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국내에 공급하기로 한 GPU 26만장은 AI 산업의 지형을 바꿀 수 있는 사건이다. 연산 능력의 비약적 향상은 산업 전반에 혁신을 불러올 것이며, 이는 곧 국가 경쟁력의 핵심 자산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급격한 기술 도약을 감당할 전력 인프라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GPU 대량 도입은 단순한 장비 수급의 문제가 아니다. 최대 10GW에 달하는 추가 전력 수요는 원전 10기 수준의 공급 능력을 요구하며, 이는 기존 전력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다. 특히 공급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은 이미 송전망 포화와 냉각수 부족 등의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전력 인입 지연으로 데이터센터 건설이 늦춰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전력망 확충이 산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기술적 진보는 불가능하다. 'AI 강국'도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임시 처방이 아니라 전력망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근본적 결단이다. 전력 인프라를 둘러싼 문제는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를 넘어선 국가적 과제다. 산업 입지와 에너지 수급, 송배전 인프라를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전력망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순히 공급 가능성을 언급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정부는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통해 송전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나, 속도와 범위 모두에서 아쉬움이 있다. AI 산업의 속도에 맞춰 전력망 전략도 재정비되어야 한다. 분산형 전력망, 무탄소 에너지 기반 확대, 지역별 전력 자립도 강화 등 미래형 인프라 설계가 시급하다. 특히 산업 수요와 전력 공급 간의 시차를 줄이기 위한 예측 기반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전력망은 단순한 기술 인프라가 아니라, 산업의 생태계를 떠받치는 기반이다.

기술은 준비되었고, 산업은 움직이고 있다. 이제는 전력망이 따라갈 차례다. AI 시대의 성패는 전력 인프라가 가를 것이다. 지금의 대승적 결단이 향후 수십 년간 대한민국 경제를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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