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국방부가 지난주 포천시 자작동 6군단 부지 내 포천시 소유 부지를 시에 돌려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전쟁 이래 70년 간 점용했던 땅을 뒤늦게 반환하는 것이지만, 반가운 연말 선물이 틀림없다. 도농복합도시 포천시가 도시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소흘읍과 포천시청을 잇는 축선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자작동 6군단 부지는 이 라인의 노른자에 해당하는 땅이다. 더군다나 부지의 무상사용 기한이 올해 말 끝나도 국방부가 다른 부대를 배치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아 포천 관계자들이 애를 태우던 참이었다.

자작동은 해발 737m 왕방산 남동쪽에 위치한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곳이다. 왕방산과 포천천 사이 해발 100m 안팎 구릉지에 꽤 넓은 경작지를 일굴 수 있었던 덕분이라 하겠다. 6군단 헬기장에서 국도 43호선 건너에 포천시 향토유적 제2호인 지석묘(고인돌)가 남아 있다. 청동기 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도기념물 제220호인 '포천 자작리 유적지'도 있다. 자작리 유적지는 1998년 처음 학계에 보고되었고, 2000년대 초반 조사를 통해 한성백제시대 거점마을 주거지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움집터 5곳을 비롯해 15곳의 유구가 발굴되었고, 중국 동진시대 청자와 대형 옹기 등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한강 북쪽 경기도에서 발견된 한성백제기 유적 가운데는 자작리 주거지가 가장 크다. 유구와 출토 유물로 미루어 이곳이 중심 마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움집 바닥의 숯을 방사능탄소연대측정법으로 분석하자 서기 262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자작동이 배출한 인물로는 조선 중기 문신 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1561~1613)이 대표적이다. 한음은 외가인 자작동에서 태어났다. 한음은 '오성대감'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1556~1618)과 더불어 조선 최고의 기지와 재치 콤비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오성대감 역시 포천 출신이다. 포천은 오성과 한음의 어린 시절을 형상화하여 시 캐릭터로 사용한다.

국방부가 이번에 포천시 땅뿐만 아니라 6군단 부지 전체를 내놓았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국방부는 대체 부지를 마련하여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검은 토끼의 해'라는 2023년 벽두에 포천시와 국방부의 협의가 순탄하게 진척되기를 기원한다. 포천시민들은 국방부가 반환하기로 한 시유지 26만4775㎡(8만 평)를 포함해 6군단 부지 89만7982㎡(약 27만 평) 전체가 포천시 도시계획구역으로 편입된다는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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