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석의 지구촌./인천일보DB

영국의 세계적인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1889~1975)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문명의 발전은 위기와 난관에 슬기롭게 대처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인류 역사가 계속 진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과 응전의 과정에서 탄생·성장·붕괴·해체의 4단계 주기를 겪는다는 문명순환론을 주장했다. 그는 또 “역사적 성공의 절반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고 역사적 실패의 절반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집착(환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한마디로 위기를 극복하면 발전이 온다는 문명순환론을 설파한 토인비의 주장이 위로와 희망을 주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의 또 다른 명저 <역사의 연구>에는 “문명의 쇠퇴와 붕괴는 천재지변이나 전염병 등 자연환경적 격변과 도덕적 타락과 빈부격차 등 사회적 환경의 격변으로부터 온다”고 설파함으로써 빈부격차와 도덕적 타락을 천재지변이나 코로나 같은 역병에 버금가는 '위기'로 규정하고 있다.

▶2023년 새해를 하루 앞둔 2022년 12월31일자 뉴욕타임스에는 8명의 기자가 공동으로 집필한 '2023년을 낙관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 6가지 긍정적인 이유'라는 제목의 특이한 기사가 게재되었다. 2022년의 지구촌을 강타한 심각한 인플레이션, 코로나 확산, 기후변화 그리고 처절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당장 끝나지는 않겠지만 이 같은 난관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기사였다.

▶첫째는 공해가 없는 청정에너지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실용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었다. 핵융합기술로 앞으로 청정에너지를 무제한 공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첫해가 될 것이라는 낙관이었다. 두 번째는 월스트리트와 벤처 투자가들이 지난 2년간 700억 달러를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기술분야에 투자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빌 게이츠도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기후 관련 연구 개발비가 대폭 늘어난 것을 낙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세 번째는 로봇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 해도 인간을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힘들고 지루한 일을 맡는 정도라고 했다.

▶네 번째로는 어린이 빈곤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을 꼽았다. 지역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1993년 59%였던 빈곤율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의 낙관론은 암 백신 개발과 보급이 급속히 확대될 것이라는 제약계로부터 나오는 낭보였다. 세계적인 제약회사 모더나는 피부암 백신을 곧 보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마지막 여섯 번째로는 주4일 근무제도가 확산할 것이라는 것이 2023년 낙관론의 대미를 장식했다. 뉴욕타임스가 꼽은 새해의 여섯 가지 낙관론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견해이지만 토인비의 말대로 수년간 위기와 난관을 겪어온 인류에게 낙관적 예언이 모두에게 현실화되었으면 한다.

▲ 신용석 언론인.<br>
▲ 신용석 언론인.

/신용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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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의 지구촌] 1073회 NYT가 꼽은 2022년의 22대 사건 신문사 편집국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매년 연말이 되면 국내외 10대 뉴스를 선정하는 것이 과제였다. 필자가 조선일보사의 국제부장과 사회부장을 맡고 있던 1980년대는 국내외적으로 대형사건이 많았다. 국내적으로는 민주화를 위한 진통이, 국제적으로는 냉전 종식과 동구권 몰락이 주요 뉴스로 꼽히고 있었다. 매년 10대 뉴스를 선정하는 시각이나 안목도 대형사건 위주였던 것으로 기억된다.▶지난해 12월30일자 뉴욕타임스는 '2022년에 일어난 22가지의 획기적 사건들'이라는 제목으로 전면에 대형 특집을 꾸몄다. 2022년에 최 [신용석의 지구촌] 1072회 어둠 속의 크리스마스 축제 시장 프랑스 동북부 알자스 로렌 지방의 중심도시 스트라스부르크는 활기차고 매력적인 도시다. 독일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전쟁을 통해 뺏고 찾기를 거듭한 스트라스부르크는 독일 분위기가 풍기지만 프랑스의 애국심이 점철된 도시이기도 하다. 파리 특파원 시절 스트라스부르크를 자주 찾았던 것은 유럽연합(EU) 의회가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도시 자체가 지닌 독특한 매력 때문이었을 것이다.▶중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도 스트라스부르크가 자리잡은 알자스가 무대였다. 평소 지각을 자주하던 학생 프란츠가 그날도 학교에 늦게 갔는데 [신용석의 지구촌] 1071회 카타르 FIFA 월드컵의 명암(明暗) 호르스트 다슬러(1936~1987) 아디다스 회장을 처음 만났던 것은 1975년 동일의 비스바덴이었다. 1974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 연맹 선수권 대회인 42회 세계사격대회(1978년 개최)를 유치한 직후 대회 조직위 부위원장 자격으로 세계사격연맹 본부가 있던 비스바덴에서 만난 다슬러 회장은 한국에서 규모가 큰 국제대회를 멕시코와 경쟁 끝에 유치에 성공한 것을 축하하면서 아디다스도 기꺼이 대회 협찬 회사로 함께하겠다고 했다.▶아디다스의 다슬러 회장은 당시 한국 사격연맹을 맡고 있던 박종규(전 청와대 경호실장) 회장과도 친밀한 관계 [신용석의 지구촌] 1070회 '황해문화 117호'와 인천의 자부심 '3·1 운동 후 변호사 홍진(洪震) 등이 주도해 1919년 4월2일 만국공원(자유공원)에서 13도 대표자들이 극비리에 모였다. 이날 대표자회의에서는 국민대회를 조직하고 임시정부를 세워 각국에 조선독립의 승인을 요구할 것 등을 결의했다. 이후 1919년 4월11일 상해 임시정부가 탄생하였으며 한성, 상해, 노령 세 정부가 1919년 9월 통합되었다' 인천 자유공원에 '한성임시정부 13도 대표자회의 집결지'라는 비명의 내용이다.▶1907년 선각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인 창영초등학교에는 [신용석의 지구촌] 1069회 카타르 FIFA 월드컵의 감동 제15회 아시안게임은 2006년 12월1일 카타르의 도하에서 개막되었다. 당시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위원장을 맡고 있던 필자는 유치위 임직원들과 함께 카타르에서 10여일간의 유치 활동을 벌였다. 아시안게임 개막과 함께 OCA(아시아 올림픽평의회) 총회도 열렸는데 수많은 IOC 위원들과 전세계 체육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여서 향후 국제대회 유치를 희망하는 인천을 위시하여 기라성 같은 도시들의 제안 설명이나 준비 과정 보고가 진행되었다.▶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 희망도시인 러시아의 소치,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한국의 평창 등이 프레젠테 [신용석의 지구촌] 1075회 유럽연합을 다시 기웃거리는 영국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정점에 달했던 1960년대의 세계적인 뉴스 메이커는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었다. 나토를 탈퇴하고 핵 보유국이 된 프랑스는 위대한 프랑스를 꿈꾸며 독자적인 외교·군사 정책을 펼쳐 나갔다. 1963년 독·불 우호협력조약을 통해 독일과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를 만들고 독일과 함께 유럽통합의 꿈을 실현해 나간 것도 드골이었다.▶당시 프랑스를 위시하여 서독,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 총 6개국으로 1957년 출범한 유럽경제공동체(EEC)에 영국이 가입 신청을 했지만 프랑스의 거부권 행사로 좌절되었다. EEC 헌장은 신규 [신용석의 지구촌] 1076회 추모(追慕)와 보은(報恩)의 가치 파리에서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일보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간혹 공동묘지를 찾아보았다. 대부분의 공동묘지는 항상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시내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어 산책하기도 좋을뿐더러 유족들이나 추모객들의 화분이나 꽃다발들로 아름다운 분위기였다. 파리의 대표적인 몽파르나스와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와 함께 가장 큰 규모의 페르라쉐즈 공동묘지에는 특히 저명인사들과 예술가들의 묘소가 많았다. 특히 쇼팽이나 에디트 피아프 같은 음악가들의 묘소에는 항상 각가지 생화들이 많이 놓여있어 수십년간 지속하는 꾸준한 추모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파 [신용석의 지구촌] 1077회 파르테논 신전 조각품의 운명 파리의 중심부 콩코드 광장 중앙에는 이집트의 전설적인 람세스 2세 때 제작된 오벨리스크 석탑이 우뚝 서 있다. 이집트의 나일강 중류에 자리 잡고 있는 룩소르 신전에 있던 것을 4년이란 세월을 거쳐 프랑스로 옮겨온 것이다. 19세기 때 오스만 제국의 점령하에 있던 이집트 총리 무하마드 알리가 테이로 남작과 장 프랑수와 샹폴리옹을 부추겨 프랑스에 우호증진을 위해 선물로 기증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1845년 루이 필리프 1세는 오벨리스크 선물의 답례로 대형 벽시계를 선물로 주었다.▶길이 23m 대형 석탑을 프랑스로 운반하기도 [신용석의 지구촌] 1078회 창영초등학교와 인천의 품격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개교 50년이란 세월은 유구한 것이며 학교의 역사로서는 귀중한 것입니다. 대한제국 시대에 탄생하여 일제 지배하에서 고난의 성장을 하고 대한민국의 우수한 국민학교로서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창영국민학교는 50년의 역사와 더불어 한국 교육계의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3형제의 자식 관계로 1948년부터 창영학교의 학부형이란 영예를 지니고 있어서 창영학교를 칭찬함은 자화자찬하는 것 같지만 광복 직후 취임하신 조석기 교장을 중심으로 아동 훈육과 교육 연구에 다대한 공헌을 한 교직원들의 노력을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