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 악기 태평소, 헌가 무무에 연주
풍물의미학
▲태평소 이미지./사진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태평소 이미지./사진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태평소(太平簫)는 군대에서 사용하였던 악기였다. 세종 12년인 1430년 4월 22일의 기사에 의하면, 병조에서 강무(講武)로 거동할 때에 취라치(吹螺赤)와 함께 중군(中軍)에 속한 태평소는 붉은 표장을 등에 붙이게 하였으며, 좌군(左軍)에 속한 취라취·태평소는 푸른 표장을 왼쪽 어깨에 붙이게 하였고, 우군(右軍)에 속한 취라취·태평소는 흰 표장을 오른쪽 어깨에 붙이게 하였다.

강무는 군막(軍幕)에서 군병을 훈련하고, 군사를 크게 사열(査閱)하며, 병법을 익히고, 싸우고 진(陣)치는 제도를 익히는 것을 말하는데, 사냥하는 법과 통하였다. <세종실록> 부록에 수록된 <강무의>에 의하면 병조에서 사냥하는 영[田令]을 나누어 알려서, 드디어 에워싸서 사냥하게 하였다. 그 양익(兩翼)의 장수가 모두 기를 세우고 그 앞은 빠뜨린 채 에워싸면 몰이하는 기병을 설치하였다. 유사가 이에 짐승을 세 번째 몰이하여 지나갈 때 임금이 그제야 짐승을 따라 왼편에서 이를 쏘았다. 몰이할 적마다 반드시 짐승 세 마리 이상으로 하였는데, 임금이 화살을 쏜 뒤에야 여러 군(君)들이 화살을 쏘고, 여러 장수와 군사들이 차례로 이를 쏘았으며, 이를 마치고 몰이하는 기병이 그친 뒤에야 백성들에게 사냥하도록 허락하였다.

조선 때의 음악은 크게 등가(登歌)와 헌가(軒架)로 나뉘어진다. 등가는 당상에 올라 연주되는 음악인데, 이에 맞추어 당하에서 문무(文舞)를 춘다. 뜰 아래에서 배치하고 연주하는 것이 헌가인데, 이에 맞추어 무무(武舞)를 춘다. 세종 때 헌가에서 태평소가 사용되었는지는 자료가 미비하여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세조 때 편찬된 악보 중에 헌가의 그림을 보면, 노래하는 이와 함께 월금, 가야금, 당비파, 방향, 필율, 장고 등과 더불어 태평소 둘을 배치하여 연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그림이 성종 5년인 1474년에 펴낸 바 있는 <국조오례의·서례>의 속부악현도설에서는 종묘나 영녕전 헌가 때 태평소 둘을 배치하였고 전정헌가도설에서도 태평소 둘을 배치하고 있다. 적어도 세조 때부터 헌가에서 무무를 출 때 태평소가 연주되었던 것이다.

세종이 창제한 신악(新樂) 문무 보태평(保太平)과 무무 정대업(定大業)은 세조 때 간략하게 새로 정해지게 된다. 이때 종묘 제사의 초헌에서는 보태평을 연주하였으며, 아헌에서 정대업을 연주하였다. 성종 때 편찬된 <악학궤범>에서 태평소를 설명할 때, 정대업 중 첫 번째 악장인 소무(昭武), 여섯 번째 악장인 분웅(奮雄), 마지막 악장인 영관(永觀)에서 태평소를 겸용하였다고 하였다. 태평소는 문무와 달리 무공(武功)을 드러낸 악장에서만 사용하였던 것이다.

태평소는 마상병(馬上兵), 즉 군인이었다. 성종 6년인 1475년에 취라치(吹螺赤)가 640명이었고, 태평소는 60명이었으며, <대전>에 의하면, 취라치·태평소는 5번으로 나누어 4삭(朔)마다 상체(相遞)하였다. 네 달마다 서로 임무를 교대한 것이다. 취라치와 대평소는 종5품에 거관(去官)하였다. 태평소는 국가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전국에서 동원되어 행사를 마친 뒤에나 급료를 받았던 재인(才人)들과는 처지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송성섭 풍물미학연구소 소장



관련기사
[풍물의 미학] 16. 풍물과 군악 (3-1) 현행 풍물은 조선시대의 풍물과 차이가 있다. 현행 풍물은 무수한 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 풍물의 변천사를 살펴볼 때 가장 숙고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악기이다. 현행 풍물이 조선시대의 풍물과 현격하게 차이나는 악기는 바로 태평소(太平簫)와 북(鼓), 소금(小金)과 징(鉦)이다.현행 풍물에는 매우 독특한 악기가 있다. 풍물에 속하는 악기인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악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태평소이다. 태평소는 고려 시대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악기이다. 고려시대 당악에는 방향( [풍물의 미학] 15. 풍물과 군악 (2) 풍물(風物)은 “무릇 거동하실 때에 어가(御駕)의 앞뒤에서 고취하거나 칙사를 환영하는 연향(宴享)할 때에 사용되는(凡擧動時, 駕前駕後鼓吹及, 迎勅宴享時所用)<인조 25년 1647년>” 악기를 일컫는다. <세종실록·오례>의 고취에 의하면, 풍물은 방향(方響), 화(和)와 생(笙), 노래(哥), 비파(琵琶), 필률(觱栗), 우(竽), 월금(月琴), 적(笛), 현금(玄琴), 가야금(伽倻琴), 아쟁(牙箏), 대쟁(大箏), 향필률(鄕觱栗), 퉁소(洞簫), 해금(奚琴), 대적(大笛), 장고(杖鼓)라 할 수 있으며, 영조 41년인 1765년 영 [풍물의 미학] 14. 풍물과 군악 (1) 인간은 전쟁과 더불어 살아왔다. 전쟁은 인간의 존립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존립 기반이기도 하다. 생존의 지평인 대지를 확대하거나 수호하기 위한 전쟁은 인간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타인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전쟁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쟁은 인간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다.“전쟁이란 국가의 큰일이며, 삶과 죽음의 바탕이고, 존속과 멸망의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兵者,國之大事,死生之地,存亡之道,不可不察也).” <손 [풍물의 미학] 18. 풍물과 군악(4) 조선시대 쟁(錚)을 만들던 쟁장(錚匠)과 북을 만들던 고장(鼓匠)은 병조와 군기감에서 관리하였다. 쟁과 북이 군악기였기 때문이다. 세종 때 쟁장은 2명에서 4명으로 증원되었고, 고장은 6명이었으며, 세조 때 쟁장과 고장은 각각 15인이었다. <세종실록·오례>에서는 쟁은 정(鉦)이라고 하였고, "현녀(玄女)가 황제(黃帝)에게 청하여, 정요(鉦 )를 주조(鑄造)하여 소리를 흉내내게 하였다. 지금의 동라(銅 )가 그 유제(遺制)이다“라고 하였다.그렇다면 정은 어떤 악기일까? <세종실록·오례>의 군례서례·병기에서는 정이라는 악기를 그림으로 [풍물의 미학] 19. 풍물과 군악(5) 군사의 훈련에서 중요한 것이 형명(形名), 즉 깃발과 금고(金鼓)이다. 군사들이 앉고 일어서고 전진하고 후퇴하는 좌작진퇴(坐作進退)와 관련된 것이 금고다. 세종 3년인 1421년 7월 병조에서 진법과 그 운용에 관한 글에서 금(金)과 고(鼓)의 쓰임새를 밝힌 바 있는데, 현행 풍물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많다.우선 행진법(行陣法)에서는 중위(中衛)에서 각(角)을 한통(一通) 불고, 북(鼓)을 한통 치면, 각 위(衛)에서 이에 응하여 군사를 정돈하고, 중위에서 각을 불고 행진하라는 북을 진동하면, 우위(右衛), 전위(前衛), 중위( [풍물의 미학] 20. 풍물과 군악(6) 조선의 진법은 태조가 삼군부(三軍府)에 명령을 내려서 《수수도(蒐狩圖)》와 《진도(陣圖)》를 간행하게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태조 때 정도전이 일찍이 《오진도(五陣圖)》와 사시의 사냥하는 것을 그린 그림인 《사시수수도(四時蒐狩圖)》를 만들어 바치었는데, 당시 정도전·남은(南誾)·심효생(沈孝生) 등이 군사를 일으켜 국경에 나가기를 꾀하였기 때문이다.세종은 오례를 정비하였는데, 군례의 의식 중에는 해마다 9월과 10월 중에 도성 밖에서 십간(十干)의 갑(甲)·병(丙)·무(戊)·경(庚)·임(壬)에 해당하는 강일(剛日)에 대열하는 의식인 [풍물의 미학] 21. 풍물과 군악(7) 진법의 시원은 고대 중국인들이 사냥할 때에 몰이꾼과 사냥꾼의 배치 방법을 그린 것으로 추측되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문종 때 편찬된 <진법>의 서문에서 수양대군은 “연진(連陣) 중에서 외진(外陣)은 6,7,8,9의 수이고, 내진(內陣)은 5와 10의 수이며, 간진(間陣)은 1,2,3,4의 수이다. 이 법이 하도의 문(文)이다. 합진(合陣)의 중위가 내외를 포함하는 것은 5와 10이 내외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4위가 방진에 붙어있는 것은 1과 6, 2와 7, 3과 8, 4와 9가 각각 그 방(方)에 [풍물의 미학] 22. 풍물과 고취(8) 조선 후기 병법에 관한 지침서인 <병학지남>에서 깃발과 북 등의 호령은 ‘기고정법(旗鼓定法)’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내용이 매우 복잡한 편이다. 이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기고총결(旗鼓總訣)이다. 여기에서 총통으로 호령하는 법, 쇄납, 북, 징, 라, 바라, 나팔, 취타, 오방기 등의 호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호포(총통)의 신호는 명령이 내린다는 것이다. 한번 놓는 것은 명령이 내리거나 혹은 명령을 다시 고쳐 내린다는 것이다. 세 번 놓는 것은 정숙하게 하라는 것, 혹은 원수(元帥)가 장막에 장병을 소집하여 군사를 논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