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풍물은 조선시대의 풍물과 차이가 있다. 현행 풍물은 무수한 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 풍물의 변천사를 살펴볼 때 가장 숙고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악기이다. 현행 풍물이 조선시대의 풍물과 현격하게 차이나는 악기는 바로 태평소(太平簫)와 북(鼓), 소금(小金)과 징(鉦)이다.
현행 풍물에는 매우 독특한 악기가 있다. 풍물에 속하는 악기인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악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태평소이다. 태평소는 고려 시대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악기이다. 고려시대 당악에는 방향(方響, 16매), 통소(洞蕭·8구멍), 적(笛·8구멍), 필률(觱篥·9구멍), 비파(4줄), 아쟁(7줄), 대쟁(15줄), 장고(杖鼓), 교방고(敎坊鼓), 박(拍)을 사용하였고, 속악에는 현금(玄琴·6줄), 비파(5줄), 가야금(12줄), 대금(12구멍), 장고, 아박(牙拍·6매), 무애(無㝵), 무고(舞鼓), 해금(2줄), 필률(7구멍), 중금(中笒 ·12구멍), 소금(7구멍), 박을 사용하였으며, 고취에는 금정(金鉦), 강고 (掆鼓), 도고(鼗鼓)를 사용하였을 뿐, 태평소를 사용한 적은 없었다.
태평소라는 악기는 그 유래를 찾기 힘든 악기이다. 중국의 악기 관련 서적에도 호적(胡笛)이라는 악기는 있지만, 태평소라는 악기를 찾아볼 수는 없으며, 호적과 태평소는 다른 악기이다. 조선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태평소라는 악기 명칭은 어디서 유래한 것이고, 언제 도입된 악기일까?
태평소라는 악기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조선 태조 때였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3년인 1394년 10월 5일의 기사에 의하면, “서북면 도절제사 최영지(崔永沚)가 가족을 인솔하고 투화(投化)해 온 사람 한 명을 잡아서 보내 왔는데, 소(簫)를 잘 불었으므로 '대평소(大平簫)'라 하였다”는 것이다. 최영지(崔永沚)는 안주(安州)·의주(義州)·이성(泥城)·강계(江界) 등의 병마 도절제사 겸 안주 목사(兵馬都節制使兼安州牧使)였는데, 이때 소를 잘 부는 사람이 귀화하여 그를 '대평소'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으로부터 태평소는 북방 민족이 사용하였던 악기라고 할 수 있다. '대평소'는 '태평소'와 통한다.
태종 때부터 태평소를 익히기 시작하였다. 태종 16년인 1416년 7월 16일의 기사에 의하면, “태평소를 익히는 사람이 처음에는 29인이었는데 19명으로 줄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세종 8년인 1426년 3월 12일 중국에서 사신 윤봉(尹鳳)과 백언(白彦) 일행이 서울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이때 사신이 태평소를 가지고 왔다. 세종은 병조에 군기감에서 그 모양대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습(傳習)시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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