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이가 49m에 달하는 '퐁 뒤 가르'는 수도교 중 가장 높고, 잘 보존되어 있는 건축물 중 하나다.

고대 로마 제국이 2000년 넘게 강대국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상하수도의 발달 덕분이었다. 로마는 도심에서 먼 수원지로부터 맑은 물을 끌어와서 목욕탕과 분수 같은 공공 건축물에 공급하고, 시민은 마을 구석에 있는 급수장에서 물을 길었다. 당시 로마 시민 한 명의 1일 물 사용량은 약 180ℓ였는데, 이는 오늘날 이탈리아의 1인당 물 사용량인 234ℓ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이처럼 경이로운 급수는 수로 덕분에 가능했다. 수로를 건설하고 물을 효과적으로 운반하기 위해 건축학과 유체역학 지식이 총동원되었다. 우선 적당한 크기와 형상의 수로를 설계하기 위해 최적의 경사도와 수압을 계산해야 했다. 또한 수로의 벽면과 물에서 발생하는 마찰 저항을 고려해야 했는데, 여기에서 유체역학에 대한 기초적인 원리의 발견과 기술 발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상수도 시설의 원활한 이용을 위해서는 수로의 정밀한 설계와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수로의 주목적은 첫째 물을 멀리, 둘째 깨끗하게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원지의 높이는 정해져 있으므로 물을 최대한 멀리 운송하기 위해서는 매우 완만한 경사를 만들어야 한다. 물은 중력에 의해 항상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심혈을 기울여 건설한 수로의 경사도는 0.2~0.5%로, 이는 물이 1m 이동하는 데 낙차가 2~5㎜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정교한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 이상적으로 이 경사도가 유지될 경우 20~50m의 낙차만 있다면 물을 10㎞까지 운송할 수 있다.

하지만 물을 멀리서 무사히 끌어왔어도 중간에 오염되었다면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1차적으로는 깨끗한 수원지를 찾는 작업이 필수이고, 수로 중간에 침사지를 두어 이물질이 가라앉도록 하였다.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오염을 막기 위해 수로에 지붕을 덮기도 하였다. 기원전 312년 최초의 수로인 아쿠아 아피아가 건설되었고 서기 226년까지 5세기 동안 총 11개의 수로가 완공되었다. 수로의 총 연장 길이는 약 800㎞에 달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서울 둘레길의 5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길이다.

수로를 통해 로마 시내에 전해진 물은 856개의 공공 목욕탕과 1352개의 분수를 만드는 기폭제가 되었다. 당시 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곳을 넘어 요즘의 복합 문화 공간에 가까웠다. 대규모의 목욕탕 안에는 체육 시설이 있어 간단한 운동을 할 수 있었으며, 사우나와 마사지는 물론 독서와 음주까지 할 수 있었다. 고대 로마가 사회적, 문화적으로 얼마나 풍요로웠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로마 제국 때 건설된 수로의 일부는 현재도 유럽 각 지역에 유적으로 남아 있다. 현대 사회에도 도로를 낼 때 산으로 막혀 있으면 터널을 뚫고 계곡에는 다리를 놓듯이 고대 로마도 수로를 같은 방식으로 연결하였다. 강이나 계곡처럼 지대가 낮은 곳을 지날 때는 다리를 놓았는데, 이 다리가 바로 수도교다. 수도교는 다리 위에 수로를 놓은 형태로 계곡의 깊이에 따라 1층에서 3층까지 쌓았다. 이때 최소한의 재료로 튼튼한 다리를 짓기 위하여 중력을 분산시키는 아치 구조를 이용하였다. 아치는 활 모양으로 힘이 모서리에 집중되는 직각 구조보다 하중을 잘 견딘다. 아치형 수도교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프랑스 남부의 퐁 뒤 가르 수도교는 무려 49m 높이의 3층 아치 구조로 아직도 부분적으로 급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 송현수 과학 저술가·공학박사.
▲ 송현수 과학 저술가·공학박사.

/송현수 과학 저술가·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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