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야수 '국민 우익수' 이진영
창단멤버 합류 2000년대 강팀 발돋움 일익
2006년 WBC 한일전 호수비 강렬한 인상
프로 통산 기록 절반가량 문학구장서 남겨
▲지명타자 '큰형님' 김기태
인하대 출신…2004년 팀 최초 골든글러브
타격능력·리더십 뛰어나 해결사·맏형 역할
2003년 주장 맡아 창단 첫 한국시리즈 견인
2003년 정규리그를 4위로 마친 SK 와이번스는 처음 '가을야구'를 경험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2연승한 SK 와이번스는 플레이오프에서 기아 타이거즈와 맞붙었다. 3차전 이진영(42)의 2점 홈런에 이어 김기태(53)의 적시타가 터졌다. SK 와이번스를 신흥 명문 구단으로 도약시킨 좌타자들의 활약은 '인천 SK' 구호가 물결을 이룬 문학구장에서 한국시리즈의 첫 번째 페이지를 열었다.
외야수-'국민 우익수' 이진영
2003년 10월19일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문학구장은 3만400석이 매진됐다. 처음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SK 와이번스 상대는 현대 유니콘스였다. 인천을 떠난 팀과 인천에 새로 둥지를 튼 팀이 우승을 놓고 인천에서 맞붙은 첫날,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했던 이진영의 타구가 관중석에 떨어졌다. 동점을 만드는 홈런이었다. 3차전 승자는 SK 와이번스였다.
닷새 뒤 잠실구장에서 열린 6차전 3회말에도 이진영은 2점 홈런을 터뜨렸다. 경기는 2대 0으로 끝났다. 7차전까지 이어진 혈투 끝에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창단 멤버 이진영은 SK 와이번스가 2000년대 강팀으로 발돋움하는 초석을 놨다.
이진영이 '인천 프로야구 올스타' 외야수 부문 주인공이 됐다. 인천 야구인 40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31명이 인천 프로야구 40년을 대표하는 외야수로 이진영을 꼽았다. SSG 랜더스 코치 전형도는 “인천 연고팀 경력이 길진 않았지만, 임팩트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진영이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한 지 1년이 지난 2000년 프로야구판을 뒤흔드는 일이 벌어진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쌍방울 레이더스는 해체했고, SK 와이번스가 창단했다. '서울 입성'을 내걸며 떠난 현대 유니콘스 대신 SK 와이번스는 인천을 연고지로 삼았다. 이진영은 문학구장에서 실력이 만개했다. 2003년 안타 158개(4위)를 치며 3할2푼8리(5위)를 기록했고, 이듬해에도 3할4푼2리로 리그 타격 2위에 올랐다.
정확한 타격과 강한 어깨로 입지를 굳힌 이진영은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국민 우익수'로 떠올랐다. SK 와이번스 타자 가운데 유일하게 태극마크를 단 이진영은 그해 3월5일 한일전에서 0대 2로 밀리던 4회말 2사 만루, 그림 같은 다이빙 캐치로 한국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승부의 분수령이었다. 같은 달 16일 일본과 다시 맞붙은 경기에서도 레이저 송구로 홈에서 주자를 잡아냈다.
이진영은 SK 와이번스가 2007년부터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동안에도 주축 타자로 활약했다. 3할대 고감도 타격도 여전했다. 2008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선 1루수로 나와 3대 2로 치열했던 9회말 1사 만루, 원바운드 송구를 잡아 살얼음판 승부를 끝내는 더블플레이를 이끌어냈다. 한국시리즈 판세를 기울게 한 결정적 수비였다.
이진영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LG 트윈스, KT 위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통산 2160경기에서 2125개 안타를 쳤다.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013경기, 1015개 안타는 인천에 남긴 기록이다. 2020년에는 타격코치로 인천에 돌아왔다. SSG 랜더스 단장 류선규는 “국민 우익수로 인천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였다”고 말했다.
지명타자-'형님 리더십' 김기태
2003년 창단 첫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SK 와이번스를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전년도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와의 준플레이오프부터 예측불허 승부가 펼쳐졌다. 그해 10월5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2차전은 3타수 3안타를 기록한 김기태 활약을 발판 삼아 SK 와이번스 승리로 끝났다.
기아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SK 와이번스는 세 경기를 모두 쓸어 담았다. 주장 김기태는 한국시리즈 진출이 걸린 3차전 4회말 승부에 쐐기를 박는 적시타를 터뜨렸다. 2002년 올스타전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만원을 이룬 문학구장에는 '인천 SK' 구호가 적힌 수건이 물결을 이뤘다.
인천 야구인 40명이 참여한 '인천 프로야구 올스타' 투표에서 지명타자 부문 주인공은 2003년 주장으로 SK 와이번스 돌풍에 앞장섰던 김기태(16표)가 선정됐다. 지명타자는 올스타 투표에서 가장 경합이 펼쳐진 포지션 중 하나였다. 특히 선수단을 이끈 주장들이 각축했다. 2000년대 SK 와이번스 중심타자로 활약하며 2011년 주장을 지낸 이호준(11표), SK 와이번스 왕조의 일등공신이자 은퇴 시즌이었던 2010년 주장으로 우승을 일군 김재현(9표),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해 현대 유니콘스의 '영원한 캡틴'으로 남은 이숭용(4표)이 고른 지지를 얻었다.
김기태는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인하대로 진학했다. 1989년 가을철대학야구연맹전에선 홈런포를 가동하며 준우승 주역이 됐고, 이듬해 백호기 야구선수권대회에서도 인하대를 결승으로 이끌었다. 1990년 세계야구선수권은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대회였다. 김기태는 대만과의 준결승리그, 푸에르토리코와의 3·4위전 경기에서 연달아 홈런을 터뜨렸다. 신생팀 특별지명을 통해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데뷔한 그는 프로에서도 힘과 정확성을 모두 갖춘 방망이를 선보였다.
김기태는 프로야구판을 술렁였던 대형 트레이드 주인공이기도 했다. 1998년 삼성 라이온즈는 선수 2명에 20억원을 얹어 김기태·김현욱을 영입했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투타 주축 선수들을 보내고, 구단 운영비를 조달했다. 3년 뒤에는 무려 8명이 유니폼을 갈아입은 트레이드를 통해 SK 와이번스에 입단했다.
김기태는 2004년 타율 3할2푼을 기록하며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거머쥐었다. SK 와이번스가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한 건 그해 김기태와 이진영(외야수 부문)이 처음이었다. 2005년 시즌 뒤 은퇴한 김기태는 SK 와이번스 타격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LG 트윈스와 기아 타이거즈 감독을 거쳐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격코치를 맡고 있다. 김기태와 선수 생활을 함께했던 인하대 감독 정원배는 “타격 능력이 출중한 해결사였다”며 “팀을 하나로 모으는 리더십도 뛰어났다”고 말했다.
/이은경·이순민·이아진 기자 smlee@incheonilbo.com
[KBO 원년 올스타] 삼미 김재현, 인천팀 첫 투수 올스타…은퇴 후 모교 지도자로
1982년 시즌 47경기 소화·190이닝 투구 '철완'
“꼴찌팀에서도 한명은 뽑아야 하니 선발” 웃음
“동산고 코치 시절 류현진·송은범 등 배출 뿌듯”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2년 7월 프로야구 원년 올스타전은 서울·부산·광주에서 3연전으로 치러졌다. 6개 구단이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었고, 삼미 슈퍼스타즈는 서군에 속했다.
팬 투표로 선정된 '베스트10' 명단에 꼴찌팀 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는 없었다. 그래도 감독 추천으로 투수 김재현, 포수 금광옥, 3루수 조흥운, 유격수 송경섭, 중견수 양승관, 우익수 김경남 등 6명이 올스타로 이름을 올렸다.
투수로는 유일하게 원년 올스타전에 나섰던 김재현(63)은 은퇴 이후 모교인 동산고 코치를 지냈다. 야구계를 떠나 인천항에서 하역반장으로 일하는 그가 지난 6월2일 퇴근길에 인천일보를 찾았다.
▲청보 핀토스에서 은퇴한 뒤 어떻게 지냈는지.
-1988년부터 김학용 감독님 부름을 받고 동산고 투수코치를 했다. 처음 가르쳤던 투수가 위재영이다. 황금사자기·봉황기 우승도 이뤘다. 속초상고 감독을 맡았다가 1990년대 후반 동산고 투수코치로 돌아왔다. 그때 이현승·송은범·금민철·류현진을 만났다. 좋은 투수들을 배출해서 뿌듯했는데, 찾아오는 제자가 한 명도 없다.(웃음)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멤버로 합류했는데.
-실업야구 선수 생활을 했고, 육군 경리단에서 전역할 무렵에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개막 직전 팀에 들어가보니 경기를 뛸 만한 투수가 거의 없었다.
▲원년 80경기 시즌이었는데 47경기에 등판했고, 무려 190이닝 넘게 투구했다.
-팀에서 가장 많이 던졌다. 하루 걸러 마운드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6승 19패로 원년 최다 패 투수였다. 올스타전에 나가긴 했는데, 꼴찌팀에서도 한 명은 넣어줘야 하니까 선발됐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웃음)
▲1군 경력은 1986년이 마지막이다. 짧았던 프로 생활에 대한 아쉬움은.
-허리 부상 때문에 뛸 수가 없었다. 교통사고가 나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일들이 떠올라서 요즘 프로야구를 잘 안 보는데, 그래도 평생 잊히지 않을 추억들이 남았다.
/글·사진 이순민·이아진 기자 smlee@incheonilbo.com
인천 프로야구 올스타, 어떻게 선정했나
인천일보는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인천 야구인 40명과 '인천 프로야구 올스타'를 선정했다. 투수 3명(우완·좌완·구원)과 포수, 내야수(4명), 외야수(3명), 지명타자 등 총 12명이다.
올스타 후보는 42명이 추려졌다. 인천 연고팀에서 3년 이상 활동한 선수 가운데 KBO 공식 시상식과 골든글러브 수상자, 올스타전 베스트 멤버를 기준으로 삼았다. 국가대표로 각종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도 목록에 올랐다. 2000년대 이전에는 프로 선수들의 국가대표 출전이 불가능했던 점을 고려해 리그 최고의 선수로 구성됐던 한일 슈퍼게임 멤버도 반영했다. 2002년 SK 와이번스가 선정한 '인천 프로야구 20년 올스타'도 포함했다. 투수 포지션의 경우, 인천 연고팀에서 500이닝 이상 투구한 선수 가운데 선정 요건을 충족한 후보들로 올스타를 뽑았다.
5월18일부터 6월22일까지 진행된 투표에는 야구인 40명이 참여했다. 특정 시기에 몰리지 않도록 20대(5명), 30대(10명), 40대(10명), 50대(10명), 60대 이상(5명) 등 세대별로 배분했다. 20대는 SSG 랜더스 현역 가운데 인천 출신 선수로 한정했고, 30대는 인천 출신이거나 인천 연고팀 3년 이상 활동 선수로 추렸다. 공정한 투표를 기하기 위해 올스타 후보는 투표인단에서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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