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청도 옛 등대모습.

한 세기가 넘는 역사를 간직한 유인 소청도 등대는 어떤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까? 과거와 현재의 일부만이라도 알아보고자 한다.

 

▲항로표지의 변천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을 위해 항로를 표지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가 모든 등대에서 같은 방법으로 신호한다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소청도 등대의 경우 1908년 신설됐을 때 자체적으로 이미 빛(광파)과 소리(음파)로 알렸음을 지난 호에 게재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1957년 조직된 국제항로표지협회(IALA)에서는 전 세계 항로표지의 표준화를 통해 등대마다 자기 고유 신호를 갖게 했다.

① 광파 표지는 소청도 등대의 경우 고유 신호가 'Fl(4)W40(S)'인데, 이 뜻은 백색(W, White)의 섬광(Fl, Flashing light)이 매 40초[40(S)] 마다 4회 깜박임을 의미하며, 등명기(燈明器)는 3등 소형으로 광달거리는 35㎞이다. 즉, 이 점등 방식을 인식하며, 35㎞ 지점을 항해하면 다른 등대의 고유 신호가 나타나 항해를 이어가는 것이다. ② 음파 표지는 매 45초 1회 취명(吹鳴) 하는데, 전기폰을 사용하며 음달 거리는 4㎞이다. ③ 전파표지는 DGNSS(위성항법보정시스템)과 레이더 비콘(Radar Beacon)의 2종류를 사용하고 있으며, 과거에 비해 세밀한 정확성과 안전성을 확보하게 됐다.

 

▲시설의 변천

1908년 등대가 처음 점등됐을 당시 시설의 내용과 모습은 어떨까? 초창기 모습은 팔미도 등대를 통해 유추해 볼 따름이며, 다만 일본인의 숙소(관사)를 짓기 위해 산사면에 석축을 쌓아 평지 조성을 한 흔적이 남아 있다. 사무실의 모습은 팔미도 등대의 사무실과 비슷할 것으로 보이는데, 일본식의 단순한 건축인 박공형태의 단층건물이었을 것이다.

항로표지관리소의 큰 변화는 45억원을 들여 2004년부터 공사하기 시작하여 2006년 12월 20일 완료한 소청도 등대 종합정비사업을 들 수 있다. 이에 따라 1층 전시관, 2층 사무실 그리고 등탑과 부속시설, 야외전시장, 숙소 등 등대의 현대화를 이루어 등대해양문화공간을 갖추었지만 이전까지의 유물과 기록물이 잘 보존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단, 11.5(가로)×37.5(세로)×1.5㎝(두께)의 현판과 일부 문서가 국립등대박물관(경북 포항)에 소장되어 있지만 이들은 소청도 전시실로의 이관이 필요하다.

 

▲근무체계의 변천

등대 건설 초기에 총 직원은 5명이었지만 1996년부터 근무자 수는 총 3명이다. 그리고, 2명의 근무자가 매회 20일씩 근무하며, 1명이 순환하며 10일 휴무의 체계를 갖추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현재 소청도 등대의 주요 임무

주요 임무는 첫째, 항해 선박의 안전을 위한 광파, 음파, 전파표지 운영, 둘째, 인천항 부근의 무인표지 야간 기능 감시(1일 3회), 셋째, 해양 기상 정보(풍향, 풍속, 기압 등) 수집 및 유관 기관 정보 제공, 넷째, 등대 해양문화 공간 운영 및 기타 시설물 관리 등이 있다.

▲ 김석훈 백령중고 교감·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
▲ 김석훈 백령중고 교감·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

/김석훈 문학박사·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



관련기사
[김석훈의 보물섬] '생활사 박물관 건립'을 희망하며 과거 먹고 살기 힘들고 그래서 바빴던 20~30년 전 마을에 박물관 건립은 대규모 개발 이외에 주민에게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여유가 자신의 건강과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경향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담은 박물(기념)관이 마을 단위로 건립되어 지역의 정체성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인천에서도 시 단위에서 점차 마을 단위의 소규모 박물관 등 건축 재생을 통한 다양한 주제의 건축물이 증가 추세에 있으며, 개발과 보존의 가치를 아우르는 생활사 중심의 현장 밀착형 도 [김석훈의 보물섬] 소청도 '분바위' 명칭 유래와 전설 소청도 동남쪽 육지와 바다의 경계 해안가에 일정한 높이로 길게 자리 잡은 분바위. 바위의 명칭이 범상치 않은 것처럼 부르는 이름 또한 다양하다. 일명 분암 그리고 월띠가 그것이다. 이 바위의 유래와 관련된 내용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떤 의미가 있으며, 주변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 있을까? 해안가에 노출된 노두(露頭)로서 국가지질공원 지질명소로 지정되었으며, 소청도 하면 분바위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지질학의 성지'처럼 방문하는 곳이다. 행정구역상 옹진군 대청면 소청1리에 속하는 분바위는 어떤 유래와 전설이 숨겨져 있 [김석훈의 보물섬] 소청도 분바위(粉岩) 채굴의 역사 소청도 분바위는 우리가 아는 대리암이다. 대리암은 순수한 경우 백색을 띠지만 함유 불순물에 따라 다양한 색과 무늬를 가진다. 세계적으로 대리암은 화강암 등과 같이 건축용 석재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특히 연마면의 색깔과 무늬가 뛰어나 장식적 효과가 다른 재료에 비하여 크다. 또 대리암은 모스경도 3∼4로 무른 편이어서 가공하기가 쉬워 건축용 마감재·기념물·미장재·조각품 등의 재료로도 사용됐다. 그렇다면 막대한 규모의 소청도 분바위는 어떤 채굴 과정을 거쳤을까? ▲ 대리암인 분바위의 발견 및 채굴의 초기 역사‘조선일보’(1931.11. [김석훈의 보물섬] 소청도 분바위(粉岩) 채굴의 역사 소청도 대리석이 유명하다지만 외부인의 눈에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60년 전 조선일보(1958.7.11.) 기사에 '서해도서답사'란 제목에 소청도 내용의 일부를 발췌해 본다. “부락은 둘, 인구는 원주민이 팔백 피난민이 백오십이고, 이 섬의 유명한 것은 대리석산이다. 그리고, 이 대리석산 기슭에서 바닷물과 싸우면서 해삼이며 생복이며 굴을 캐어내는 마을 색시들이 석양볕에 기다란 그림자를 이끌면서 대리석 위를 더듬는 그 모습은 바로 한 폭의 그림. ~이윽고 동녘에 형광등이 아닌 달빛이 대리석산을 어루만지며 떠오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