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에 이미 상수도 시설이 정비되었지만 16세기 유럽 도시의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마실 물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영국 런던은 템스강의 오염으로 강물을 마실 수 없게 되어 먼 곳에서 깨끗한 물을 끌어와야 했다. 이를 위해 1613년 수도 회사 뉴리버가 설립되었다. 뉴리버는 런던 전역에 상수도관을 설치하고 가정에 물을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회사 이름 그대로 런던 시민들에게 새로운 강이 된 것이다.
1830년대에는 유럽에 콜레라가 크게 유행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콜레라는 역사상 처음으로 빠르게 전 세계로 확산된 질병이다. 초기에는 오염된 공기를 통해 콜레라가 전염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영국의 의사 존 스노가 콜레라의 원인이 깨끗하지 않은 물임을 밝혔다. 이때부터 수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오염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19세기 중반부터 몇몇 나라는 물을 모래층에 천천히 통과시켜 맑게 만드는 정수 처리 방식을 도입하였다. 정제된 수돗물을 얻기 위한 인류의 도전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1880년대 독일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오존의 살균 효과가 증명된 이후, 여러 나라에서 정수 과정에 오존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오존은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1902년에는 벨기에에서 세계 최초로 수돗물의 염소 소독을 시작하였다. 현재 수돗물을 살균 및 소독하는 방식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바로 염소다. 염소를 물에 녹이면 산화력이 강한 하이포아염소산이 생성되어 발생기 산소를 만드는데, 이는 미생물의 세포막을 침투하여 살균 및 표백 작용을 한다.
21세기 들어서도 세계 각국은 수천 년에 걸쳐 몸소 배운 맑은 물의 중요성을 잊지 않고 수질 관리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장 폐수와 각종 생활 하수로 라인강의 수질이 악화되자 중금속 유출을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하였다. 또한 총 1320㎞ 길이의 라인강은 독일뿐 아니라 벨기에, 스위스, 네덜란드 등을 경유하므로 인근 국가들은 라인강 보존을 위한 국제위원회를 설립하여 생태계를 관리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때 사라졌던 연어가 되돌아오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라인강의 기적이 단순히 경제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미국 뉴욕은 문제의 사후 해결보다는 근본적인 원인에 집중하고 있다. 오염된 물을 정수하기 이전에 먼저 물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 일환으로 수원지 상류에 숲을 조성하고 토양을 개선하는 등 자연적인 정화 작용에 10억 달러의 예산을 투자하였다.
한편 과학자들은 미세 기포를 활용하여 수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작은 공기 방울을 물에 다량으로 투입하여 생물학적 및 물리적 처리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는데, 이는 철, 망간뿐만 아니라 냄새, 맛 등을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다. 초미세 기포 발생기로 물의 용존 산소량을 높임으로써 물을 정화하는 데에 일조하는 것이다. 현 인류는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축구 경기를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머나먼 화성을 탐사하는 놀라운 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깨끗한 물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관심 있게 살펴봐야 할 전 세계인의 숙제다.
/송현수 과학 저술가·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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