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의거를 앞둔 안중근 의사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사업해서 번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부은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 신문을 발행하고 수많은 학교를 세우는 등 그의 따뜻한 온기를 쐬지 않은 사람이 없다하며 페치카(러시아식 난로)라 불리던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이 인천에 살고 있다.
바로 러시아에서 온 최 일리야(21)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 콘스탄틴(36)이 주인공이다. 한국에 들어와 알게됐지만 둘은 가까운 친척인 셈이다. 최 일리야는 최재형 선생 장남의 후손, 이 콘스탄틴은 막내 아들의 후손이다.
학교 지어 이웃 돕고 독립운동 헌신
러서 부모님이 어릴때부터 들려줘
인천대 유학생활…“편하고 좋아요”
“독립운동가 최재형 할아버지의 5대손 최 일리야입니다”
최 일리야는 현재 인천대 전자공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가 기억하는 최재형 선생은 어떤 뿐이었을까. “우리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최재형 할아버지 사진 보여주며 (얘기해)줬어요. 제 할아버지는 1860년에 태어나셔서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싸울 때 할아버지는 독립운동하는 사람을 많이 도와줬어요. 그리고 학교와 집을 짓고 다른 사람을 도와줬어요. 할아버지는 엄청 유명한 사람인 것 같아요”
최재형 선생의 후손으로 러시아에서 학교를 다니던 최 일리야와 한국과의 인연은 우연하게 맺어졌다. 최재형 기념사업회 문영숙 이사장과의 만남을 계기로 2019년부터 인천대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한국생활은 최 일리야에게는 쉽지 않았다. 한국어도, 한국생활도 서툴렀고 특히 가족 친구와 떨어져 있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짧게 배운 한국어 실력으로는 전공과목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저는 지금 1학년 학생이라서 어렵습니다. 여전에 러시아에서 같은 수업 들었는데 지금 (한국에서) 물리 아니면 대학수학 수업 들어가 한국어로 들으면 어렵습니다. 얼마전 중간고사가 있었다. 그의 첫 성적은 어땠을까. “다 F(학점) 나왔어요”라며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최 일리야는 송도는 물론 인천 곳곳을 자전거로 돌아다녔다. “저는 인천이 좋아요. 여기서는 외국 사람들이 많죠. 한국 사람들이 친절한 사람이라서 문제없어요” 그래도 함박마을이 가장 편하다고 한다. “저는 여기서 친구들이랑 살고 있어 친구들이랑 자주 만나요. 여기서 그만 해서 음식 먹어요. 그리고 저는 복싱 운동하고 있어서 그래서 지금 여기서 자주 가 봐요”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는 일단 학교를 졸업하는게 목표다. “전자공학 분야는 러시아에서 한국에서도 엄청 유력한 분야여서 저는 러시아와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한국으로의 유학을 도와준 최재형 기념사업회 문영숙 이사장과 인천대 최용규 이사장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안산 고려인 사무실서 특별한 경험
최근에 후손 알려지자 대우 달라져
현재 인력 아웃소싱 일…IT 하고 파
최 일리야보다는 일찍인 2016년에 한국에 온 이 콘스탄틴이 최재형 선생의 후손을 알려진 건 최근의 일이다. 인천 함박마을에 살고 있는 이 콘스탄틴이 기억하는 최재형 선생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옛날부터 아버지 어머니가 이런 얘기 했어요. 우리 할아버지 유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사진도 보여줬어요”
특히 그는 한국에서 최재형 선생과 관련한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안산에 있는 고려인 회장 알렉산더 사무실에 갔었는데 거기서 사진을 봤어요. 이분이 누군지(물어봤어요). 알렉산더가 그분(최재형)이라고 설명해 줬어요. 그래서 제가 말했잖아요. 이분이 제 외할아버지 같아요. 그리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사진보내주며 확인했어요”
이후 알렉산더 회장이 자신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등 대우가 달라졌다며 그는 자랑스러워했다.
인천에서 쭉 살아온 그는 현재 인력사무실 아웃소싱 일을 하고 있다.
“제 일이 사람 찾아야 돼요 사람 뽑아야 돼요. 그리고 회사 같이 들어가서 관리 했어요. 러시아 사람 많으니까 일 때문에 여기(함박마을)가 편해요”
콘스탄틴은 요즘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중 어디서 살아야 할지 고민이다.
“우리한테 여기 편해요. 하지만 부모님 나이 많으니까 이것 때문에 지금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 우즈베키스탄에서 대학교 하다가 인포메이션 테크놀로지 IT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한국에 이런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후손들 잘 성장해 너무 뿌듯”
처음 장학사업 출발…현재 11년째
발로뛰며 십시일반 후원자들 모집
연 100여명 고려인 후손에 장학금
최재형 선생 후손을 돕는 일의 중심에는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있다.
그녀는 기념사업회를 꾸려나가며 그의 독립운동 정신을 되살리고 그의 후손까지 보살피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재형 기념사업회는 우연한 기회에 마련됐다.
“2011년 최재형이란 존재를 처음 알았구요. 그분이 그렇게 유명한 분인데도 이제 전혀 몰랐었고 또 그분이 학교를 서른두 개나 세우고 또 장학사업도 하시고 그 고려인들의 따뜻한 난로 같은 역할을 하셨다는 걸 알고 (기념사업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장학사업으로 출발했다.
“십시일반 후원자를 발로 뛰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모집을 해서 고려인 장학생을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고요 지금 현재 이제 11년째 됐어요”
지금은 연인원 100여명의 고려인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이후 사단법인으로 확대되면서 기념사업까지 하게됐다.
최일리야와의 인연도 정 이사장의 노력 덕분이다.
2018년 7월 경상북도에서 독립운동가 후손 초청 행사에 최재형 선생 후손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다시 몇 년 후 사진 한장으로 인해 한국 유학으로까지 이어졌다.
문 이사장은 고려인 후손에 대한 글을 언론에 연재했는데 그때 보도된 최일리야와 찍은 사진을 보고 최용규 인천대 이사장이 연락을 해 현재 인천대에서 유학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온 최일리야를 위해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작년에 선천성 신장에 문제가 있어서 갑자기 아파가지고 정말 그냥 놔두면 안 되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인천성모병원에서 치료비 다 무료로 해 주셨고 또 인천시장님도 도와주셨고, 인천과 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가 되어 있어요”
문 이사장은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이 한국에서 무사히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했다.
“일리야는 지금 이제 전자공학과 공부를 어렵게 하고 있는데 그래도 엄청 만날 때마다 아주 일치월장하고 있어요. 독립운동가 후손답게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고요. 이 콘스탄틴이 이제 일리야보다 일찍부터 여기 와서 이제 그렇게 있었는데 우리가 전혀 몰랐어요. 우리가 전혀 신경을 못 쓰고 있어서 지금부터라도 사소한 거라도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단체로 본인이 좀 생각할 수 있도록 그렇게 좀 하려고 노력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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