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65% 시청률 기록
고도의 마지막 연기 혼 불태운 'KBS연기대상' 최고령 수상
'리어왕', 200분 공연 방대한 대사량 소화 '찬사'

현역 최고령이자 70여 년간 배우로 활동해 온 이순재가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유족에 따르면 이순재는 25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고령에도 방송, 영화, 연극 등 여러 방면에서 연기 활동을 펼쳐온 그는 최근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KBS 2TV 드라마 ‘개소리’ 등에 출연했다.
이순재는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4살 때 조부모를 따라 서울로 내려왔다. 할아버지를 따라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그는 초등학교 시절 해방을 맞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전쟁을 경험했다.
이후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한 이순재는 당시 대학생들의 값싼 취미인 영화 보기에 빠졌고, 영국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출연한 영화 ‘햄릿’을 보고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한 그는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가 돼 한국 방송 역사와 함께 걸어왔다.
주요 출연 드라마는 ‘나도 인간이 되련다’를 비롯해 ‘동의보감’, ‘보고 또 보고’, ‘삼김시대’, ‘목욕탕집 남자들’, ‘야인시대’, ‘토지’, ‘엄마가 뿔났다’ 등 140여 편에 달한다. 단역 출연작까지 포함하면 셀 수도 없이 많고, 한 달에 30편 넘는 작품에 출연했을 정도로 다작했다.
대표작 중 하나인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시청률 65%를 기록했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표상이던 캐릭터 ‘대발이 아버지’로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순재는 사극 전성시대도 열었다. ‘사모곡’, ‘인목대비’, ‘풍운’, ‘독립문’ 등 1970·80년대 사극에 꾸준히 출연했으며, ‘허준’(1999), ‘상도’(2001). ‘이산’(2007) 등에서 카리스마 넘치고 묵직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간 이순재는 70대에 들어 출연한 시트콤 ‘거침없는 하이킥’(2006), ‘지붕 뚫고 하이킥’(2009)에서 기존의 근엄한 이미지를 벗어던진 코믹 연기로 큰 사랑을 받았다.
연기뿐 아니라 예능 ‘꽃보다 할배’(2013)에서는 지치지 않는 체력과 의욕 넘치는 모습으로 나이를 잊은 열정을 보여줬다.

이후 연극 무대로 돌아온 이순재는 ‘장수상회’(2016), ‘앙리할아버지와 나’(2017), ‘리어왕’(2021)에서 열연을 펼쳤다. 특히 ‘리어왕’에서는 200분 공연의 방대한 대사량을 완벽히 소화해 찬사를 받기도 했다.
2023년에는 연출자로 첫 발을 내디디며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를 후배 배우들과 함께 대극장 무대에 올렸다.
지난 10월 건강 문제로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 전까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KBS 2TV 드라마 ‘개소리’ 등에 출연하며 마지막 연기 혼을 불태웠고,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선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자가 됐다.
연기 인생 외에도 제14대 국회의원(민주자유당)을 지내는 등 잠시 정치권에 몸을 담기도 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 중랑갑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이후 민자당 부대변인과 한일의원연맹 간사 등을 역임했다.
그는 연기자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도 관심을 가지며 최근까지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