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논란이 이재명 대통령의 “보존이 바람직하다”는 지난 14일 발언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국가 과거의 잘못을 상징하는 공간을 지우지 말자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철거는 곧 역사지우기”라는 시민사회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대통령까지 나서야 할 사안은 아니었다. 우리 사회가 국가폭력과 여성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면, 이 건물의 보존은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동두천시는 관광개발을 이유로 성병관리소 철거를 추진해왔다. 해당부지에 호텔과 상가를 조성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과정 자체가 국가가 기지촌 여성들에게 가했던 구조적 폭력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시민단체들은 400일 넘게 현장에서 농성을 이어오며, 이 공간을 역사·교육·문화적 성찰의 장소로 보존하자고 요구해왔다. 이들은 이미 공모를 통해 다양한 활용 방안을 제시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추진 중이다.

문제의 핵심은 예산이 아니다. 동두천시는 박물관 운영비 연 5억 원을 정부가 지원하면 철거를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는 갈등의 본질을 축소하는 접근이다. 예산은 갈등의 표면적 이유일 뿐, 실제로는 국가가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 기억하고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가치 충돌이 본질이다. 대통령이 보존 쪽으로 가닥을 잡은 만큼, 이제는 정부가 예산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동두천시는 철거 결정을 우선 철회해야 한다. 이 장소가 포함된 시의 전체적인 도시계획 역시 재검토되어 마땅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협의와 상상력이다. 동두천시, 시민단체, 지역 주민, 중앙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활용 방안에 대해 공감대를 넓혀 나가야 한다. 성병관리소는 단순한 폐건물이 아니라 국가가 여성에게 가했던 폭력의 흔적이자, 이를 성찰하고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 사회가 역사 성찰과 인권 측면에서 한 걸음 더 성숙했다는 이정표를 세워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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