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폭탄은 뜨거운 열기와 함께 강력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폭발 압력으로 폭심지로부터 구형으로 충격파가 형성되었으며, 이때 화구(火球)는 폭발력으로 대기를 밀어내는 힘과 주변 대기가 막는 힘의 균형이 맞춰지는 크기로 결정된다.
유체역학에 큰 업적을 남긴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 제프리 테일러는 신문에 실린 원자 폭탄의 폭발 후 사진만 보고 차원 해석을 통해 폭발 에너지를 계산하였다. 차원 해석은 어떤 현상과 관련된 물리 변수들을 도출하고, 이들을 구성하는 기본 차원을 살펴 변수들의 관계를 개략적으로 파악하는 수학적 방법을 말한다.
테일러는 우선 폭발로 인한 충격파가 구형으로 확산하며, 화구의 반경은 폭발 에너지, 공기 밀도, 시간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정하였다. 그리고 이 변수 4개를 조합하면 무차원 변수가 한 개 도출된다. 따라서 폭발 에너지와 공기 밀도가 일정한 경우, 화구 반경은 시간의 5분의 2제곱에 비례하여 증가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어떤 특정 상황에 적절한 변수들을 파이 그룹이라고 불리는 무차원 그룹으로 형성시키는 차원 분석의 한 방법을 버킹엄 파이 이론(Buckingham π theorem)이라 한다.
1914년 미국의 물리학자 에드거 버킹엄이 제안한 이 이론에 따르면 n개의 1차적 기본 차원을 포함하는 m개의 독립 변수는 m-n개의 무차원 변수를 만들 수 있다. 이는 유체의 흐름을 나타내는 여러 변수로부터 무차원 수를 얻을 수 있으며, 변수가 줄어든 만큼 전체 실험 횟수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테일러가 폭발 사진만 보고 원자 폭탄의 위력을 계산한 것과 달리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종이 한 장으로 그 위력을 추정하였다. 원자 폭탄의 실전 투입 전 트리니티 실험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었던 그는 충격파가 몰려올 즈음 종잇조각을 공중에 날렸다. 약 2.5m를 날아간 종잇조각은 잠시 후 땅에 떨어졌고 페르미는 그 변위로부터 핵폭탄의 위력을 추론했다. 값비싼 계측 장비 없이 종이와 연필만으로 대략적인 실험 결과를 빠르게 예측한 낭만의 시대였다.
당시 페르미가 추정한 값은 10kt였는데, 실제 폭탄의 위력은 20kt 정도였다. 두 배 차이가 나긴 했지만 지금처럼 정밀한 컴퓨터 계산이 불가능했던 시대에 단순 계산으로 얻은 값 치고 상당히 높은 정확도라 평가받았다. 페르미가 사망한 지 70여 년이 지난 2021년 미국 워싱턴대학교 물리학과 조나단 카츠 교수는 페르미가 남긴 메모로부터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 원자 폭탄의 위력을 계산했는지 추측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처럼 기초 지식과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단시간 내에 답을 구하는 방식을 페르미 추정(Fermi estimation) 또는 추측과 평가를 합쳐 게스티메이션이라 부른다.
이는 한때 외국 기업의 면접시험에서 지원자들의 논리적 사고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질문으로 널리 알려졌다. 예를 들어 버스에 골프공이 몇 개 들어갈까? 뉴욕의 피아노 조율사는 몇 명일까? 바닷물의 무게는 얼마일까? 와 같은 질문으로, 정확한 답을 맞추는 것보다 적절한 가정을 통해 논리적으로 답을 도출하는 과정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페르미 추정은 특히 공학 설계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최종 설계 단계가 아닌 중간 과정에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 정확한 수치를 구하는 것보다 대략적인 값이라도 추론하여 빠른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송현수 과학 저술가·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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