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는 일이 고되지 않을 리가 없다. 높은 위치에 서면 그만큼 책임감도 뒤따른다. 2001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해 통산 451경기에 등판한 채병용(41)은 1336이닝 동안 마운드에 올랐다. 치어리더 배수현(39)은 20년간, 그러니까 인천 프로야구 역사에서 절반의 시간 동안 응원 단상에 올랐다. 전천후 보직을 자처한 채병용에게 야구는 '생존'이었고, 야구장에서 희로애락을 같이한 배수현에게 야구는 '청춘'이었다.
'구도 인천' 9회 연재를 마치고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야구에서 한 구단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이들을 '원클럽맨' 또는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칭한다. 인천 야구와 함께한 사람들은 원클럽맨,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로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
“위기때 먼저 내 이름 떠올리길 바랐다”
['원클럽맨' 채병용 SSG 2군 코치]
19시즌간 마운드 전천후 활약 '왕조의 주역'
2009 KS 혼신투 … 7차전 끝내기홈런 불운
“던지는 순간 '끝났다' 느껴 … 지금도 생각나”
“은퇴 후 코치 변신 “배운다 생각으로 지도”
2007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승리를 기록한 투수는 이듬해 한국시리즈 5차전 9회말에 등판했다. 점수는 2점 차. 1사 만루 위기에서 투수 앞 땅볼을 유도해 병살로 경기를 마무리한 투수는 마운드에 주저앉았다. SK 와이번스의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 순간이었다.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마다 등판했던 채병용은 2007년과 2008년 2점대 평균자책점에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이런 성적을 올린 투수는 KBO 리그를 통틀어 채병용말고는 아무도 없다.
지난 14일 강화 SSG퓨처스필드에서 만난 채병용은 야구 인생을 돌아보며 “김성근 감독님을 만났던 그때가 전성기”라고 했다. “운동을 그렇게까지 많이 해본 적이 없었어요. 억울해서라도 10승을 해야 했죠. 선수들 모두 마찬가지였어요. 그렇게 똘똘 뭉쳐서 우승한 거죠.”
통산 84승 73패 22세이브 29홀드. 2001년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고 2019년까지 채병용이 인천에 바친 기록이다. 은퇴 이후에도 지난해 전력분석원, 올해 SSG 랜더스 2군 투수코치로 그는 20년 넘게 '원클럽맨'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통산 성적과 한국시리즈 등판 기록이 보여주듯이 채병용은 선발·중간·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마운드에 올랐다. “제게 어울리는 보직이 '전천후'라고 생각했어요. 선발이 일찍 무너지거나 위기 상황에 몰렸을 때 누군가는 던져야 하잖아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채병용'이길 바랐어요.”
채병용이 잊지 못하는 한국시리즈는 20대 초반 나이로 에이스급 활약을 펼친 2003년도, 2년 연속 우승한 2007∼2008년도 아닌 2009년이다. 프로야구 40년 역사상 유일한 한국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이 나온 그 순간 채병용은 마운드에 있었다. 팔꿈치 수술을 앞뒀던 그는 주축 투수들이 이탈했던 그해 가을 야구에서 버팀목이었다. SK 와이번스가 2패로 몰렸던 플레이오프 3차전 선발로 나와 승리를 이끌었고, 최종 5차전에서도 선발로 나섰다. 한국시리즈에 오른 뒤에도 팀이 수세에 몰릴 때마다 등판해 4차전 선발승, 6차전 세이브를 기록했다.
7차전 동점 상황, 다시 그는 몸을 풀기 시작했다. 잠실구장 3루 관중들은 '채병용'을 연호했다. “그날 아침까지 팔이 굽어 있었어요. 함성 소리를 들으니까 뭉클해져서 마운드에 올랐죠. 마지막 공을 놓는 순간 끝났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른 구종을 선택했더라면, 내가 아프지만 않았더라면, 아니 조금만 덜 아팠더라면 하는 생각이 지금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요.”
팔꿈치 수술과 공익근무요원 복무로 그는 공백기를 보냈다. 그때마다 채병용을 일으킨 건 '다시 해보자'는 되뇌임이었다. 너클볼도 장착했다. “살아남기 위해서였어요. 구속이 떨어진 상태였고, 지금 가진 구종으로 타자를 상대했을 때 과연 제압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너클볼을 익히는 데 거의 2년이나 걸렸죠.”
채병용 손에는 이제 글러브와 공이 아닌, 수첩과 펜이 쥐어져 있다. “가르친다기보다는 배운다는 생각으로 코치 생활을 하고 있어요. 인천 야구 역사가 길잖아요.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후배들이 갈고닦으면 인천 야구가 더욱 발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은경·이순민·이아진 기자 smlee@incheonilbo.com
※ '인천 프로야구 40년 올스타' 연재 이후, 우완선발 부문 후보에서 채병용 SSG 랜더스 코치가 누락된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2001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해 '원클럽맨'으로 통산 1336이닝, 84승을 기록한 채병용 코치는 2008년 승률왕을 차지해 후보 선정 기준을 충족했으나, 수상 실적과 기록 집계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습니다. 채병용 코치와 SSG 랜더스 구단,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20년간 인천야구 지킨 '응원단상의 전설'
['프랜차이즈 치어리더' 배수현]
중구 신흥동 출신 … “아버지 덕 도원구장 익숙”
“선수들에게 좋은 기운 전달할 수 있어 행복해”
“인천야구는 내 청춘이 담긴 역사 … 뗄 수 없어”
“마음은 벌써 KS 준비 … 마지막까지 응원 부탁”
“응원단상은 그라운드와 관중석 사이에 있죠. 선수와 팬을 연결해주는 게 치어리더, 제 역할이에요.”
자신을 치어리더계 일명 '시조새'라고 칭하는 SSG랜더스 치어리더 배수현. 프로야구 40년 역사의 절반에 해당하는 20년간 인천 야구만 응원해 온 그는 단순한 치어리더가 아니다.
인천 중구 신흥동 출신으로 오직 인천 야구만을 현장에서 응원해 온 그는 인천을 위해 선수들과 같이 뛴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어린 시절, 스포츠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도원구장을 자주 찾았어요. 제게 야구장은 결코 낯설지 않은 곳이었죠. 치어리더가 되고 싶어 구단 홍보팀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고, 면접을 보고 데뷔를 했는데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네요.”
야구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기억들은 그에게 오롯이 남아 있다. “관중들과 함께 힘차게 응원하며 선수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달해 줄 수 있다는 게 행복해요. 제게도 조금이나마 승리기여도 지분이 있다고 믿어요.”
오랜 세월을 관중들과 수많은 경기를 응원해왔지만 배수현에게 잊을 수 없는 세 가지 장면이 있다. 2007년 SK 와이번스가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했을 때, 2018년 당시 넥센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 경기, SSG 랜더스 창단 첫 경기에서 최정 선수가 쏘아 올린 홈런이다. “어릴 때는 눈물이 많지 않았는데, 극적으로 이기거나 꼭 승리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통한 경기가 끝나면 눈물이 흘러요. 인천 야구는 제 청춘이 담긴 제 역사에요.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희로애락이 제 인생에 있다 보니 야구는 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됐죠.”
그는 최근 관중 수가 늘면서 인천 야구를 응원하는 분위기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전한다. “옛날 야구는 단순히 어른들의 문화였지만 이제는 확 바뀌었어요. 추신수·최정·김광현 선수 등 스타 플레이어도 많아지고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죠. 인천 야구가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마흔 살이 된다며 은퇴를 고민 중이라는 그는 아직도 먼발치에서 야구장만 봐도 기운이 솟구친다. “벌써 한국시리즈를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시리즈를 경험하지 못한 지금 치어리더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기도 해요. 시즌 내내 좋은 성적을 내는 SSG 랜더스에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올해 마지막까지 인천 야구를 즐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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