼 수 있게 됐다.

미아해변의 이름도 흥미롭다. “옛날 배의 왼쪽을 ‘미압’이라고 불렀는데 위에서 보면 이 해변이 배의 왼편을 닮아 미압이라 하다가 점차 ‘미아’로 불리게 됐습니다.”

이처럼 뛰어난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청도는 2019년 백령도와 함께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대청도에는 4곳의 지질 명소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농여~미아해변 구간이다.

하지만 지난 6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를 위한 현장 심사가 무산됐다. 

“독일과 스페인에서 심사관들이 올 예정이었는데 당일 아침에 갑자기 취소됐어요.”

조 해설사는 “접경 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북한 측의 이의 제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 외국인 방문이 늘 텐데 북한 입장에서는 국제사회에 노출되는 걸 부담스러워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인천시가 앞으로도 계속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대청도 지질 유산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합니다.”

/대청도=이나라 기자 nara@incheonilbo.com  

▶ 인터랙티브 기사 링크: [섬, 하다] 10억 년 지질의 시간 여행…지질박물관, 대청도 농여·미아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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