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꼴찌' 삼미 슈퍼스타즈
1982년 창단 인천 연고 최초 프로야구팀
KBO리그 최저 승률·최다 연패 기록 비운
▲'짧았던 인연' 청보 핀토스
단일시즌 최저 팀타율 등 약체 이미지 여전
등장 2년 반 만에 매각…역대 최단명 구단
▲'돌고래의 꿈' 태평양 돌핀스
사상 첫 가을야구·한국시리즈 경험 선사
1994년 정명원·김경기 활약 속 정상 문턱
▲'애증의 이름' 현대 유니콘스
1998년 압도적 성적 인천팀 첫 우승 영광
서울행 조건 인천 등지며 연고 이전 '상처'
▲'왕조의 추억' SK 와이번스
2007·2008·2010·2018년 리그 챔피언
6년 연속 KS 진출 등 성적·흥행 '전성기'
▲'새로운 시작' SSG 랜더스
2021년 시작 2년차…인천구단 역사 계승
추신수·김광현 합류 등 적극 마케팅 눈길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2년 7월17일, 인천공설운동장(숭의종합운동장·도원구장)에서 프로야구 첫 경기가 열렸다. 그해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야구장 보수 공사로 삼미 슈퍼스타즈는 전기리그 홈 경기를 춘천에서 치렀다. 인천시민 앞에 첫선을 보인 경기 상대는 서울 연고 MBC 청룡.
결과는 4대 10으로 대패였다. 삼미 슈퍼스타즈 후기리그 성적은 0승6패가 됐다. '구도'라는 자부심을 가진 관중들에게 낯선 야구였다. 그때부터 인천 프로야구단에는 반복되는 꼴찌와 구단 매각이라는 비운이 계속됐다. 40년 세월은 야속하지만은 않았다. 썰물 뒤에는 밀물이 들이쳤다. 구도의 시대도 다시 찾아왔다.
▲'도깨비팀' 슈퍼스타즈, '기록의 팀' 핀토스
“감독을 빼놓고는 스타가 없습니다.” 1982년 개막을 앞두고 코치 이선덕이 한 말이다. 초대 감독은 '한국의 베이브 루스' 박현식. 유일한 스타였던 그마저도 성적 부진으로 개막 한 달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최종 성적은 15승65패. 1할8푼8리의 승률은 KBO리그 역대 최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듬해 삼미 슈퍼스타즈는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린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거물급 투수 장명부가 입단했고,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임호균이 합류했다. 타선에선 '3할 타자' 양승관과 국가대표 김진우·정구선이 매서운 방망이를 휘둘렀다. 감독은 박현식과 함께 인천 야구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김진영이었다.
하지만 전기리그 우승 문턱에서 감독이 심판과 충돌하며 구속되는 악재를 만났고,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다. 이듬해 다시 꼴찌로 추락한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5년 KBO 최다 연패 기록인 18연패에 빠졌다. 그해 전반기가 끝나고 삼미 슈퍼스타즈는 60억원 매각 대금이 오간 끝에 청보 핀토스로 바뀌었다.
청보 핀토스도 기록의 팀이었다. 현재 KBO 총재인 허구연은 1986년 시즌을 맞아 35세 나이에 최연소로 청보 핀토스 감독이 됐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해 팀타율 2할1푼9리는 삼미 슈퍼스타즈도 해내지 못한, 시즌 최저 팀타율이다. 청보 핀토스는 1987년 4월23일부터 인천에서 14경기를 내리 지면서 역대 홈경기 최다 연패도 기록했다.
청보 핀토스는 1987년 10월4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빙그레 이글스와 연장 끝에 5대 3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이튿날 태평양화학이 50억원에 청보핀토스를 인수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2년 반 만에 퇴장한 청보 핀토스는 KBO 프로야구단 가운데 역사도 가장 짧다.
▲'돌풍' 돌핀스, '애증' 유니콘스
하위권을 전전했던 태평양 돌핀스가 마스코트였던 돌고래처럼 어쩌다 점프하던 때가 있었으니, 바로 1989년과 1994년이다. 오대산 극기훈련으로 불기 시작한 돌풍은 1989년 내내 프로야구에 휘몰아쳤다. 감독은 김성근이었다. 62승 가운데 40승을 합작한 '삼총사' 박정현·최창호·정명원은 선동열에 이어 평균자책점 2·3·4위에 오르며 '짠물야구'를 선보였다. 태평양 돌핀스는 박정현의 14회 완투와 김동기의 끝내기 홈런 등에 힘입어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플레이오프까지 올랐다. 인천 연고팀 사상 첫 '가을야구'였다.
돌고래가 다시 뛰어오른 건 1994년이었다. 역대 최초 40세이브를 기록한 정명원, 막판까지 홈런왕 경쟁을 벌인 김경기 등이 투타에서 활약했다. 꼴찌였다가 1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팀으로 거듭났지만, LG 트윈스에 4연패하며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이듬해 인천 야구팬들은 470억원이라는 금액이 걸린 매각 소식을 들었다. 인수 기업은 굴지의 재벌, 현대였다.
'태풍 태평양, 돌풍 돌핀스'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로 바뀌었다. 현대 유니콘스는 199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이어 1998년 압도적 성적으로 정규 시즌 1위에 올랐다. 선발투수 5명 모두 10승 이상을 기록한 '투수왕국'은 막강했고, 박경완·박재홍 등이 가세한 타선도 최강이었다. 김경기·최원호·박진만·김수경(인천고), 장광호·정민태·위재영(동산고) 등 인천 출신 선수들도 활약했다.
그해 10월30일 한국시리즈 6차전이 열린 인천구장, 9회초 관중석에선 '연안부두' 노래가 울려퍼졌다. 중견수 이숭용이 마지막 공을 잡은 순간, 에이스 정민태는 마운드에서 껑충껑충 뛰며 동료들을 끌어안았다. 인천 야구의 한이 풀린 순간이었다.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안긴 현대 유니콘스는 2000년 시즌을 앞두고 인천을 등졌다. '2년 뒤 서울 입성'을 조건으로 수원을 임시 연고지로 삼았다. 인천 야구팬들에겐 앞선 세 차례 매각보다도 갑작스러웠고, 상처도 큰 이별이었다.
▲'왕조' 와이번스, 랜더스 '새로운 시작'
현대 유니콘스가 떠난 인천에는 SK 와이번스가 들어왔다. 해체한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들을 주축으로 창단한 팀이었다. 2002년 문학구장 개장으로 관중 수는 2000년 8만4563명의 5배에 가까운 40만2732명으로 늘었고, 2003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했지만 열기는 예전같지 않았다. 응원 구호로 '인천 SK'를 내걸고, 김경기·박경완·박재홍을 잇따라 영입했던 배경이다.
SK 와이번스는 2007년 정점에 올랐다. '태평양 돌풍'을 이끌었던 감독 김성근이 돌아왔고, 선수단은 신구 조화를 이루며 1위를 차지했다. '왕조'로 불리며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 3회 우승하는 위업을 이뤘다. 2012년 인천 프로야구단 사상 처음 시즌 관중 수 100만명도 돌파했다.
SK 와이번스는 2018년에도 극적인 승부를 연출하며 정상에 올랐지만, 지난해 1월 인천에는 또다시 야구단 매각 소식이 전해졌다. 신세계 이마트가 1352억8000만원에 인수하며 SSG 랜더스로 바뀌었다. 인천 야구 역사를 계승한 SSG 랜더스에는 메이저리거 추신수·김광현도 합류했다. 올시즌 SSG 랜더스는 1위를 달리며 가장 많은 관중 수를 기록하고 있다. 해설위원 박재홍은 “아픔이 많고, 팬들에게도 희비가 엇갈린 역사였다”며 “지역사회에서 구도에 걸맞은 분위기를 형성하면 인천 야구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경·이순민·이아진 기자 smlee@incheonilbo.com
생명·인연·감사…전설들이 말하는 인천야구
'미스터 인천' 김경기(54)에게 인천 야구는 '생명'이다. '인천 야구의 대부'로 불리는 부친 김진영(1935~2020)이 일군 '구도 인천'은 그를 태어나게 했고, 태평양 돌핀스 4번 타자로서의 활약은 그를 살아 있게 했다. 김경기는 “인천에서 야구를 하지 않았으면 오늘날 내가 됐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라운드를 누볐던 선수들에게 인천 야구의 의미를 물었다. 포지션과 세대는 달라도 야구인들은 인천 야구를 마음속에 새겼다.
'호타준족'의 대명사인 박재홍(49)에게 인천 야구는 '같이 성장한 존재'다. 그는 “인천에서 젊을 때는 거침없이, 나이 들어선 편안하게 야구를 했다. 인천 프로야구도 만년 하위권이었다가 강팀으로 발돋움했다”고 말했다.
인천과 야구로 맺은 '인연'을 품고 살아가기도 한다. 태평양 돌핀스 좌완 에이스였던 최창호(56)는 “경북고를 졸업하고 연습생 테스트를 받으러 왔던 제물포고에서 코치를 하고 있다. 야구 선수로 사랑받은 인천과 인연이 많다”고 떠올렸다.
인천 프로야구단 유일 영구결번 주인공인 박경완(50)을 야구 선수로 '완성'시킨 곳도 인천이었다. 그는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인천에서 나의 모든 야구가 완성이 됐다”고 했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국가대표이자, 프로야구 초창기 명투수였던 임호균(66)은 “아직까지도 야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인생이 야구에 담겨 있다”고 했다.
그런 인천 야구를 포수 김동기(59)는 '감사'하며 살아간다. 인천의 안방을 책임졌던 그는 “아직도 알아보는 분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도원구장 추억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인천 야구는 누군가를 야구선수로 태어나게 했고, 누군가와는 같이 성장했으며, 또 누군가의 야구 인생을 꽃피우는 인연이 됐다. SK 와이번스 '왕조'의 주역이었던 박정권(41)은 “인천 야구의 일원이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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