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판, 금수회의록
간호윤

'이랑'이란 가객과 노래패가 <늑대가 나타났다>를 부르자 좌중은 모두 일어서서 “물러가라! 물러가라!”를 연호하였다. 곧이어 한 무리의 금수 떼가 나타나 몽둥이를 휘둘러 쫓아버렸다. 금수들이 아직도 제 분을 못 이기어 한 마디씩 해댔다. “옳은 소리를 하는 것들은 모조리 없애야 해!” “암! 그럼, 그렇고말고.”

그러자 이번에는 수염이 간드러진 얌생이 한 물건이 연사로 나섰다. 그 뿔은 완고해 보였고 염소수염은 고집 센 늙은이 형상이며 들까불고 눈을 할금거리나 말하는 것은 여간 느물느물한 게 아니었다. 백년 묵은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데 모조리 유체이탈 화법이었다.

“코 아래 가로 뚫린 것의 기능은 먹는 것과 부조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말하는 것이지요. 어찌 이리도 말씀들을 잘하시는지요. 저는 “이 새끼들”들을 좌장군으로 “쪽팔려서”를 우장군으로 삼아 석법지사님을 보필하는 데 온 정성을 다하는 으뜸 금수입니다. 흔히들 방정맞아 보여 '염소가 지붕에 오르면 집안에 변고가 생긴다'하는데 제가 석법지사님을 모신 뒤, 이태원에서 사고 난 것 말고 뭐 있습니까? 저번에 이태원 사고로 물 건너온 금수들과 대화에서 제가 웃으며 재치 있게 말하는 것 다들 들으셨지요. 이번에 생존자 중에 극단 선택을 한 소년이 있기에 제가 또 한 마디 했지요. '본인이 굳건히 버티면 되는 것'을 이라고. 아! 이 얼마나 좋은 세상입니까? 그래 이태원 입구에 '석법지사님 잘한다!'라는 방도 떡하니 붙었잖습니까.”

얌생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올빼미 한 마리가 올라왔다. 빼어낸 몸매에 세련된 털 단장하며 두 눈을 호동그라니 뜨고 목소리는 또깡또강 앙칼졌다. 시룽새롱 콩팔칠팔 지껄이는데 입 걸기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들어 봐 주십시오. 언제 우리 석법지사님이 옥황상제님을 욕했습니까? 웃기고 있네, 정말. '이 새끼'는 적들에게 한 욕이지요. 신발도 안 신는 예의 없는 것들이. '올빼미도 천 년을 늙으면 능히 꿩을 잡는다'합니다. 제가 그렇지요. 석법지사님께 이지가지 논리로 버르장머리 없이 대드는 행위야 말로 불순하고 아둔한 백성들의 소견머리 없는 짓거리지요. 이런 것들을 제가 다 잡아버릴 겁니다. 정의니 자유니 떠들어대는 데, 표현의 자유는 억압이 답이에요. 떠드는 것들에게 혹 '고발당하지 않을까, 처벌당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을 하게 만들어야지요. 여러분! 우리 금수가 똘똘 뭉쳐 이를 부정하는 모든 세력과 싸울 것을 맹세합시다. 이 시대의 표어는 '더 멍청하면 더 행복하다'로 하고 '인민교육헌장'과 '백성의 길'을 암송시킵시다. 동의하지요. 금수 여러분!”

이러자 “옳소!” “잘한다!” “3불 5무 시대를 열자!” 야수들의 아우성이 금수회의소를 뒤덮었다. 그때 하얀 머리를 묶어 왼쪽 가슴팍으로 늘어뜨리고는 연신 쓸어내리며 한 물건이 들어섰다. 그 옆에는 간드러진 물건 하나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부른 배를 만지며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던 석법지사가 벌떡 일어나 예의를 갖추었다. 여러 금수들은 이를 보고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까지 석법지사가 자기들의 '꺼삐딴(왕초)'이라 여겼는데 그렇지 않아서였다. 이 둘은 금수 중의 금수로 그렇게 사악하다는 '교(狡도사)와 활(猾여사)'이었다. 이 '교활'은 항상 붙어 다니는데 간사한 여우 따위는 상대가 안 된다. 색깔, 무늬, 생김새, 게다가 냄새까지도 속인다. 원래 이 '교'란 놈은 모양은 개와 비슷한데 온몸에 표범의 무늬가 있으며 머리에는 쇠뿔을 달고 있다. 이놈이 워낙 간교하여 나올 듯 말 듯 애만 태우다가 끝내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활'을 끼고 나타난 것이다. 금수들은 두려워 소마소마 가슴을 떨며 조용하였다. 교란 놈이 다시 가슴팍 머리를 쓰다듬어 뒤로 넘기고는 말을 하였다. 그 말소리는 한밤중 고양이 울음소리처럼 괴기스럽고 살쾡이처럼 음험하였다.

“난 영적 세계야. 용산이 힘쓰려면 용이 여의주를 가져와야 해. 여기 있는 활여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나라 방향이 달라져. 이런 내조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이 활여사 밖엔 없어. 아! 관상은 또 얼마나 좋아. 옷도 잘 입고. 특활비를 주어야 돼. 내 어록이 저 진주세무서 뒷간에도 걸렸어. '사람의 팔자는 순식간에 바뀌지 않는다'라 썼지. 내 정법 통찰이야. 가서 좀 봐. 이번 이태원 사고는 참 좋은 기회야. 우리 아이들은 희생을 해도 이렇게 큰 질량으로 희생을 해야지 세계가 돌아봐. 특정인에 책임 지우려면 안 돼!”

이러며 또 다시 백여우 꼬리 같은 기름기가 자르르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교가 말을 마치자 석법지사가 이미 얼큰하니 취한 몸을 뒤틈바리처럼 일으켜 꿉적꿉적 한껏 예를 취했다. 그 옆에서 활은 는실난실 파르족족한 눈을 할낏할낏거리며 간드러진 웃음을 지으니 완연 논다니였다. 금수들은 이제 “활여사!” “활여사!”를 외쳤다. 검은 옷으로 치장한 활여사가 하느작하느작 나와서는 간살스럽게 뾰족한 입을 열어 옹알댔다.

“저는 남편에 비해 한 없이 부족해요. 남편은 이태원 사고 49잿날 술잔을 사며 '내가 술 좋아해 술잔 샀다'며 함박웃음 웃고 손가락만 씻는 멋진 금수에요. 모친께서는 투기를 일삼고 저 역시 위조, 변조, 표절하지만 모두 무죄에요. 제 남편이 법이니…”

이때, 산천이 진동하며 우레와 같은 노랫소리가 들렸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쇠낫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허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이날치 <범 내려온다>

<다음 회(25회)에 계속>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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