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당외보(言當畏報) 돌아오는 남 말이 두렵지 않느냐

이 가을, 하늘은 공활하다. 글을 쓰되 시대의 공민(共悶)과 사회의 공분(公憤)을 쓰려한다. <법구경> 제10장 '도장품(刀杖品)'을 읽다가 눈길이 멈춘다. “부당추언(不當麤言,남 듣기 싫은 말 하지 말라) 언당외보(言當畏報,돌아오는 남 말이 두렵지 않느냐) 악왕화래(惡往禍來,악이 가면 화가 오는 법이니) 도장귀구(刀杖歸軀,칼과 몽둥이로 네 몸에 돌아온다)” 턱 막힌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가는 말이 욕인데 어찌 오는 말이 고우랴.

꼴같잖은 놈들이 설쳐대는 꼴같잖은 세상을 살아내자면 욕이 나온다. 김열규 선생은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에서 “세상이 중뿔나게 가만히 있는 사람 배알 뒤틀리게 하고 비위 긁어댄 결과 욕은 태어난다. 욕이 입 사나운 건 사실이지만 욕이 사납기에 앞서 세상 꼴이 먼저 사납다. 꼴같잖은 세상!”(사계절출판사, 1997)이라고 욕의 출생부를 정리해 놓았다. 욕먹어 싼 인간이 있어 세상 꼴이 사나워졌지, 세상 꼴이 사나워 욕이 탄생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선생의 의견에 동의하진 못한다. 하지만 사전을 뒤져보니 '욕을 먹고 살아야 오래 산다'거나 '욕이 사랑'이라는 등 속담이 꽤 여럿 등재되어 있다. 의미 또한 그다지 나쁘지 않으니, 욕의 말 요술을 가히 욕의 미학(美學)이라 해도 괜찮다.

'욕(辱)'자의 근원도 엇비슷하다. <설문해자>를 보면 '욕'자의 본래 의미는 '풀을 베다'나 '일을 하다'였다. 후에 이 일이 너무 고되기에 '욕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일이 너무 힘들어 내뱉는 소리가 욕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욕을 하면 속이 좀 시원해지는 게 다 이유가 있다. 그래서인가. '나랏님 없는 데선 나랏님 욕도 한다'는 속언도 버젓이 있다. 욕을 고깝게만 생각하지 말고 자기 발전과 수양을 위해서 소중히 받아들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욕이 금인 줄 알아라'도 욕의 미학 중 하나다.

하지만 욕의 미학만 있는 게 아니다. 영국 킬 대학교 리처드 스티븐스(Richard Stephens) 심리학과 교수는 욕설을 심리학적으로 연구한 이다. 그는 '욕설은 매우 감정적인 언어'라며 “욕설은 단기적으로 효과적인 진통제가 될 수 있으나 욕설에 익숙한 상태라면 아마 효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라 하였다. 욕설을 남용하지 마라는 뜻이다. 또 “욕을 먹고 살아야 오래 산다”는 욕 먹은 자가 스스로를 위로하는 역설도 있고 “욕은 욕으로 갚고 은혜는 은혜로 갚는다”는 서늘한 속담도 파리 대가리만한 글자로 국어사전에 적바림되어 있으니 곰곰 짚어 볼 일이다. 제가 나를 욕하는 데 나라고 욕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욕 먹을 짓은 말아야한다.

<권성동, 피감기관장 향해 “뻐꾸기냐” “혀 깨물고 죽지” 폭언 논란>, <정진석 “조선, 일본군 침략으로 망한 것 아냐”>, <김문수 또 “文 총살감이라 생각”> 요즈음 언론 기사들 제목이다. 어떻게 저리도 말을 헛씹는지. 마치 고칠 수 없는 중병에라도 걸린 듯, 쏟아내는 말들마다 무식·무지로 무법천지 욕설 세상을 만든다. 권력 잡은 게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도 되는 양 패거리 짓고 떼로 몰려다니며 이곳저곳 삿대질하고 욕해대기에 하는 말이다. 물론 이 난장판을 일거수일투족 제 입맛 따라 온종일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행태도 욕먹을 짓임에 틀림없다. 이래저래 밖에서나 안에서 '육두문자(肉頭文字)'가 비거비래(飛去飛來)하는 대한민국이다.

대통령이고 각료고 하는 짓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저들의 말치레를 들으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욕'이 절로 나온다. 저들과 똑같이 육두문자는 쓸 수 없으니 옛 어른들의 문자풍월로 내 속내를 놓으면 이렇다. '예끼! 경을 칠, 천탈관이득일점(天脫冠而得一點)에 내실장이횡일대(乃失杖而橫一帶)!요, 효제충신예의염(孝悌忠信禮義廉)에 일이삼사오육칠(一二三四五六七)!이로다.' 첫 번째는 잘 모르겠고 두 번째만 간략히 설명한다. '무치망팔(無恥忘八)'이라는 뜻이다. 원래 앞 구절은 '효제충신예의염치'이다. 그런데 '치(恥)'가 없으니 '무치(無恥)'다. '부끄러움을 모른다'이다. 앞 구절로 미루어 '일이삼사오육칠'은 '일이삼사오육칠팔'이다. 즉 '팔'이 없으니 '망팔(忘八)'이다. 여기서 '팔(八)'은 삼강(三綱)에 오륜(五倫)을 더한 것이니, '인간의 기본 윤리인 삼강과 오륜을 잊어버렸다'는 뜻이다. 이와는 달리, 예·의·염·치에 효·제·충·신 사덕(四德)을 추가해 사유팔덕(四維八德)이라고도 한다. 이 팔덕을 망각한 자 역시 망팔이다. 우리가 종종 쓰는 '망할'은 이 망팔이 변했다. 이 '망할!'이 많아지면, '망할 놈의 세상'이다.

이 가을, 날아가라는 '포탄'은 뒤로 떨어지고 '윤석열차'를 그린 고등학생과 정부가 싸우고 국제사회가 용인치 않을 '전술핵 재배치' 운운에 '일제고사'가 부활하더니 급기야 '식민사관'으로 백성들 염장을 지른다. 이쯤오니 욕의 미학도 말문이 막히고 지면도 다해간다. 욕에 관한한 훈수를 두어 수쯤 두는 <정광수 판소리 수궁가> 중 토끼가 별주부한테 욕하는 대목으로 글 매조지를 한다. 맹목적인 충성심의 별주부와 권위를 잃은 어리석은 용왕을 동시에 비판하는 게 <수궁가>의 주제 의식이다. 별주부가 용왕에게 주려고 간 좀 달라고 하자 토끼가 허허 웃으며 이렇게 욕을 해 댄다.

“아! 간을 주면 나는 죽으라고?하며 욕을 한 자리 내 놓는디, 욕을 어떻게 허는고허니 꼭 이렇게 허던것이었다. 에이 시러베 발기를 갈녀석/ 뱃속의 달린간을 어찌 내고 드린단 말이냐/ 병든 용왕을 살리랴헌들 성한 토끼 내가 죽을소냐/ 미련허드라 미련허드라 너의 용왕이 미련허드라….”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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