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흔히 '기록의 스포츠'라고 한다. 1년에 144경기를 치르는 동안 공 하나하나가 쌓여 순위가 줄 세워지고, 각종 비율이 계산된다.
숫자가 기록의 전부는 아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20권 가까운 야구 서적을 펴낸 작가 김은식(50)이 야구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돌핀스 유민'이 가진 추억 때문이었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인천 프로야구 전속 사진가로 활동한 김노천(57)에게 매일 천 번 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른 야구장은 '평생직장'이었다.
추억을 써내려간 김은식의 문장과 찰나를 포착한 김노천의 사진으로 인천 야구는 잊힐 뻔했던 이야기를 간직했다. 지금도 숫자 너머에서 구도 인천의 기록들은 새겨지고 있다.
“돌아보면 인천야구가 내 인생 그 자체”
[인천 프로야구 사진가 김노천]
1993년부터 시작 … 내년이면 30년째
경기 전·중·후 하루 1000장 이상 촬영
“1998·2007년 정상, 그날 기억 생생해”
“2018년 KS 우승사진 가장 기억 남아”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김노천 한국미디어저널 이사장은 카메라를 들고 '플레이 볼' 3시간 전 인천SSG랜더스필드에 도착한다. 사전 행사를 챙기고, 예상 달성 기록 등을 점검한 뒤에 그라운드로 내려가는 일의 반복이다. 지난 15일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하루에 찍는 사진이 1000∼1500장 정도”라고 했다.
야구 사진가로의 첫발은 야구와 관련없었다. 그는 1993년 태평양 공채로 입사했다. 처음 발령 난 곳이 태평양 돌핀스 야구단이었다. 인천공설운동장 야구장(도원구장·숭의구장)을 매일같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동인천고 재학 시절 야구부가 생겨 관심을 갖기도 했지만, 야구장에 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야구장 분위기도 지금과 사뭇 달랐다. “도원구장 지정석은 홈 플레이트 뒤였는데, 사진기자들과 지정석 계단 양쪽 끝에서 촬영했어요. 경기에서 지니까 흥분한 관중들이 컵라면 국물 버리는 통을 집어던진 거예요. 바로 아래 있다가 국물을 뒤집어썼죠.” 그해 태평양 돌핀스는 리그 꼴찌였다.
태평양 돌핀스가 처음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1994년 시즌을 마치고 그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예술 사진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파리에서도 출근하듯이 공항에 가서 스포츠신문을 받아왔어요. 20개월 동안 일했더니 야구에 중독되더라고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98년 그는 다시 야구장으로 향했다. 야구단 직원은 아니었지만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촬영팀으로 참여했다. “먼발치에서 바라봤지만 필름 작업하고 조명이 꺼진 야구장을 나왔던 그날 밤이 기억에 생생해요. 인천 프로야구 첫 우승이었잖아요.”
김노천과 인천 프로야구가 다시 인연을 맺은 건 2000년 SK 와이번스 창단 때였다. 그는 사업체를 꾸려 전속 사진 계약을 맺었다. 구단 소속이 아닌 외주 형태로 프로 스포츠 사진을 전담한 건 그가 '대한민국 1호'다. 그만큼 인천 야구 사진에 잔뼈가 굵은 이도 없었다. 그리고 1998년의 감각은 2007년 가을 또다시 되살아났다. “SK 와이번스 창단 첫 우승이었는데, 경기가 끝나고도 사진 정리를 마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어요. 마감을 끝내고 노트북을 덮은 뒤에야 감동이 몰려왔죠.”
30년 가까이 인천 프로야구를 촬영한 그에게 한 장의 사진을 꼽아 달라고 하자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2018년 한국시리즈 6차전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은 김광현 선수가 마운드로 달려온 최정 선수와 부둥켜안으며 환호했던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다. “우승 장면을 혼자 찍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 명이 동시에 카메라 셔터를 눌렀는데, 그때 자리에서 각도가 좋았어요. 선수들이 뛰어나가면서 마운드를 가리기 직전에 환호하는 얼굴들이 딱 눈에 담기더라고요.”
경쟁력을 찾고 싶어서 파고든 사진은 그에게 경제력을 만들어줬고, 야구장은 평생직장이 됐다. “내년이면 30년째니까 고맙죠. 인천 야구 사진을 찍으며 자식들을 키우고 30년간 먹고살았으니까요. 돌아보면 인천 야구가 인생 그 자체였어요.”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1989년 '투수 삼총사' 이야기 쓰고파”
['돌핀스 유민' 야구작가 김은식]
돌핀스 글 쓰다 우연찮게 야구작가 길로
'야구의 추억' 등 20권 가까운 서적 집필
“숭의동서 유년기 보내 인천야구에 첫정
“인천팀 혼돈기, 마음 둘 곳 없었던 때도”
'그의 141구는 아직도 내 마음을 날고 있다'.
김은식 작가가 처음 야구를 주제로 2007년 펴낸 책 '야구의 추억'에는 이런 부제가 달렸다. 인천 야구를 오래 봤다면, 태평양 돌핀스 돌풍을 기억한다면 누군가를 떠올릴지 모른다.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연장 11회말까지 고독하게 마운드를 지켰던, 결국 끝내기 홈런을 맞은 141구째 공 하나 때문에 패전투수 멍에를 써야 했던 투수 김홍집 말이다. 이 책의 후속편으로 2008년 발간한 '돌아오지 않는 2루 주자'에서 김은식은 “사실 나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팀 돌핀스의 유민 중 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같은 해 연재한 글에선 “태평양 돌핀스의 야구를, 단 한 경기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이라고 썼다.
지난 26일 경기도 하남시 자택에서 만난 김은식에게 돌핀스 유민의 심정을 물었다. “유민은 떠도는 사람들이잖아요. 인천을 생각하면 SK 와이번스, 역사를 따지면 현대 유니콘스로 분리 수용되는 때였는데 마음 둘 곳이 없었죠. '돌핀스가 내일은 이겼으면' 기도하면서 잠들고, 애절했던 마음이 그리웠어요. '죽을 때까지 그렇게 야구를 보는 날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야구 서적을 20권 가까이 펴냈지만, 출발이 야구 작가는 아니었다. “2006년 돌핀스를 추억하는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 라디오 방송국에서 예전 선수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해보자는 연락이 온 거예요. 야구 전문가가 아니니까 거절하려고 보니 프로듀서가 돌핀스 팬이더라고요. 프로그램이 오래가진 않았는데, 자료 조사한 게 아까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죠.”
그때 글들을 모은 책이 '야구의 추억'이다. 그가 연재한 선수들의 이야기는 포털 사이트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야구의 추억' 시리즈 외에도 '한국 프로야구 결정적 30장면', '마지막 국가대표' 등의 책을 펴냈다. 저술 활동 내내 특정 구단·선수에 치우치지 않았지만, 돌핀스 유민이라는 뿌리는 변함없다. 인천문화재단 총서로 2013년에 쓴 '삶의 여백 혹은 심장, 야구'에는 인천 야구를 향한 애정이 녹아 있다.
우연찮게 야구 작가의 길로 들어선 것처럼, 인천 야구와의 만남도 우연이 겹쳤다. 충북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 살 무렵부터 야구장이 지척이었던 미추홀구 숭의동에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세계야구선수권 대회가 있었어요. 그때부터 글러브와 배트를 들고 동네 야구를 했어요. 삼미 슈퍼스타즈 기억도 강렬했고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는데 인천 야구에 첫정을 준 셈이죠.”
그는 올 초 '한국 야구의 발전과 프로야구의 제도화 과정'이라는 논문으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마이뉴스에도 매주 '김은식의 야구야'를 연재한다. “태평양 돌핀스 정명원·최창호·박정현 투수 삼총사 스토리를 쓰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지금까지 야구를 보면서 1989년만큼 기뻤던 적이 없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도 그해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에요. 고등학생 때 방에서 몰래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로 들었는데 '곽권희 쳤습니다, 센터 오바' 중계 멘트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생생해요. 끝내기였으니까 부모님한테 걸릴까봐 바로 라디오를 끄고 혼자 '이겼다' 했죠.” 김은식이 간직한 인천 야구의 추억들은 아직도 고갈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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