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스트 다슬러(1936~1987) 아디다스 회장을 처음 만났던 것은 1975년 동일의 비스바덴이었다. 1974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 연맹 선수권 대회인 42회 세계사격대회(1978년 개최)를 유치한 직후 대회 조직위 부위원장 자격으로 세계사격연맹 본부가 있던 비스바덴에서 만난 다슬러 회장은 한국에서 규모가 큰 국제대회를 멕시코와 경쟁 끝에 유치에 성공한 것을 축하하면서 아디다스도 기꺼이 대회 협찬 회사로 함께하겠다고 했다.
▶아디다스의 다슬러 회장은 당시 한국 사격연맹을 맡고 있던 박종규(전 청와대 경호실장) 회장과도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갔다. 1981년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일본의 나고야와 1988년 올림픽 개최지로 경합하고 있을 때 다슬러 회장의 판단과 지지는 결정적이었다. 30여명의 IOC 위원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친위대처럼 함께 지내던 아디다스의 다슬러 회장은 바덴-바덴에서 득표 활동을 하고 있던 박종규 회장과 필자를 만나 두 가지 제의를 했다. 그의 제의가 받아들여지자 아틀란틱 호텔 연회장에서 29명의 IOC위원들이 모여 서울 지지를 결의했다. 나고야를 52대 27표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다슬러 회장의 결단이 결정적이었다.
▶카타르 FIFA 월드컵에서도 아디다스의 저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월드컵 공인구(대회 공식공) '알리홀라'는 카타르 대회에서 심판 판정을 돕는 1등 공신 역할을 수행했고 아디다스는 월드컵 때마다 공인구를 독점 공급하여 글로벌 축구 브랜드로서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나이키와 퓨마 등 막강한 경쟁사들을 제치고 지난 50여년 동안 FIFA와 끈끈한 스폰서 관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아디다스도 호르스트 다슬러 회장 시절부터 코카콜라 등 글로벌 기업들을 후원자로 참여시켜 FIFA의 재정과 위상을 격상시킨 공로가 있기 때문이다.
▶카타르 정부는 22회 FIFA 월드컵을 준비하기 위해 2,200억 달러(286조원)를 7개 스타디움과 교통 인프라에 투입했다. 사막의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여름철에 개막되던 월드컵을 11~12월에 개최했지만 선수들과 관중들이 쾌적한 온도에서 뛰고 관전할 수 있도록 10여년간을 특수 냉방장치 개발에도 혼신의 힘을 다했다.
▶대한민국 팀은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였고 손흥민 선수의 기량과 인간성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우루과이와 가나 경기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한국 선수들의 모습은 월드컵 10대 명장면에 선정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와 프랑스간의 동점→연장전→동점→승부차기로 진행된 결승전도 전세계 축구팬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다. 이제 축제는 끝났다. 아시안게임과 FIFA 월드컵을 거쳐 올림픽 꿈을 꾸는 카타르는 국민의 90%에 이르는 외국인들의 인권 문제 그리고 스포츠를 통해 취약점을 가리려는 스포츠워싱(세탁)의 비판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하겠다.
/신용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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