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 문화'는 인류 문명 초창기부터 함께했다고 전해진다. 고대 그리스에선 기원전 4세기쯤 공중 목욕탕 성행 기록이 보인다. 주로 냇가나 강에서 목욕을 하던 고대 로마인들은 이를 보고 시설을 개선해 전국으로 확산시켰다고 한다. 전성기 로마 제국 목욕탕엔 마사지는 물론 식당·운동·상점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췄다고 알려진다.
우리나라에서 목욕은 몸과 마음을 씻는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여겨진다. 불교 영향의 하나이지 싶다. 경주 안압지에선 신라시대 목욕탕 터가 발견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조선시대엔 왕실이나 민간에서 온천 목욕을 다녀오는 일이 잦았다. 일제 강점기엔 일본식 목욕 풍조가 들어왔다. 개항 후 일본인이 많이 살던 인천과 부산 등지엔 대중 목욕탕이 잇따라 생겨났다. 1886년 인천 일본영사관에선 무분별한 목욕탕 운영을 통제하려고 '단속규칙'을 제정할 정도였다. 목욕탕 굴뚝은 지붕 위 1m 이상 높이로, 비연소 재료 사용 등으로 제한했다고 한다.
이런 목욕 풍습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지속됐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 목욕탕은 지금처럼 아무나 가기 힘든 곳이었다. 서민들은 설날과 추석 등 명절을 전후해 한번 갈까말까 할 만큼 찾아가기 어려웠다. 어릴 적 명절을 앞두고 가족과 대중 목욕탕을 찾아 서로 때를 밀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다가 여러 모로 살 만해진 1980년대 말부터는 이른바 사우나와 찜질방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했다. 누구든 목욕을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문화'가 형성됐다.
그랬던 목욕탕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2020년부터 확산된 코로나19 영향 탓이다. '3밀(밀폐·밀집·밀접)' 업종으로 방역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퍼져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 인천지역에서만 최근 3년간 대중 목욕탕 50곳이 폐업했다. 코로나가 본격화한 2020년 13곳을 비롯해 2021년 14곳, 지난해 23곳이 문을 닫았다. 전국적으로도 목욕탕 폐업은 심각한 상황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목욕탕·사우나·찜질방 등 목욕장업으로 등록된 업소 중 2020년 3월부터 폐업한 데가 960여개에 이른다. 최근엔 가스·수도·전기 등 공공요금마저 계속 오르면서 목욕업계 시름은 깊어만 간다.
동네 목욕탕은 이제 주거 취약계층의 '필수 시설'로 꼽힌다. 샤워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쪽방촌 등지에선 씻는 물 부족으로 대중 목욕탕에 의지한다. 어려운 이웃을 보호하기를 위해서라도 공공 목욕업은 필요하다. 일부 세금 감면 등의 지원 조치로 대중 목욕탕을 살렸으면 한다. 영세민이 몰려 사는 동네의 목욕탕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세워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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