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윤

노랫소리와 함께 사면에서 창귀(倀鬼)들이 쇠몽둥이 하나씩 들고 뛰쳐나오는 데, 동에서는 굴각이요, 서에서는 이올이, 남에서는 육혼이 우루루루- 금수회의소로 들이닥치며 소리친다. “범님이 오셨다!” “범님이 오셨다!” “범님이 출두하옵신다!” 두세 번 외치는 소리가 벽력 치듯 나니 하늘이 와르르 무너지고 땅이 푹 꺼지는 듯, 천둥소리와 창귀소리가 산천을 진동시켰다. 금수들이 겁을 내어 이리뛰고 저리뛰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울타리에 자라처럼 대가리를 들이민 놈, 시궁창에 떨어진 놈, 오줌 지리고 애고대고 우는 놈, 대가리 감싸 안고 쥐구멍으로 숨는 놈에 벼라 별 놈 다 있지만, 그 중에 제일은 허우대 큰 놈이 머리에 쓴 금빛 찬란한 큰 관 내동댕이치고 오색영롱한 법복에 똥 싸 퍼질러 앉아 뭉개며 고추 따면서 똥 싸는 척 의뭉스럽게 하는 놈이라.

범님이 그 커다란 범 눈으로 쓱 훑어보더니, 그놈은 제치고 울타리에 쥐새끼처럼 대가리를 틀어박고 있는 놈을 데려 오라 하였다. 검은 망토를 걸치고 몸을 들까불며 깐죽깐죽 말하던 시궁쥐였다.

“이놈 네가 법 좋아하는 놈이렷다. 공자님은 ‘배운 공부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게 병이(學道不能行者 謂之病)’라 하셨지. 네놈이 바로 법척(法尺,법 자)을 들고 설치며 병든 놈이로구나. 왜 네 주변은 그 법척을 들이대지 않니. 그러니 병이 든 게야. 썰어봤자 한 됫박도 안 되는 주둥이로 낄 때 안 낄 때 설레발치며 나서서는 깐족이는 대사 쳐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대중의 눈길을 받는 건 도리 없다만, 너는 조연일 뿐임을 명심해야한다. 법가인 한비자(韓非子)가 「망할 징조(亡徵)」에서 국가 멸망 징조 47가지 중, 첫째가 바로 ‘군주의 권위는 가벼운데 신하의 권위가 무거우면 망한다(權輕而臣重者 可亡也)’라 했다. 명심하렷다. 에끼! 입맛 떨어진다. ‘겸손’이란 두 글자 좀 쓰고 읽을 줄 알렴. 이 놈 내치거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육혼이 간교한 웃음으로 알랑거리던 땅딸하고 목이 없는 여우를 잡아와 “그럼 요놈은 어떠신지?”하니, 범님은 흘깃 보더니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말도 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이 물건 저리 치워버려라!”하며 손을 홰홰 저었다. 이번에는 이올이가 저쪽에서 오줌 지리고 애고대고 울던 얌생이를 끌어왔다. 범님은 아예 눈길 한번 주지도 않고 손사래를 쳐 저 멀찍이 갖다 내쳐버리라 했다. 그러더니 어마지두에 놀라 오색영롱한 법복에 똥 싸 퍼질러 앉아 뭉개는 석법지사놈을 데려 오라했다. 굴각이가 코를 막고서 석법지사를 끌어다 범님 앞에 놓으니, 범님이 오만상을 찌푸리고는 대갈일성한다.

“네 이놈! 내 너를 정의를 외치는 깨끗한 놈이라 하여 잡아먹으려 왔더니. 이름만 석법지사(碩法之士, 큰 법을 지닌 선비)지, 이제 보니 석 자는 돌 석(石)자요, 사 자는 사기칠 ‘사(詐)’자 아닌가? 백성을 큰 제사 받들 듯해도 모자라거늘 오히려 백성을 능멸의 대상으로 보고 무책임과 무정견으로 일관하면서도 양심의 부끄러움조차 모르니 선비는커녕 모양새는 개잘‘량’ 양자에 개다리소‘반’ 반자 쓰는 ‘양반’놈에 똥감태기렷다. 아, 제 호의(縞衣,흰 저고리로 아내를 말함)조차 건사하지 못하는 놈이 뭐 금수들의 우두머리가 된다고. 거랑말코 같은 인격으로 헛소리나 지껄이고 주먹이나 내지르며 뭐, 공정‧정의‧상식‧법치를 말해. 네가 국선생(麴先生,술)을 좋아한다지만 어디 네 깐놈이 선생의 곁에나 가겠느냐. 술에 취하는 것은 그나마 국선생이 봐주지만 권력에 취하면 멸문지화를 당해. 너는 내게 오금을 저린다마는 백성들은 네 무례하고 저속한 언행의 정치에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가혹한 정치가 범보다 더 무섭다)’라 하며 나보다 네 놈의 3불인 불통(不通)‧부도덕(不道德)‧부조리(不條理)와 무능(無能)‧무지(無知)‧무식(無識)‧무례(無禮)‧무책(無策)인 5무 정치를 더 무서워한다. 지식이 없으면 입이 가볍고 경험이 없으면 몸이 가벼운 법, 네가 늘 법법하니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겠다. ‘법지불행 자상범지(法之不行 自上犯之)’라. 법이 행해지지 않는 것은 바로 너처럼 윗대가리에 있는 놈들이 법을 어기기 때문인 걸 모르느냐? 네 주변부터 청정무구 법을 실현한다면 그게 백성들에게는 이목지신(移木之信, 지도자의 믿음)이거늘, 너는 오히려 그 반대 아니냐. 상앙(商鞅)이 후일 거열형(車裂刑, 몸을 찢어 죽이는 형벌)에 처해짐을 되새김질해 보아라. 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네 어리석고 구린내가 역해 도저히 못 먹겠다. 이놈의 옷을 모조리 벗겨서는 저 심심산골 토굴에 위리안치(圍籬安置) 시키거라.”

이러며 노려보는 범님의 눈알은 등불 같고 입에서는 불길이 나오는 듯하여 석법지사는 혼백이 나가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이러할 제 창귀가 두 물건을 끌어다 놓았다. “하, 요놈들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지 벌써 이 금수회의소를 벗어나 줄행랑치는 걸 잡아왔습니다.” 범님이 고개를 획 돌려 이빨을 부지직 갈며 교와 활을 내려다보았다. “하! 요것들이 문젯거리로군”하더니 먼저 교를 쳐다본다.

“이놈! 네가 교활(狡猾)의 ‘교’란 놈이로구나. 누의(螻蟻, 땅강아지와 개미) 같은 쪼고만 깜냥으로 능갈맞게 자칭 ‘법사’니 ‘멘토’니 하는 짓이 요사스럽기 그지없더구나. 꼭 저쪽 나라를 망국케 한 그리고리 라스푸틴(Grigory E. Rasputin, 러시아를 망국으로 이끈 요승)이란 물건에 버금가는 놈일세. 청천백일에 젊은이들이 생죽음을 당했는데, 뭐라고, ‘참 좋은 기회’라고. 이런 사악한 놈! 벌렸다하면 악을 내뿜는 그 주둥아리를 닥쳐라. 이놈이 인두겁을 쓴 음흉한 물건이렷다.”

그러고는 이제 교활의 ‘활’을 쏘아보았다.

“네 이 암상맞고 요망한 물건아! ‘마등가(摩登伽, 불교에 나오는 음탕녀)가 아난(阿難, 부처님의 10대 제자)을 어루만지듯’ 네가 사내를 내세워 세상을 희롱하려 드는 게냐? 네가 있는 한 이 나라 희망은 감옥에 갇힌 장기수요, 절망은 바람을 타고 온 나라로 퍼진다.…”

범님의 호령은 마치 끝없이 넓고 큰 바다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하고 천리 먼 길에 천리마가 치달리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내 너희 두 종자를 먹어치워 후환거리를 없애야 겠다”하고는 우쩍 달려들어 한 손에는 ‘교’를, 한 손에는 ‘활’을 움켜잡아서는 “으르렁!” 입맛을 다셨다. 멀리서 새벽을 알리는 여명(黎明)이 희붐하게 비쳐오고 있었다. (22~25 연재 끝)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관련기사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24) 신호질(新虎叱), 이 선비놈아! 구린내가 역하구나! (3) '이랑'이란 가객과 노래패가 <늑대가 나타났다>를 부르자 좌중은 모두 일어서서 “물러가라! 물러가라!”를 연호하였다. 곧이어 한 무리의 금수 떼가 나타나 몽둥이를 휘둘러 쫓아버렸다. 금수들이 아직도 제 분을 못 이기어 한 마디씩 해댔다. “옳은 소리를 하는 것들은 모조리 없애야 해!” “암! 그럼, 그렇고말고.”그러자 이번에는 수염이 간드러진 얌생이 한 물건이 연사로 나섰다. 그 뿔은 완고해 보였고 염소수염은 고집 센 늙은이 형상이며 들까불고 눈을 할금거리나 말하는 것은 여간 느물느물한 게 아니었다. 백년 묵은 능구렁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23) 신호질(新虎叱), 이 선비놈아! 구린내가 역하구나! (2) “친애하는 금수동지 여러분!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법치국가를 구현하기 위해 일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은 자유 필요성을 모른다. 내 말만 더 받아쓰면 우리들은 더 행복해진다. 나는 자유를 외치지만, 정의‧공정 같은 매우 불량한 어휘들을 이 땅에서 없애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난다. 나와 내 금수를 괴롭히는 것들에게는 반드시 상응하는 고통을 준다. 관용과 배려는 죄악이요, 증오와 적대는 미덕이다. 내 생각에 어깃장을 놓는 놈들은 모조리 법으로 검열하고 겁박한다. 법 돌아가다가 외돌아가는 세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22) 신호질(新虎叱), 이놈아! 구린내가 역하구나! (1) ‘인(人,사람)’과 ‘물(物,동물)’은 상대적이다. ‘인’의 처지에서 ‘물’을 보면 한갓 ‘물’이지만, ‘물’의 처지에서 ‘인’을 보면 ‘인’도 또한 하나의 ‘물’일뿐이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여초책(與楚幘,초책에게 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냄새나는 가죽부대 속에 몇 개의 문자를 조금 지니고 있는 데 불과할 따름이오. 그러니 매미가 저 나무에서 울음 울고, 지렁이가 땅 구멍에서 울음 우는 것도 역시 사람과 같이 시를 읊고 책을 읽는 소리가 아니라고 어찌 안다하겠소?(吾輩臭皮帒中 裹得幾箇字 不過稍多於人耳 彼蟬噪於樹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21) 신호민론(新豪民論), 천하에 두려워할 존재는 오직 백성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이마에 얹고, ‘아. 참으로 좋은 울음 터로다. 가히 한 번 울만하구나!’ 하였다.(不覺擧手加額曰 好哭場 可以哭矣)”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 중 「도강록」 7월8일자에 보이는 글이다. 연암이 연경을 가면서 조선을 벗어나 광막한 대평원을 바라보며 외치는 일성! 그 행간과 여백을 찬찬히 살피면 끝없이 펼쳐진 요동벌판을 보고 한바탕 울음 울고 싶다는 소회가 보인다. 몇 줄 뒤에서 연암은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천둥소리(哭在天地 可比雷霆)”라 하였다. 연암은 중화(中華)만을 떠받드는 일부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20) 욕설(辱說),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 이 가을, 하늘은 공활하다. 글을 쓰되 시대의 공민(共悶)과 사회의 공분(公憤)을 쓰려한다. <법구경> 제10장 '도장품(刀杖品)'을 읽다가 눈길이 멈춘다. “부당추언(不當麤言,남 듣기 싫은 말 하지 말라) 언당외보(言當畏報,돌아오는 남 말이 두렵지 않느냐) 악왕화래(惡往禍來,악이 가면 화가 오는 법이니) 도장귀구(刀杖歸軀,칼과 몽둥이로 네 몸에 돌아온다)” 턱 막힌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가는 말이 욕인데 어찌 오는 말이 고우랴.꼴같잖은 놈들이 설쳐대는 꼴같잖은 세상을 살아내자면 욕이 나온다. 김열규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26) 속어개정(俗語改正), '말의 거짓과 실체의 진실'을 찾아서 “벌꿀보다 탁한 것이 없는데도 ‘청(淸, 맑은 꿀)’이라 하니 청탁(淸濁, 맑고 탁함)을 알지 못함이고, 꿩이 이미 죽었는데도 ‘생치(生雉, 산 꿩)’라 하니 생사(生死, 삶과 죽음)를 모름이다. 전복이 애초 이지러진 데가 없는데도 ‘전복(全鰒, 온전한 복)’이라 하니 쓸데없는 말이요, 기름과 꿀을 묻혀 구운 밀가루 반죽을 ‘약과(藥果, 약과 과일)’라 하니 이미 약도 아니요, 또 과일도 아니다. 꿀에 담근 과일을 ‘정과(正果, 바른 과일)’라 하는데 그렇다면 꿀에 담지 않은 것은 사과(邪果, 그른 과일)란 말인가?(莫濁於蜂蜜而曰‘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27) 후생가외(後生可畏), '씨알 데 있는 말'을 하는 선생이라야 역시 대학 총장님다웠습니다. 75세인데도 옷차림은 세련되었고 예약된 음식점은 한식으로 정갈한 상차림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자 함께 자리했던 분은 가시고 나와 그 분만 고풍스런 향기가 나는 찻집으로 옮겼습니다. 이 찻집도 총장님의 단골집이랍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 줄기는 요즈음 외국 학생이 많이 들어오는 대학 현실로 들어섰지요. “아! 우리도 옛날에 그렇게 다 외국 가서 박사 따 와서 교수하고 그랬지 뭐. 박사학위 그런 거 대충 줘요.” 학위를 너무 남발한다는 내 말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나도 다 아는 그런 말 말고.” “이번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