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안성비상행동은 지난 8월 중순부터 두 달여 부지런히 시민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안성시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환 기본 조례안'을 발의하기 위해서였다. 탄소중립이 거스를 수도 없고, 절대 늦추어서는 안 되는 지구인의 목표가 되었으나,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시민이 많은 상황이어서 '정의로운 전환' 조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일이 만만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하지만 안성비상행동은 결국 해냈다. 조례안은 3700명 서명으로 안성시의회에 제출됐다. 기후위기 대응 조례가 시민 발의로 성사되기는 안성이 전국 최초였다.
그런데, 법제처가 검토 과정에서 '딴죽' 아닌 딴죽을 걸었다. 안성시 조례안에 들어있는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 설립 등'이 문제라고 했다. 주민조례안에 행정기구를 설치하거나 변경하는 사항은 담을 수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가 새로운 행정기구라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아무튼 안성시의회는 법제처 회신을 핑계로 주민 발의 조례안을 본회의에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안타깝다. 안성이 대한민국 최초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인류의 절박한 과제를 조례로 성사시킨 지방자치단체가 될 기회였는데 말이다.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은 '탄소문명에서 탈탄소문명으로 이행하는 과정과 결과가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문명전환은 한 시가 급하다. 죽은 지구에는 일자리가 없다(no jobs on a dead planet). 누가 어떠한 관점에서 추진하느냐에 따라 대재앙이 될 수도 있다. 약자와 빈자를 희생시키는 전환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어느 누구도 뒤에 남겨 두지 않아야 한다(leave no one behind). 따라서 환경정의, 에너지정의, 기후정의를 통합적으로 사고하면서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 안성시의 정의로운 전환 시민 조례안은 그 토대를 만들자는 시민들의 다급한 외침이었다.
아직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시민들이 자발적인 행동에 제동을 거는 듯 보이는 보수적인 해석에 대응할 논리를 다듬고, 여전히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민들에게 조례의 의미를 더 알리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정의로운 전환' 자체가 최신의 개념이다.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이후 널리 소개되기 시작했고, 2018년 폴란드 실레지오 선언부터 공식화되었다. 국내에서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그 이후다. 작은 실패들에 딛고 일어설수록 더 정의로운 전환을 향해 단단하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 믿는다.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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