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곡장(好哭場, 울기 좋은 울음 터)의 역설
간호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이마에 얹고, ‘아. 참으로 좋은 울음 터로다. 가히 한 번 울만하구나!’ 하였다.(不覺擧手加額曰 好哭場 可以哭矣)”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 중 「도강록」 7월8일자에 보이는 글이다. 연암이 연경을 가면서 조선을 벗어나 광막한 대평원을 바라보며 외치는 일성! 그 행간과 여백을 찬찬히 살피면 끝없이 펼쳐진 요동벌판을 보고 한바탕 울음 울고 싶다는 소회가 보인다. 몇 줄 뒤에서 연암은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천둥소리(哭在天地 可比雷霆)”라 하였다. 연암은 중화(中華)만을 떠받드는 일부 양반만의 나라, 개혁이 멈춘 폐쇄적인 소국 조선의 울울한 선비였다. 그래 저 거대한 요동벌에서 한바탕 꺼이꺼이 큰 울음을 울고 싶었으리라. 좋은 울음 터라 우는 호곡(好哭)이 아니다. 비분한 마음으로 우는 호곡장(號哭場)장의 역설이다. 연암의 호곡장을 읽으며 '파레토의 법칙(Law of Pareto: 전체 인구 중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한다는 법칙)'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를 생각한다. 꼭 20%의 힘만을 믿고 국민 80%를 지배하려 드는 이 정부의 행태와 너무나 닮아서다.

한국은 GDP 기준으로 2022년 세계 12위 경제 대국이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4994달러인 선진국이다. 그러나 OECD 국가 중 고령인구 증가가 가장 높지만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이 1위요, 근로시간은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길다. 청년들은 희망이 없어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율은 최저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자살사망자는 1만3352명으로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요, 우울증과 청소년 자살률도 그렇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는 사상 최대인 160만원으로 벌어졌고 대출로 산 부동산값은 추락한다. 가난한 자들은 어느 은행이든 고객 대접조차 못 받고 집집마다 대출 이자로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은행은 부른 배를 주체치 못해 성과급 잔치다.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에 국민 세금을 쏟아 붓지만 정작 국민연금은 쥐꼬리 수준이다. 일반 백성 또한 평생을 어느 일이든 봉직했건만 어떻게 연금 차이가 저리도 나는가. 회사는 갑질이고 입법, 사법, 행정에, 정론을 펴야할 언론까지 붙어 사이비(似而非) 세상을 만든다. 나라는 부유하지만 부익부빈익빈으로 80%의 보통 사람들 생활은 늘 도긴개긴이다. 이러니 자칭 경제 대국 한국의 행복지수는 37개국 중 35위이다.

이런 실정인데도 검찰공화국을 만들어 정치가 그야말로 망나니 칼춤 수준이다. 한 도(道, 그것도 특정 도)에나 적합할만한 무능한 깜냥으로 나라의 수장이 되었으면 비판과 성찰로 자신을 다잡고 겸양과 고심참담으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고 국민을 성심과 지성으로 섬겨야한다. 그러나 모주 먹은 돼지 벼르듯 천박한 부도덕성, 무능과 무지로 무장하고 야당을 겁박하는 모습이며 백성들에게 무람하게 대하는 행태는 선뜩하다 못해 '백색공포(白色恐怖,권력자나 지배 계급이 반정부 세력에 행하는 탄압)'라는 말이 떠 오늘 정도다. 이쯤 되면 하는 짓이 꼭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요, '난훈(難訓, 가르칠 수 없다)'이 따로 없다. 난훈은 악수(惡獸) 중의 악수로 사흉(四凶, 큰 개의 모습을 한 혼돈, 눈이 겨드랑이에 있는 도철, 날개가 달린 호랑이 궁기와 도올) 중 하나인 도올(檮杌)이다. 도올은 전욱이라는 고대 전설 속 황제의 피를 이어받았다지만 허울만 좋은 하눌타리일 뿐이다. 오로지 악행만 일삼고 싸움질을 하면 물러나는 법이 없다. 또 거만하고 완고하여 남들의 의견도 전혀 듣지 않아 ‘오흔(傲很, 교만하여 남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다)’, ‘난훈’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열심히 가르쳐도 도저히 제 버릇을 못 버리는 도올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요, '개꼬리 삼 년 묵어도 황모 못 된다'는 말이 정녕일시 분명하고 '북은 칠수록 소리가 나고 똥은 건드릴수록 구린내가 난다'는 뜻도 모르지 않지만 교산(蛟山) 허균(許筠) 선생의 가르침을 주고자 한다. “천하에 두려워할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다(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 선생의 「호민론」 첫 문장이다. 선생은 백성을 항민(恒民, 고분고분 법을 따르는 백성)·원민(怨民, 한탄하고 불평하는 백성)·호민(豪民)으로 나누고 참으로 두려운 것은 호민이라 한다. 호민은 자기가 받는 부당한 대우와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하는 무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남모르게 딴마음을 품고 틈을 노리다가 때가 되면 일어난다. 이 호민이 반기를 들면 원민들이 모여들고 항민들도 살기를 구해서 따라 일어서게 된다.

20%를 굳게 믿어서인지 띄엄띄엄 보아도 대통령이고 여당이고 할 것 없이 행동은 망동이요, 넋이야 신이야 퍼붓는 사설마다 무개념에 무정견이니 잡스럽기가 개 방귀 같은 소리요, 그 입은 구럭일 뿐이다. 굽도 접도 못하는 백성들 삶은 지치고 나라는 위태로운 데 호가호위하며 군사정권 시절 유물들을 되살려 정책이라 내놓고 권커니 잣거니 술판을 벌리며 태평송을 부른다. 정치는 여야 협업이거늘 되우 저만 잘났고 옳다며 정쟁만 일삼고 사람들을 잡아다 감옥에 쳐 넣는 궁리만을 능사로 여긴다. 침팬지 폴리틱스의 콜라보레이션만도 못하니 정치 실종을 넘어 절망이다. 80%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한 데도 저들은 태평스럽게 호민을 두려워할 줄 모른다.

그러한 이치로 보면 그러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이치로 보면 그렇지 않은 게 세상 이치다. 열흘 붉은 꽃 없고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사자밥을 목에 걸고 다닌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뜻이다. 이러다 '신호민론(新豪民論)'이 일어 호민이 호곡(號哭)하여 천둥소리 진동하면 똥줄 빠지게 도망갈 날이 오게 되는 것은 떼 놓은 당상 아닌가.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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