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작진퇴는 '금고' 담당
▲ 예진도(병장도설)

군사의 훈련에서 중요한 것이 형명(形名), 즉 깃발과 금고(金鼓)이다. 군사들이 앉고 일어서고 전진하고 후퇴하는 좌작진퇴(坐作進退)와 관련된 것이 금고다. 세종 3년인 1421년 7월 병조에서 진법과 그 운용에 관한 글에서 금(金)과 고(鼓)의 쓰임새를 밝힌 바 있는데, 현행 풍물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선 행진법(行陣法)에서는 중위(中衛)에서 각(角)을 한통(一通) 불고, 북(鼓)을 한통 치면, 각 위(衛)에서 이에 응하여 군사를 정돈하고, 중위에서 각을 불고 행진하라는 북을 진동하면, 우위(右衛), 전위(前衛), 중위(中衛), 후위(後衛), 좌위(左衛)의 순서대로 행진하였다. 그리고 네 위가 스스로 관기(官旗)를 세우고 천천히 행진하다가, 빠른 북으로 진동하면 빨리 행진하며, 쇳소리(金)를 들으면 정지하였다.

결진(結陣)하는 법에서는 북이 울리어 다섯 위가 각기 그 진(陣)을 이루게 하였는데, 중위는 원진(圓陣), 좌위는 직진(直陣), 전위(前衛)는 예진(銳陣), 우위(右衛)는 방진(方陣), 후위(後衛)는 곡진(曲陣)을 이루게 하였다. 여러 기병이 쇳소리를 듣고 진 안으로 들어와 중위의 5개의 기를 모두 눕히고 북을 울리고 흰 기를 달면, 다섯 위가 각기 방진을 이루었다. 중위의 검은 기를 달고 북을 울리면, 방진이 곡진으로 변하였고, 푸른 기를 달고 북을 울리면, 곡진이 직진으로 변하였으며, 붉은 기를 달고 북을 울리면, 직진이 예진으로 변하였고, 누런 기를 달고 북을 울리면, 예진이 원진으로 변하였고, 흰 기를 다시 달고 북을 울리면, 원진이 방진으로 변하였다.

적군과 응전하는 법은 중위에서 각을 불고 검은 기가 앞을 가리키고 북이 울리면, 후위가 먼저 나가서 적군을 대적하였다. 붉은 기가 앞을 가리키고 북이 울리면, 후위가 먼저 나가서 적군을 대적하였고, 붉은 기가 앞을 가리키고 북이 울리면, 전위가 먼저 나가서 적군과 대적하였다.

적군이 패하여 달아나면, 북과 각이 합하여 울려지고, 기마병이 나아가서 추격하는데, 쇳소리를 들으면 그치고, 【1쟁(一錚)이면 싸움을 늦추고, 2쟁(二錚)이면 싸움을 그치고, 3쟁(三錚)이면 뒤로 돌아서고, 4쟁(四錚)이면 뛰어서 후퇴하고, 5쟁(四錚)이면 급히 후퇴한다. 】 북이 급히 울리면 다시 나아가서 급히 공격하였다.

교장(敎場)의 법에서 사표(四表)에서 앞으로 가고 뒤로 물러가는 것은, 중위에서 북을 울리고, 다섯 기가 앞을 가리키면, 다섯 위가 나와 제 1표(表)에 나아가서 북을 치면서 행진하였다가, 제 2표에 이르러 쇠를 치고 기를 내리면, 이에 그치고 모두 앉았다. 중위에서 북을 울리고, 기를 세우면, 다섯 위가 모두 일어나고, 북을 쳐서 행진할 것을 신호하면, 기병은 달리고, 보병은 쫓아가서 제 3표에 이르렀으며, 쇠를 치고 기를 내리면, 이에 그치고 모두 앉았다. 북이 또 울려지고 기를 세우면, 다섯 위가 모두 일어나고, 북을 쳐서 행진할 것을 신호하면, 기병과 보병이 모두 빨리 달려서 제 4표에 이르렀으며, 쇠를 치고 기를 내리면, 이에 그치고, 모두 앉았다. 기를 세우고, 각을 한통 불고, 북을 한통 치면, 기병은 한 번 돌면서 달리고, 보병은 한 번 돌면서 싸우는데, 무릇 세 번을 하고서 그쳤다. 쇠가 1성(一聲)이면 싸움을 늦추고, 2성(二聲)이면 싸움을 그치고, 3성(三聲)이면 뒤로 돌아서서 행진하여 제 3표에 이르러 이에 그치며, 앉고 일어나는 것을 처음과 같이 하였다. 쇠가 4성(四聲)이면, 빨리 물러나서 행진하여 제 2표에 이르러 그쳤으며, 앉고 일어나는 것은 처음과 같이 하였다. 쇠가 5성(五聲)이면, 급히 물러나서 행진하여 제 1표에 이르러 그치며, 앉고 일어나는 것은 처음과 같이 하였다. 각을 한통 불고 쇠가 5성이면, 다섯 위가 급히 진(陣)에 나아가서 각기 그 문[扇]에 돌아갔다. 【병사는 북(鼓)으로 전진하고, 후퇴할 때에는 요(_)를 울린다. 】

그런데 여기서 북을 한통 친다는 것은 어떻게 친다는 것일까? 그리고 쟁의 경우 1쟁, 2쟁, 3쟁, 4쟁, 5쟁이라고 하였는데, 쇠의 경우 1금, 2금, 3금, 4금, 5금이라 하지 않고, 1성, 2성, 3성, 4성, 5성이라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러한 표현은 현행 풍물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 것일까?

/송성섭 풍물미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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