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유물~고려·조선 문화재
외세 약탈·도굴…환수 간헐적
“정확한 실태 파악해야” 목소리
'만수동 큰 장승' 독일서 전시 중
반환 공문에도 현지선 반응 냉랭
'어재연 수자기' 회수 운동 기지개

구한말 외세 침탈과 일제강점기 약탈, 한국전쟁으로 사라졌을 인천 유물들. 이들 유물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다. 개인이 약탈한 문화재는 아예 찾을길 없다. 더구나지금껏 인천에서 반출된 문화재 전수조사는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고, 환수 움직임은 간헐적이다.
9일 인천시와 남동구·강화군, 지역 학계와 사학계 등에 따르면 인천에서 반출된 문화재 관련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껏 인천에서 약탈된 문화재로 알려진 유물은 외규장각 도서 등과 어재연 장군 수자기 등 , 만수동 큰 장승이다. 이 중 다시 인천에 온 문화재는 없다.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로부터 영구 임대 후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어재연 장군 수(帥)자기는 약 17년간 인천에 있었지만,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이 다시 가져갔다.
독일 훔볼트 포룸(Humboldt Forum)에 전시 중인 만수동 큰 장승은 남동구가 반환 공문을 보냈지만, 독일 반응은 냉랭하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재단)은 연초 29개국의 박물관과 미술관 등 801곳을 조사한 결과 세계에 흩어진 한국 문화유산은 총 11만6961건, 세부 수량은 24만7718점이라고 분석했다.
국가유산청은 올해 주요 업무 계획에 “미국 시카고 필드자연사박물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소장 한국 문화유산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재단 측은 “국외 문화재 조사는 이뤄지고 있지만 이들 문화재가 어느 지역에서 반출됐는지까지는 분류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은 어떨까?
1866년 프랑스의 병인양요와 1871년 미국의 신미양요, 1875년 운요호 사건에 이어 1904년 제물포해전(러·일전쟁)을 거쳤고 이민의 역사가 처음으로 인천에서 쓰였다.
특히 강화도는 고려시대 와 조선시대 전시 피난처 역할로 다양한 당시 유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인천 서북부는 선사시대 유물이 끊이지 않고 발굴 되지만 그동안 도굴과 외세 약탈로 남아 있는 유물이 많지 않다.
이에 신미양요 때 미국이 전리품이라며 가져간 어재연 장군 수자기 반환 움직임이 시작됐다.
인천시립박물관은 관계자는 “아직 인천에서 반출된 문화재 전수조사 등은 이뤄지지 못한 상태”라며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인천 문화재가 약탈·습득·반출이 됐는지 전수조사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인천은 제물포해전 당시 러시아 바리야크함 깃발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부평 육군조병창에서 무기를 만들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공출된 송대 철종과 불상 등이 인천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이들 문화재는 일제 약탈 문화재 성격이지만, 인천은 일제가 패전 후 놓고간 만큼 습득문화재로 인식된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