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수급 어려움 '전통 명문' 서림초 해체 아픔
진학시 피라미드 구조…결석 허용일수 걸림돌
고교팀 4개·대학팀 1개 불과 과열 경쟁 불가피
프로야구 드래프트 지명 '바늘구멍 뚫기' 수준
지도자·심판 자격증 취득 지원 등 진로 넓혀야
인천 서화초등학교 야구부원 14명 가운데 졸업은 앞둔 6학년은 9명이다. 초등야구의 고민은 '선수 모집'이다. 정정호(38) 서화초 감독은 “리틀·유소년 야구단 출신까지 피라미드 구조로 몰리니까 중학교 정원은 꽉 차는데, 초등 야구부는 대회 출전이 어려울 정도로 학생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인천지역 중학교로는 26년 만에 입상한 동인천중 야구부원은 42명이다. 중학야구의 고민은 '진학'이다. 송순석(40) 동인천중 감독은 “학년당 10명이 넘는데, 중학야구 팀은 클럽을 포함해 7개이고, 고교 야구부는 4개뿐이다. 다른 지역으로 진학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천지역 고교 졸업생은 4명만이 지명받았다. 고교야구의 고민은 '진로'다. 계기범(52) 인천고 감독은 “목표는 모두 프로지만, 문이 너무 좁다. 대학 가는 것도 경쟁이 치열하다. 지명을 못 받으면 실패한 인생처럼 좌절하는 제자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인천 아마야구가 지닌 고민의 결은 제각각이지만 '불확실성'으로 압축된다. 앞날을 내다보기 어려운 야구판은 꿈나무가 자라기엔 척박한 토양이다.
선수 수급 불균형, 결석 허용일수 '발목'
인천 서림초 야구부는 올 초 해체했다. 1964년 제1회 '전국국민학교 야구대회'를 시작으로 2년 연속 우승했던 전통 명문 서림초 야구부가 문을 닫은 건 선수가 부족해서였다. 서림초를 졸업한 장광호(56) 덕적고 감독은 “선수가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며 “예전에도 해체 수순을 밟았다가 역사가 깊은 서림 야구가 없어지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해서 다시 만들었는데 선수를 모으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등록된 인천 13세 이하부 야구팀은 8개다. 동막초·상인천초·서화초·숭의초·창영초·축현초 등 6개 학교 야구부와 남동구베이스볼클럽(BC)·서구유소년 등 클럽 2개 팀이 있다. 앞서 서흥초·석천초 야구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유소년 야구 위기를 저출생, 원도심 인구 감소와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로만 돌리기도 어렵다. 미추홀구 도화동에 있는 서화초는 주변 지역 개발로 전교생 수가 1395명으로 늘었지만, 선수난은 마찬가지다. 정정호 감독은 “야구부원이 모자라서 선수 모집이 감독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고 했다.
야구부 선수난은 '클럽화'라는 과도기와도 맞물려 있다. 꿈나무들에게 리틀·유소년 야구단도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됐다. 엘리트 체육은 전환점에 서 있는데, 클럽 또한 뿌리가 단단하지 않다. 김홍집(51) 부평구리틀야구단 감독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선수가 네다섯 명으로 줄어들고, 코치도 없이 겨우 버텼다”고 말했다.
야구선수 길을 본격적으로 걷는 중학교부터는 경쟁이 시작된다. 초등 야구부와 리틀·유소년 선수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는 순간 피라미드 구조를 마주한다. 인천에서 야구부가 있는 4개 중학교(동산중·동인천중·상인천중·신흥중) 평균 인원은 42.5명이다. 3개 클럽까지 포함하면 해마다 80명 안팎의 졸업생이 4개뿐인 고등학교 야구부 진학에 뛰어든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야구부는 선수 수급에서 정반대 고민을 안고 있다. 불균형에 처한 아마야구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야구부로 진학하려면 경쟁 끝에 실력을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 각종 대회에 참가해 실적을 내는 게 중요하지만, 출전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출석으로 인정되는 결석 허용일수 때문이다. 중학교 선수들의 결석 허용일수는 1년에 12일이다. 그 이상은 결석 처리된다. 송순석 동인천중 감독은 “제일 큰 걱정이 결석 허용일수”라고 했다. 승리와 상위 라운드 진출은 무단결석과 직결된다. 송 감독은 “대회가 방학 기간에만 열리지 않는다. 전반기에 결석 허용일수를 다 쓰면 여름방학 이후에는 대회도 참가할 수 없는데, 그마저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고교야구는 정체, 대학야구는 위기
지난해 덕적고 야구부가 창단하면서 인천 고교 야구부는 4개로 늘었다. 인천에서 고교 야구부 창단은 1982년 제물포고 이후 40년 만이었다. 장광호 덕적고 감독은 “제물포고 야구부가 생겼을 무렵 동산고를 다녔는데, 그때만 해도 경기도에는 고교 야구부가 심석종고 하나뿐이었다. 경기도에서 고교 야구부가 계속 늘어나는 동안 인천은 정체됐다. 인천 야구가 침체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소속 경기도 고교 야구부는 클럽을 포함해 총 21개다. 인천은 권역별로 조별 경기가 펼쳐지는 고교야구 주말리그에서 1개 조도 꾸리지 못해 '서울·인천권'에 포함된다. 계기범 인천고 감독은 “기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도 부족하다. 인천 학생들이 참여하는 대회가 많이 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야구부 학생들이 올라가는 피라미드 정점에는 졸업이 있다. 지난해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천 고교 졸업생은 4명이 지명받았다. 최근 5년간으로 범위를 넓혀도 26명, 연평균 5.2명꼴이다. 해마다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10개 구단은 110명의 신인 선수를 선발한다. 강필선(51) 제물포고 감독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졸업생 등을 합쳐 신청자가 1000∼1200명 정도 된다. 전국 상위 5%에 드는 특출난 선수가 아니면 프로 진출이 어렵다”며 “그런 현실을 알면서도 신인 지명을 못 받으면 대학 진학도 접을 정도로 자포자기하는 학생이 많다”고 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하는 선수들이 재도전하는 보편적 길은 대학 진학이다. 대학야구 선수로 뛰면 2년 또는 4년 뒤 신인 드래프트를 신청할 수 있다. 과거에는 대학으로 진학해 프로 무대를 밟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직행하는 사례가 대세를 이룬다. 대학야구 위상도 예전 같지 않다. 대학 선수 의무 지명에 더해 올해부터 '얼리 드래프트(2학년 재학 중 드래프트 신청)' 제도가 시행되지만, 프로야구로 가는 문은 여전히 좁다.
인천에서 대학 야구부도 인하대가 유일하다. 정원배(50) 인하대 감독은 “대학야구가 죽으면 야구 기반이 흔들린다”고 단언했다. 정 감독은 “프로 진출이 힘들다고 생각해 야구를 그만두는 학생이 계속 나온다”며 “대학에 진학해서 다양한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프로야구가 아니더라도 지도자·심판 자격증 취득 등을 통해 다른 진로를 열어주려고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늘구멍 같은 프로 도전이 학생들에게 야구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경로'일 때, 야구를 통한 선택지가 많아질 때 꿈나무가 늘어난다고 야구계는 공감한다. 일단 숨통을 트는 방안으로 독립야구가 주목받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독립야구단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던 이양기(42) 동산고 감독은 “신인 지명을 받지 못해도 계속 도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들이 설 자리가 없다”며 “실업야구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독립야구가 절실하다. 결론은 지원”이라고 했다.
/이은경·이순민·이아진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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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운영·조례 제정 경기도와 상반된 행보
“인재 육성에 도움…지자체 나서는 방법 필요”
“야구는 인기 종목이지만, 독립야구는 비인기 종목이잖아요.”
임호균 한국독립야구위원회 대외협력위원장은 지자체와 독립야구 지원 문제를 협의할 때마다 이런 말을 되풀이한다. 실업야구가 실종된 야구계에서 독립야구는 프로야구 신인 지명을 받지 못한 학생들의 희망이나 다름없다. 임 위원장은 “야구부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와서 무엇을 할지를 그동안 기성세대는 고민하지 않았다”며 “특정 기업에 기대는 실업야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축구 사례처럼 지자체가 지원하면서 다른 기회를 열어주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2019년부터 청년들에게 재도전 기회를 주는 '독립야구단 경기도리그'를 열고 있다. 6개 팀이 참여하는 리그 운영비와 출전 수당, 감독·코치 수당을 지원한다. 지난해 '경기도 독립야구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으로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올해까지 17명이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양승관 파주 챌린저스 단장은 “리그 비용을 지원받아도 구단 운영은 어려운 형편”이라면서도 “해마다 프로야구 선수를 배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지난 7월11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부산시체육회와 실업형 '시민야구단' 창단을 발표했다. KBSA는 야구단 창단, 부산시는 행정 지원, 부산시체육회는 기업 후원을 협력한다. 부산시 실업 야구단은 내년부터 KBSA리그에 참가할 예정이다.
구도 인천에서도 지방선거 국면을 통해 야구단 창단 논의가 활기를 띠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후보 신분이던 지난 5월14일 인천야구발전위원회·한국독립야구위원회와 '인천 야구 발전을 위한 정책 협약'을 맺었다. 협약서에는 실업형 독립야구단 창단 촉진, 야구장 확충과 시설 개선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인천야구발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학용 전 동산고 감독은 “프로야구밖에 없으니 야구 발전이 더디다. 야구단 창단은 인재 육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인천 야구 활성화 정책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시 체육진흥과 관계자는 “인천시장직 인수위원회 차원에서 독립야구단 지원 체계를 검토했지만 제도적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났다. 현재로선 야구단 창단이나 지원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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