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청도 분바위 채굴 흔적.

소청도 분바위는 우리가 아는 대리암이다. 대리암은 순수한 경우 백색을 띠지만 함유 불순물에 따라 다양한 색과 무늬를 가진다. 세계적으로 대리암은 화강암 등과 같이 건축용 석재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특히 연마면의 색깔과 무늬가 뛰어나 장식적 효과가 다른 재료에 비하여 크다. 또 대리암은 모스경도 3∼4로 무른 편이어서 가공하기가 쉬워 건축용 마감재·기념물·미장재·조각품 등의 재료로도 사용됐다. 그렇다면 막대한 규모의 소청도 분바위는 어떤 채굴 과정을 거쳤을까?

 

▲ 대리암인 분바위의 발견 및 채굴의 초기 역사

‘조선일보’(1931.11.18.) ‘長淵에 大理石鑛 埋藏量十億餘才 -明春에 개광한다고’란 기사에는 “황해도 장연군 백령면 대청리 김정호는 동면 소청도에 무진장의 대리석광을 발견하고 당국에 채취허가원을 제출하엿든바 지난 구월십일부로 허가되엿다는데… 측량한바 그 면적이 육만삼천삼백삼십칠평이나 된다하며 그 매장량은 십억만재(埋藏量十億萬才, 才=1입방척, 0.0278입방미터)에 달하리라하며 그 색은 심히 미려하고 십여 종류라는데… 멀리 구미 각국에도 수출케 되리라는 바 소청도는 황해 중앙에 잇서서 하관(下關) 대련(大連) 인천(仁川) 진남포(鎭南浦) 청도(靑島) 등지 항로의 주요점이니만침 운반에도 편리 할 터이라 하며 지금은 개광의 분망중인바 래년 봄에는 개광된다고” 알리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보아 발견자는 대청도의 김정호씨이고, 그가 1931년 채취허가권을 얻었다. 따라서 발견한 시점은 최소 1931년 이전이며, 매장량, 소청도의 교통의 이점 등 수출을 고려하여 그리고 1932년 봄부터 본격적 개발을 알리고 있다. 한편, 동일한 내용의 기사가 ‘동아일보’(1932.2.23.)에 ‘長淵에 大理石鑛’이란 제목으로 게재되었는데, 앞서 게재된 조선일보 내용보다 추가된 것은 “(전략)소청도산을 사용케 될 뿐만 아니라 멀리 구미각국에서도 수출케 되리라는 데 정가는 입방척일재(立方尺一才)에 二원五十전으로 三원五十전 내외라고하며(후략)”라고 쓰고 있어 대리석의 가격은 입방 척당 3원 정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부터 90년 전의 일이다.

최초 발견자인 김정호 씨는 채취허가권을 얻어 광산 개발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크며, 일본인도 광산 개발에 참여한 기사도 눈에 띈다. ‘부산일보’(1936.12.29.)에는 ‘無盡藏な大理石 年産額約三萬餘圓 -黃海道 小靑島で 着ク 採掘’ 기사(日文)에서 “山口縣(야마구치 현) 출신의 河村豊(카와무라 유타가)씨에 의해 경영이 4년째지만 그간 2개년은 채굴 및 기타의 준비 작업, 나머지 2년은 실제 채굴 및 반출되어 지금에 이르렀지만 품질이 가장 양호하며, 양이 무진장하다는 점에서 장래 촉망되고 있다. 현재의 연간 생산액은 1입방척당 3원 정도 하고 연 3만여원에 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채취한 석재는 발동선에 의해 인천으로 그리고 본선에 실어 일본 岐阜縣(기후현) 矢橋(야바시) 공장으로 운반해 동(同) 공장에서 제재(製材)하고 그 가치가 인정되어 內地 및 각 방면의 고급 건축 재료로서 자주 쓰이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로 보아 분바위는 우리나라에서 양질의 석재에 해당하며, 1930년대 초부터 한국과 일본인에 의해 채굴되고, 일본까지 운반하여 가공하고 매매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소청도 예동 해안가에는 당시 대리암을 채취하기 위한 착암 및 절개 흔적, 석재를 반출하기 위해 선박을 고정했던 바위가 해중(海中)에 있어 당시 상황을 증명해 주고 있다.

▲ 김석훈 백령중고 교감·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
▲ 김석훈 문학박사·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

/김석훈 문학박사·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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