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안산원곡초등학교는 전교생의 98%가 이주배경 어린이다. 부모나 자신이 이주한 경험이 있을 경우 이주배경 어린이로 분류된다. 전국에서 가장 비율이 높다. 이 학교 수학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이 두 분 들어온다. 한국어 선생님과 러시아어 혹은 중국어 선생님. 소통과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또한 학생들 수준 차가 커서 수준별 수업도 진행한다. 안산원곡초등학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올해 새롭고 효과적인 교수학습모델(수업모형)을 직접 개발하고 실제 수업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다문화 초등교육의 선두주자답다. 박수갈채를 보낸다.

원곡동이 '국경 없는 마을'로 변하기 시작한 시점은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서다. 반월공단의 한국인 노동자가 떠난 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로 메우면서 이주민의 행렬이 이어졌다. 원곡동은 국경을 넘어 100가지 성을 가진 사람들의 마을이 되었다. 2012년 35% 정도였던 이주민 비율은 2021년 70%를 넘어섰다.

67년 역사를 자랑하는 안산원곡초 학생 100%가 이주배경 어린이로 채워질 날이 며칠 안 남았다. 자체 교수학습모델 개발에는 이러한 현실에서 어떻게 보통교육의 이상을 실현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담겨 있다. “학생들을 사랑하고 교육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안복현 교장의 말이 빈 말로 들리지 않는다.

불현 듯 박지리의 소설 <다윈 영의 악의 기원>(2016년 작)이 떠오른다. 소설 속의 세계는 아홉 개 동심원적 경계로 나뉘어 있다. 각 경계 간 사회적 상승은 엄격히 제한된다. 물리적 이동도 허가가 필요하다. 최하층 인간은 최상층 세계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영화 <설국열차>의 배경과 비슷하지만 현실감은 더 높다. 요절한 소설가 박지리는 그 속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기만 그리고 살인을 추리소설의 기법으로 그려낸다. '교육의 사다리'마저 완전히 끊어지면, 우리가 사는 세계도 소설의 세계와 같아질 것이다. 이미 같아졌을까?

아직은 그 문턱을 넘어서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안산원곡초의 교사들처럼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는 소식 덕분이다. 최정상만을 지향하는 교육풍토가 단숨에 바뀔 리 만무겠으나, 어떻게 하면 함께 사는 교육을 펼 수 있을까 하는 궁리가 조금이라도 더 확대되기를 기원한다. 2021년 현재 전국 초등학생 중 4.2%가 이주배경 어린이들이고, 지역으로 갈수록 그 비율은 점점 더 놓아질 게 틀림없다. 이주배경 어린이들도 언어의 장벽, 차별의 장벽을 넘어 교육 받을 권리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관련기사
[썰물밀물] 천년밥상의 미래 “쌀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주식 곡물이 아니다. 쌀은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살과 뼈의 일부분이었고, 한국인의 영혼과 정신이 되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쌀 산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고위 외교관이 외국 관리에게 했다고 알려진 이 말은 사실 한국인에게는 상식이다. 문제는 이 상식이 속절없이 흔들린다는데 있다. 쌀값이 45년 만에 최대로 폭락하면서 농민들의 시름은 가장 높은 낟가리보다 더 높아졌다.올해 여든여덟 살인 조팽기 옹은 파주 적성 율포리 사람이다. 38선 때문에 잠시 떠나 살았던 시기 외엔 평생을 임진강변 율포리 [썰물밀물] 나무를 심은 사람, 나무를 심은 도시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양치기 노인은 말없이 매일 매일 도토리를 땅에 묻어 나간다. 이야기 속 시간이 30년 정도 흘렀을 때 남부 프랑스의 황무지는 울창한 숲으로 변해 있었다. 양치기가 묻은 도토리들이 아름드리 상수리나무로 자라나고, 숲이 되살아나면서, 새와 물고기 그리고 동물들까지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인심이 사나워질대로 사나워져 아예 사라져 버렸던 마을에도 아이들 웃음소리가 되돌아왔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1953년 작 <나무를 심은 사람>은 언제 읽어도 흐뭇하다.평택시가 지난 3년 간 도시숲 가꾸기에 꽤 [썰물밀물] '사진 신부'를 선택한 독립운동가 차인재 1920년 6월 수원의 항일 비밀결사 단체인 구국민단이 조직되었을 때 차인재는 교제부장을 맡았다. 차인재는 당시 삼일학교 교사로서, 삼일학교 출신들이 구국민단에서 활동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차인재 자신도 삼일학교 1회 졸업생으로서, 이화학당을 나와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구국민단이 왜경에 발각된 후 차인재는 매우 파격적인 선택을 한다. 사진 신부로 미국행을 택한 것이다.미주 지역의 한인 노동자와 본국 여성 사이의 사진혼인은 1910년 말쯤 시작되었다. 호남 출신 여성이 하와이 이민자와 사진으로 부부의 연을 맺은 것 [썰물밀물] 11월 1일 방금 김윤아의 노래 <키리에>를 틀었습니다. “쉴 새 없이 가슴을 내리치는 이 고통은 어째서 나를 죽일 수 없나/ 가슴 안에 가득 찬 너의 기억이, 흔적이/ 나를 태우네, 나를 불태우네// 울어도 울어도 니가 돌아올 수 없다면/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야, 꿈이야/ 불러도 불러도 너는 돌아올 수가 없네/ 나는 지옥에, 나는 지옥에 있나 봐…….” 타인의 고통에 음악으로 공감하려 한다는 가수의 진심이 가슴을 울립니다. 키리에 엘레이손,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서양에서 11월은 만성절로 시작한다지요. 매해 11월 1일은 모든 성인 [썰물밀물] '안농'에서 한경국립대로 1939년 4월 5년제 안성공립농업학교가 개교했다. 일제강점기 내내 전국 곳곳에서 중등교육 기관 설립을 열망했지만, 조선총독부는 학교 인가에 매우 인색했다. 조선인들은 최소한의 교육만 필요하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 후반까지도 농업학교 설립이 가능했던 지역은 많지 않았다. 안성에서는 지역민들의 열망이 워낙 컸고, 독지가 박필병(朴弼秉·1884~1949)이 거액의 설립자금을 댔기에 설립이 가능했다.박필병은 소유 토지가 1억3000만평이나 되는 안성의 거부였다. 학교설립 후 교정에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으나, 얼마 지나 [썰물밀물] 안성 '정의로운 전환' 시민 조례 기후위기 안성비상행동은 지난 8월 중순부터 두 달여 부지런히 시민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안성시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환 기본 조례안'을 발의하기 위해서였다. 탄소중립이 거스를 수도 없고, 절대 늦추어서는 안 되는 지구인의 목표가 되었으나,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시민이 많은 상황이어서 '정의로운 전환' 조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일이 만만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하지만 안성비상행동은 결국 해냈다. 조례안은 3700명 서명으로 안성시의회에 제출됐다. 기후위기 대응 조례가 시민 발의로 성사되기는 안성이 전국 최 [썰물밀물] 포천시 자작동 국방부가 지난주 포천시 자작동 6군단 부지 내 포천시 소유 부지를 시에 돌려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전쟁 이래 70년 간 점용했던 땅을 뒤늦게 반환하는 것이지만, 반가운 연말 선물이 틀림없다. 도농복합도시 포천시가 도시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소흘읍과 포천시청을 잇는 축선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자작동 6군단 부지는 이 라인의 노른자에 해당하는 땅이다. 더군다나 부지의 무상사용 기한이 올해 말 끝나도 국방부가 다른 부대를 배치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아 포천 관계자들이 애를 태우던 참이었다.자작동은 해발 737m 왕방산 남동쪽에 위치한 [썰물밀물] 안성시 보개면 기좌리 안성시 보개면 기좌리에서도 정월이면 마을 민속놀이로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숫줄은 남자가 당기고 암줄은 여자가 당기는데 줄을 당기는 도중 여자 노인 중 몇 명이 남자들 쪽에 와서 줄을 못 당기게 회초리로 남자들의 손등을 때렸다고 한다. 그러면 대부분 여자 쪽에서 승리하였고 그해에는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자치안성신문>의 이 기사는 기좌리 마을지인 <적재울의 발자취>에 소개된 내용이라고 했다. 힘 센 편의 손등을 회초리로 친다는 발상이 웃음을 머금게 한다.기좌리는 안성 한지(韓紙)의 고향이다. 조선 중기부터 안성 기좌리에서는 다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