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이 피고인의 절규를 외면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1979년 박정희 정권의 마지막 발악인 남민전 사건으로 46년 고통 속에 살아간 이영주(68) 여사가 최근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0일 서울고법은 남민전 사건 관련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을 열고 “불법 체포와 고문을 당한 정황이 인정돼 진술의 임의성이 없다”라며 이 여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여사의 남편인 고남석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 위원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소식을 전하며 “46년이라는 긴 밤 끝에 역사는 조심스레 속삭입니다. “이영주, 당신은 죄가 없습니다””라고 전했다.

이날 재판부는 “법원이 인권의 최후 보루임에도 피고인의 절규를 외면해 온 점, 깊이 사과드린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트라우마와 고통에 시달렸을 피고인에게 본 재판부가 법원을 대신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부장판사 등이 모두 판사석에서 일어나 허리 숙여 사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여사 변호를 맡은 장경욱 변호사는 “오늘 재판부는 역대급 사과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줬다”며 “재심 무죄 선물로 글라디올러스 생화를 드렸다. 그 꽃말처럼 승리, 용기, 신념, 열정이 담긴 재판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여사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재학시절인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대공분실 등에 약 40일 불법 감금됐고, 이듬해 2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형이 확정됐다.
이 여사는 재심에서의 무죄 판결 소감에 대해 “첫 진보대통령 시절이던 김대중 정권 때도 경찰에서 남민전 사건으로 집에 찾아 왔었다”며 “45년 세월이 흐르며 조금은 무덤덤해졌다 생각했지만 지난 10일 판사들의 사죄를 받으며 그간의 말 못 할 속상함이 눈물로 흘러내렸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옥사한 이재문 씨에 대해 “정치범 사형수라는 이유로 외부 진료를 불허해 사망했다”라고 판단하며, 치안본부의 고문·가혹행위와 법무부의 수형자 치료 책임 방기 등에 대한 국가의 사과를 권고했다.
진화위는 또 남민전 사건 연루자에 대한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은 1979년 유신 말 최대 공안사건으로, 2006년 노무현 정권에서 사건 관련자 중 29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이 사건에 연루됐던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2024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홍세화 작가는 그의 책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에 남민전 사건 관련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