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신' 김성근
1989년 돌풍·2000년대 왕조 이끌어
혹독한 훈련 기반 세 차례 우승컵 차지
'일구이무' 정신 바탕 매 경기 전력투구
▲'힐만매직' 트레이 힐만
'긍정 리더십' 인천팀 최초 외인 사령탑
선수와 격의없는 소통 더그아웃 활력
2018년 장타력 극대화 KS 우승 기적
야구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다. 1년에 144경기를 치르는 동안 연승과 연패를 거듭한다. 중요한 건 승패를 받아들이는 태도다. 선수단을 통솔하는 리더십이 빛을 발하는 때도 바로 이 순간이다.
22연승 신기록도 모자라 16연승을 내달린 팀이 있었다. 수염을 깎지 않은 감독의 징크스는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그 이면에는 “승리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여기며 안간힘을 쓴 집념이 있었다. 개막하자마자 6연패에 빠진 팀도 있었다. 야심차게 영입한 외국인 감독은 변함없이 운동장에 먼저 나와 ‘파이팅’을 외쳤다. 정답은 없었다. 두 가지 색깔의 리더십은 모두 선수단을 하나로 모았고, 기적과도 같은 결말을 일궜다.
'야신' 김성근
유언실행(有言實行). 2010년 초 문학구장 감독실 칠판에는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한다'는 뜻의 사자성어가 적혔다. SK 와이번스는 4승 4패로 시즌을 시작했다. 2007년부터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고, 2009년에도 7차전 끝에 아쉽게 우승을 놓친 SK 와이번스에 어울리지 않는 출발이었다.
전력투구를 하지 않은 승리는 없었다. 혹독한 훈련은 안간힘을 쓰는 야구로 이어졌고, 두려움은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SK 와이번스는 2010년 시즌 초반 16연승을 질주하며 선두로 올라섰다. 김성근(80) 감독은 2011년 펴낸 저서 '김성근이다'에서 “프로야구 팀의 존재 이유는 승리”라고 했다. SK 와이번스는 그해 133경기에서 84승을 올렸고, 한국시리즈에서도 4연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왕조'의 주축 타자였던 박정권은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십이 왕조의 원동력이었다. 일흔 나이에 펑고를 그렇게 쳐주셨다는 게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며 “연습을 많이 하면 그만큼 기회가 주어졌고, 운동장에 나가면 무서울 게 없었다”고 말했다.
일구이무(一球二無). '공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고, 진정으로 최선의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이 말은 김성근의 지론이었다. 승부를 가르는 공 하나 때문에 선수들은 겨우내 훈련에 매달렸다. 김성근 감독이 '전력의 반'이라고 표현했던 포수 박경완은 “전지훈련을 가면 손바닥이 터질 때까지 방망이를 휘두르며 매일 1000개가 넘는 공을 쳤다.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 야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대산 극기훈련으로 시작한 1989년 태평양 돌핀스의 돌풍도,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SK 와이번스 우승도 밑바탕에는 절실함과 믿음이 있었다. 태평양 돌핀스 포수였던 김동기는 “김성근 감독은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투수 기운을 북돋워줬다. 선수 자원이 부족해도 그런 믿음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김성근은 인천시민의 날인 2006년 10월15일 인천시청에서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처음 입었다. 그날 취임식에서 “그동안 감독 하면서 우승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오늘 처음 해보는 것”이라고 했다. 유언실행이었다.
'힐만 매직' 트레이 힐만
2017년 3월31일 SK 와이번스는 개막전에서 2대 3으로 패했다. 감독 트레이 힐만(59)은 당시 “결과를 빼고는 다 좋았다”는 소감을 남겼다. 날이 갈수록 연패 숫자는 쌓여 '6'에 다다랐다. 그해 주장이었던 박정권은 “동요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힐만 감독은 평정심을 유지했다. 운동장에서 '괜찮다'고 웃으며 독려하고 힘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힐만 감독은 구단 첫 번째 외국인 사령탑이었다. 메이저리그(캔자스시티 로열스)와 일본프로야구(닛폰햄 파이터스)에서 모두 감독을 맡았고, 2006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끈 화려한 경력 또한 눈길을 끌었다. 연패는 예상을 빗나간 출발이었다.
연패 끝에 거둔 2017년 시즌 첫 승, 그리고 힐만 감독의 KBO리그 데뷔 첫 승부터 마법 같았다. 4월8일 인천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최정은 홈런 네 방을 터뜨렸고, 팀은 9대 2로 이겼다. “가장 훌륭한 감독은 그 팀의 장점을 살리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을 헷갈리게 하지 않고 일정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임 일성대로 힐만 감독은 장점인 장타력을 극대화했다. 그해 SK 와이번스 타자들이 쳐낸 홈런 234개는 프로야구 40년간 어느 팀도 도달하지 못한 숫자였다. 초반 연패를 딛고 SK 와이번스는 와일드카드로 2년 만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힐만 매직'의 원동력은 긍정의 리더십이었다. 힐만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선수들과 격의 없이 지냈고, 행사장에선 분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장점을 살리는 야구도 계속됐다. '홈런 공장'은 2018년에도 233개의 홈런을 생산했다. 매직은 그해 가을 정점을 찍었다. 1차전 끝내기 홈런으로 시작한 플레이오프는 5차전 연장 역전 끝내기 홈런으로 끝났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정규시즌 1위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명승부를 거듭하며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마지막 6차전은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고, 홈런으로 역전한 경기였다. “가장 훌륭한 감독은 그 팀의 장점을 살리는 감독”이라는 지론은 데뷔 첫 승부터 한국시리즈 마지막 승리까지 유효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2년이었다. 계약 기간을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간 힐만에겐 인천시 명예시민증이 주어졌다. 그는 당시 “인천 팬들과의 경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고 했다. 박정권은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인내력을 보인 모습이 가을야구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은경·이순민·이아진 기자 smlee@incheonilbo.com
“오랫동안 야구한 인천에서 인정받고 싶다”
[김원형 SSG 랜더스 감독 인터뷰]
2007~2008년 우승 이끈 '왕조의 주장'
시즌 내내 선두 “투타 조화 선수 자신감”
“가을야구서 '관중수 1위' 성원 보답해야”
김원형(50·사진) SSG 랜더스 감독은 야구 인생의 반을 인천에서 보냈다. 프로 통산 134승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66승도 SK 와이번스에서 기록했다. 올스타전 휴식기였던 지난달 19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만난 그는 “정정당당하게 이기는 야구가 제일 재밌는 야구라고 생각한다”며 “인천에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SSG 랜더스는 후반기 들어서도 7할에 육박하는 승률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관중 수도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다. 구도는 김원형 감독이 주장이었던 그때를 떠올리고 있다.
▲개막 10연승을 시작으로 전반기 내내 1위를 달렸다. 지난해와 올해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자, 어려운 질문이다. 우선 달라진 건 선발진이다. 김광현·폰트를 중심으로 투수들이 완벽하게 자기 역할을 소화해준다. 마운드가 안정되니까 좋은 경기력이 나온다. 야수들도 초반에 점수를 못 내도 경기 후반 활발한 공격력으로 승리를 가져온다. 이런 모습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선수들에게 자신감이 생겼다.
▲SSG 랜더스 감독을 맡은 지 2년째다.
-때로는 부드럽고, 또 냉철하고, 그러면서 따뜻하게 다가가려고 한다. 선수들에게 바라는 점은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는 거다. 나이를 먹으면 신체 기능이 떨어지니까 기량을 유지하는 데 자기관리가 중요하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감독에 대해 잘 몰랐다. 경기에만 집중해서 시야가 좁았다. 팬들이 감독을 주목한다는 것도 몰랐다. 지금은 표정 관리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SK 와이번스 창단 멤버였고,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2007년부터 2년간 주장을 맡았다.
-개인적으로는 힘든 시기였다. 주장이었지만 기량은 떨어진 상태였다. 흔히 말하는 패전 처리 투수로 나설 때는 자존심도 상했다. 책임감 때문에 인내하는 자세도 생겼다. 그래도 박경완·박재홍·김재현·이호준·조웅천 등 베테랑들이 도와주니까 선수단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이름만 들어도 엄청난 선수들 아닌가. 한국시리즈에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는데 서운하지 않았다. 우승만으로도 기뻤다.
▲전반기 성적이 좋아서 부담이 되진 않는지.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도 '어쨌든 전반기는 끝'이라고 얘기했다. 후반기 58경기가 중요하다. 지금 이 시간부터 준비해서 좋았던 흐름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
▲인천에서 20년 동안 선수·코치·감독을 경험했는데.
-가끔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지역색이 강하다. 그만큼 야구에 대한 깊이가 있고, 연고팀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관심이 크니까 우리가 야구를 더 잘해야 한다. 인천에서 오랫동안 야구를 하면서 '여기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인천 야구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가을이 오고 있다.
-선수도, 구단도, 코칭스태프도 올해 하나의 목표를 갖고 시작했다. 2년 동안 코로나19 때문에 야구장에 관중이 없었다. 환호성도 잊고 있었다. 올해 개막전부터 팬들이 많이 오시니까 열기가 다시 느껴졌다. 팬들의 응원이 선두를 달린 원동력이었다. 최지훈·박성한·전의산 같은 젊은 선수들은 환호와 박수 소리를 처음 들으면서 야구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올해 더욱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본다. 관중 수 1위를 만들어주고 계신 팬들 성원에 보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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