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판, 금수회의록
간호윤

“친애하는 금수동지 여러분!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법치국가를 구현하기 위해 일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은 자유 필요성을 모른다. 내 말만 더 받아쓰면 우리들은 더 행복해진다. 나는 자유를 외치지만, 정의‧공정 같은 매우 불량한 어휘들을 이 땅에서 없애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난다. 나와 내 금수를 괴롭히는 것들에게는 반드시 상응하는 고통을 준다. 관용과 배려는 죄악이요, 증오와 적대는 미덕이다. 내 생각에 어깃장을 놓는 놈들은 모조리 법으로 검열하고 겁박한다. 법 돌아가다가 외돌아가는 세상은 천공이 지켜주고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 궤변도 자꾸 말하면 상식이 되고 무지도 엄연한 지혜이다. 새끼들이 쪽팔리게 말이야. 그것도 모르고. 내가 곧 법이고 진리다. 그렇지 않은가. 금수동지 여러분!”

석법지사(碩法之士, 큰 법을 지닌 선비)가 주먹을 치올리며 술이 취한 듯 제 흥에 겨워 개소리괴소리, 허튼소리를 장엄하게 토하였다. 금수들은 “맞소! 옳소! 석법지사! 석법지사!”를 연호하였다. 석법지사가 득의의 웃음을 머금고 특유의 도리도리를 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자! 지금부터 금수회의를 시작하겠다. 어떤 물건이든지 소견이 있거든 말해 보라.”

몇 자만 빼고는 모조리 반말투였다.

검은 망토를 걸친 시궁쥐가 채신머리없이 몸을 들까불며 들어선다. 자발없는 행동에 눈을 할기족거리더니, 설레발을 치고는 깐죽이는 말투로 언죽번죽 둘러 붙인다.

“‘인문학? 그런 건 소수만 하면 돼!’ 석법지사님의 이 말씀은 길이길이 어록에 남을 겁니다. 인문학이니 뭐니 한다지만 집나간 개 정도로 여기면 됩니다. 학이라 하면 얼굴은 두텁고 뱃속은 시커먼 후흑학(厚黑學)정도는 돼야 합니다. 저보고 소영웅주의라 하나 개의치 않습니다. 저는 언관(言官)으로서 쥐 밑살 같은 작은 힘이지만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석법지사님을 찾아뵙고 조아(爪牙,발톱과 이)가 되어 교언(巧言)과 영색(令色)으로 무장한 간관(奸官)의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불통, 부도덕, 부조리가 체(體,원리)라면 무능, 무지, 무식, 무례, 무책은 용(用,응용)입니다. 이 체용이 바로 법(法)이니 모르는 게 약(藥)입니다. 나는 이 법을 앞세워 이 자유금수공화국을 만드는 선봉이 되겠습니다. 존경하는 석법지사와 금수동지 여러분! 우리에게 권력을 준 것은 진정한 금수가 되라는 엄명입니다. 이 땅은 법천지가 되어야합니다. 앞으로도 자발없는 짓으로 무장하여 석법지사님의 무능과 사악과 기괴함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받들겠습니다. 석법지사님을 섬기지 않는 백성은 백성이 아니요, 석법지사님에 대드는 백성은 백성이 아닙니다. 엄벌에 처해야 다시는 이런 자들이 없을 겁니다. 금수의 본성은 기본적으로 악하기에 모두들 잠재적 범죄자들로 대해야합니다. 아!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딸아이 문제로 나를 어쩌겠다는 말도 있던데 선하품만 나옵니다. 법이 다 알아서 날 지켜줍니다. 택도 없는 소리요, 개 방귀 같은 소리입니다.”

여우족에서 가장 ‘여우답다’는 땅딸하고 목이 없는 여우가 눈에 간교한 웃음을 띠며 나왔다. “지금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 곳곳에서 석법지사님을 찬양하는 ‘내모의 노래(來暮-노래,“왜 이렇게 늦게 오셨는지요”라며 선정을 찬미하는 백성들의 노래)’를 부르며 ‘소부두모의 덕(召杜母-덕,소신신(召信臣)과 두시(杜詩)가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부모와 같은 소두라는 뜻으로 선정을 일컫는 말)’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석법지사님 말씀은 문자로 치면 자자이 비점(批點)이요, 구구절절 관주(貫珠)를 칠만한 명연설이십니다. 천하의 악은 현명한 금수를 질투하고 능력 있는 금수를 질시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천하의 선은 현명한 금수를 좋아하고 선한 금수를 즐거이 받드는 것보다 더 큰 게 없습니다. 이번 ‘참사’만해도 그렇습니다. ‘여우가 심하게 울면 줄초상이 난다’하는데, 난 잘못이 없습니다. 아랫것들의 잘못이지요. 현명하시고 능력 있으시고 선하신 석법지사님께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일부 행태를 단호하고 준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어떠한 방법으로든 참사를 막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살생된 백성들 이름도 엄벙뗑 넘어가 거론치도 말아야합니다. 석법지사님께서 “왜 쳐다만 봤냐!”고 아랫것들에게 호통 칠 땐 눈물을 짤끔거렸습니다. 석법지사님께서 제 변명과 무개념을 인정해주시고 머리까지 쓰다듬어 주시며 두남두시니 든든한 뒷배이십니다. 감읍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폼 나게 사표 내는 그날까지 석법지사님을 암군(暗君)과 혼군(昏君)으로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무소불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강자를, 권력을, 물질을 따라야합니다.”

말을 마치자 “깔깔”, “큭큭”, 웃는 소리가 나고 뒤죽박죽 뒤섞여 떠들어 대니 아수라장, 난장판이었다. 여기저기서 금수들이 어지러이 뒤엉켜 외쳤다.

“3불 5무 시대를 열자. 불통(不通), 부도덕(不道德), 부조리(不條理) 만세! 무능(無能), 무지(無知), 무식(無識), 무례(無禮), 무책(無策) 만세!”

이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이랑이란 가객과 노래패였다. 노래는 가슴 아프고 애달픈 백성들의 삶을 노래했다.

“…폭도가 나타났다(합창)/ 배고픈 사람들은 들판의 콩을 주워 다 먹어치우고/ 부자들의 곡물 창고를 습격했다/ 늑대가 나타났다(합창)/ 일하고 걱정하고 노동하고 슬피 울며 마음 깊이 웃지 못하는/ 예의 바른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 이단이 나타났다(합창)”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다음 회(24회)에 계속>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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