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행 길 따뜻한 친절 손길 못잊어
초교 갈 첫 째 이젠 한국말 더 잘해

바다 인접·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가끔은 별 쏟아지는 '초원' 그리워

▲ 임연주씨 가족의 모습.
▲ 임연주씨.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온 임연주씨(32)는 한국생활 12년 차다. 몽골 이름은 오츠랄(Uchral).

인천에서 남편, 아이와 셋이 살고 있고 현재 둘째를 임신 중이다.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준 몽골 전통의상 '델'을 입고 온 그녀는 오늘 인터뷰가 너무 소중한 것 같아 입고 왔다고 한다.

그녀의 한국행은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녀의 어머니가 한국으로 일하러 왔다가 한국 남자와 재혼하면서 그녀는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녀의 몽골인 남편이 결혼이주민으로 한국에 살고 있다.

 

# 순댓국과 삼겹살 vs 샤부샤부와 허르헉

부모님이 한국에서 치킨집을 운영해 그녀는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다.

“한식은 좀 달콤하고 양념이 많이 들어가고 몽골 음식은 고기가 많이 들어가니까 소금을 주로 사용하는 등 요리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그녀는 설명한다.

그녀의 최애 음식은 처음에는 치킨과 사과였는데 요즘은 순댓국과 삼겹살로 변했다고 한다.

특히 김치 사랑이 남다르다. “한국에 오기 전에도 김치는 유명한 거라 몽골에서 처음 먹어봤고, 한국에 와서 직접 먹어보니까 더 맛있었어요.”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몽골 음식은 샤부샤부와 허르헉을 꼽았다. “한국분들이 옛날에는 못 먹는 음식들이 많고 먹으면 이제 소화가 안 되거나 배가 아파 음식을 많이 가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몽골 전통 음식을 되도록 다 맛을 보는 등 관심이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 낯선 이방인에게 친절한 민족

한국과 몽골사람들은 공통점인 문화가 있다. 손님들에게 친절하다는 것이다.

그녀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한국인들의 따듯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처음 한국에 와서 한국말도 모를 때 아는 동생과 동대문시장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전화기가 없어서 연락을 못 하고 있을 때 한국분이 선뜻 핸드폰을 빌려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한국사람들은 외국인들한테 진짜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몽골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다고 한다. “게르에 사는 몽골사람들은 아침에 가축과 함께 초원으로 나가야 하는데 혹시 중간에 손님이 올까 봐 차와 요리를 미리 준비해놓는 그런 문화가 있어요.”

 

▲ 임연주씨와 가족의 모습.
▲ 임연주씨와 가족의 모습.

#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3살 때 한국에 온 첫째 아이는 한국말이 서툴러 처음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여러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한 각종 서비스가 있어 큰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한다. “언어발달지원센터에서 아이에게 많은 지원을 해 줘 지금은 충분히 언어소통이 잘 되고 있어요. 다만 이제는 몽골말보다 한국말을 더 잘해 집에서 시간 내서 따로 몽골말을 가르치는 상황이 됐어요.”

한국의 교육서비스에도 만족을 표시했다. “엄마로서 그냥 아이가 한국에서 쭉 교육받고 그렇게 커갔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위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잘 갖춰진 것 같아요. 아기한테 계속 물어봐요 한국과 몽골 중 어디서 살고 싶은지. 그러면 아이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해요”

다만 아이들 교육비가 만만치 않아 걱정이다. “이제 아기가 초등학교 들어가니까 학원비도 나가고 태권도비도 나가고 여러 가지 비용이 많이 나가고 이제 거의 한 달에 60만 원 정도 나가고 있어요.”

곧 태어나는 둘째는 한국에서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다행스럽다는 반응이다. “출산 축하 지원금이라고 지금 200만 원 정도 나오고요, 병원비도 나와요. 유아 비용도 지원이 되고요. 혜택들이 많은 것 같아요.”

 

# 인천에는 바다가 있어요

인천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몽골에는 바다가 없기 때문이다.

“해변하고 바다가 너무 가까운 데 있어서 바람 쐬러 해수욕장에 많이 가요. 몽골에 바다가 없어요. 특히 우리 남편이 바다를 너무 좋아해서 시간 날 때마다 영종도 을왕리해수욕장에 가요.”

한국에서 생활에는 크게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앞으로도 제가 봤을 때 한국 나라에서 외국인들이 많이 늘어날 것 같아요. 외국인들이 한국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게끔 많이 시스템을 잘 돼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 있는 좋은 것들을 많이 배우고 싶어요”

가끔씩은 별이 쏟아지는 몽골 초원이 그립다고도 한다. “한국에서도 살고 싶기도 하고 몽골에 돌아가서 살고 싶기도 해요. 사실 몽골은 공기도 좋고 별도 이렇게 쏟아질 것 같은 그런 거 보이니까 저는 한국하고 몽골에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싶어요.”

 

# “몽골로 여행 오세요”

여행가이드 출신인 그녀는 몽골 대표 여행지로 테를지와 하르호린을 추천한다.

테를지는 울란바토르와 가까워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이며, 하르호린은 옛 원나라 수도로 역사유적을 찾는 이들에게는 필수코스다.

그녀는 유럽 사람과 한국사람의 여행 스타일이 다르다고 알려준다. “유럽 쪽은 좀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두 명이나 가족 친구끼리 여행하시는 분이 많은 반면 한국 등 아시아분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단체로 여행하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몽골 여행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말 타는 프로그램이다. “말 타고 초원을 한 일주일간 돌아다니는 거죠. 칭기즈칸이 말을 타고 전쟁에 이기고 영토를 넓힌 것이 기억하기에 외국 여행객들도 몽골에 가면 무조건 말 만져보고 타보는 것을 해요.”

몽골에 대한 사랑도 잊지 않았다.

“몽골에 한국 여행객이 많이 가는 것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몽골과 한국이 협동이 잘 이루어져서 좋은 일들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베트남 허우장서 온 전예진

“고층 건물·노바이크 첫 인상 신기”

고향엔 과일 엄청나…요즘 망고철
코로나로 몇 년 못 가 날마다 통화

한국인과 국제결혼은 긍정적 시각
현재 다문화 강사…하고픈 일 많아

▲ 전예진씨.
▲ 전예진씨.

 한국에 온 지 13년 된 결혼이주민 전예진씨는 남편, 아이 두 명과 인천에서 살고 있다. 베트남 이름은 쩐 티끼우디엔(Tran thi kieu tien).

그녀의 고향 마을은 유명한 까리랑 수산시장을 잘 알려진 베트남 남부 호찌민시 인근의 허우장이라는 곳이다.

“저의 고향은 까이랑 수산시장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인데 과일도 엄청 많아서 앞집 가면 바로 과일 따서 먹을 수 있는 정도로 과일도 많고요. 강도 깨끗하고 예뻐요. 요즘 람푸탄과 두리안, 망고가 한창이에요”

코로나로 인해 몇 년 동안 고향에 가지 못한 전씨는 그래도 매일 통화하며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엄마와 매일 통화해요. 엄마 오늘 뭐 드셨어요. 뭐 좋은 일이 있어요 하고 주로 안부를 물어요. 뭐 특별한 얘기는 없어요. 원래 여자들은 말이 많잖아요.”

 

# 한국의 첫인상은 '신기했다’

자매만 4명인 전예진씨는 바로 위 언니가 먼저 한국인과 결혼해 지금의 남편을 소개해 줬다고 한다.

한국의 처음 왔을 때 낯설기보다는 신기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처음 비행기에서 내린 순간 좀 신기했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베트남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높은 건물이 없었어요. 또 오토바이가 없어 신기했어요. 베트남은 오토바이 천국이잖아요.”

유창한 한국말 솜씨는 드라마 보며 배웠다고 한다. “베트남에서는 그냥 간단하게 인터뷰할 수 있을 정도만 배웠고요. 나머지는 여기 한국 와서 배웠어요. 처음에 다문화센터 선생님이 방문해서 가르쳐줬고요. 서울에 사는 언니한테 한국말 배우는 방법을 물어봤더니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를 많이 보라고 해서 그대로 따라 했어요.”

 

▲ 전예진씨 가족의 모습.

#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 되기

초교 6학년, 4학년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처음에 한국말을 못해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 한국어도 안 되죠. 대화도 안 되고 또 애들 유치원, 어린이집 다녀야 하는데 어떻게 보내는지도 모르겠고 선생님 가서 상담을 무슨 말 해야 할지 정말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니까 나름대로 하다가 열심히 하고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해서 초등학교까지 보냈어요.”

아이들도 어릴 때 베트남말을 가르치다 시부모님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어렸을 때 모국어로 베트남말을 배우면 좋다고 해서 가르쳤는데 시부모님이 엄청 반대했어요. 그렇게 하면 한국말 안 는다고.”

지금은 아이들이 베트남에 놀러 가기 위해 베트남말을 조금씩 배우고 다고 한다.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한국말 배우기에 열심이다. “엄마라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조금 강하게 만들라고 해서 요즘 다문화 교육도 하고 있고요 한국말도 열심히 하고 또 출입 관리사무소도 근무 안내 쪽으로 해서 폰 번역하고 있고요. 그래서 아이들은 웬만하면 엄마 자랑스럽다고 해요.”

 

# 국제결혼에 대해서는 '긍정적’

최근에도 늘어나고 있는 베트남 결혼이주민에 대한 생각도 들어봤다. “결혼이주민들이 많아요. 인천에서는 남동구 지역에 엄청 많죠. 몇천명은 되는데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에 대해서도 사람 나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있는 반면에 아닌 사람도 있어요. 한명의 안 좋은 사례로 다 판단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자신의 결혼에 대해서는 100% 만족하지 않아도 60% 정도는 만족하다며 웃는다. “한국사람도 사람 나름인 것 같아요. 자상하고 가족 잘 챙기고, 직업도 확실하면 추천하죠. 근데 직업 없이 노는 사람은 불안하니까 국제결혼 완전히 반대하죠.”

 

# 인천 살이 너무 좋아요”

그녀는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부터 다시 시작해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사이버 대학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현재는 다문화 강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어하고 베트남어를 더 깊이있고, 충실하게 공부하고 싶어요.”

그녀는 인천에서의 삶에 크게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 “너무 편한 시설이 많아서 밖에 나가면 뭐 편의점도 있고 조금 가면 시장이 있고 하니까 여기만 살고 싶긴 해요. 특히 남동구 쪽에 저희가 10년 동안 살았잖아요. 여기 너무 좋아서 다른 곳으로 떠나기가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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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린센터 '외국인 사랑방'”

부설·직영 이어 올해부터 시 위탁
단순형 아닌 실생활 서비스 지원
인천 위상 만큼 센터 중요성 커져

▲ 김현경씨.

인천 외국인종합지원센터 센터장을 맡은 김현경씨는 올해부터 인천시로부터 센터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2007년에 인천국제교류재단 부설로 있다가 2016년부터는 인천시에서 직접 운영해왔다. 올해부터는 외부에 위탁운영을 맡기고 있다.

“인천의 외국인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니까 그 늘고 있는 이제 외국인 인구에 대해서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좀 더 확장돼서 운영하고 있는 그런 조직입니다. 크게는 상담 지원 사업이라고 해서 상담 지원 사업은 통역을 해주고 번역을 해주고 또 이렇게 일상적인 상담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살면서 이렇게 필요한 상담 어려운 부분들을 좀 주는 사업을 하고 있고요.”

현재는 6개국 언어를 지원하고 있다. 중국 베트남 일본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이다.

“이 외에도 한국어 교육이나 사회통합 프로그램, 조기적응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고, 인천에 있는 다양한 외국인 단체들을 모아서 이제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트워크 사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인천외국인지원센터 활동 사진.
▲ 인천외국인지원센터 활동 사진.

인천이 국제도시로서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인천외국인지원센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존에는 정말 단순한 정보만 제공하고 단순히 한국어 교육만 하는 곳이었다면 지금은 좀 정말 실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들을 지원하는 곳이 되고자 하고요. 단순히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서 오는 센터가 아니라 언제든지 사랑방의 개념을 하는 센터가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같은 지역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어려움을 나눌 수도 있고 이런 열린 센터가 되려고 많이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창섭 기자 csnam@incheonilbo.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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