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일보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간혹 공동묘지를 찾아보았다. 대부분의 공동묘지는 항상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시내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어 산책하기도 좋을뿐더러 유족들이나 추모객들의 화분이나 꽃다발들로 아름다운 분위기였다. 파리의 대표적인 몽파르나스와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와 함께 가장 큰 규모의 페르라쉐즈 공동묘지에는 특히 저명인사들과 예술가들의 묘소가 많았다. 특히 쇼팽이나 에디트 피아프 같은 음악가들의 묘소에는 항상 각가지 생화들이 많이 놓여있어 수십년간 지속하는 꾸준한 추모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파리 시내 곳곳에는 크고 작은 동상들과 기념조각물과 기념패들도 많다. 드골 대통령이나 빅토르 위고 같은 인물들의 동상과 개선문이나 혁명의 상징인 바스티유 기념탑에도 추모의 발걸음이 그치지 않으며 크고 작은 화환들이 놓여있다. 또한 파리 시내 건물에도 필자가 그동안 직접 확인한 것만도 총 750여개에 달하는 기념패가 부착되어 있는데 특히 나치 독일 점령 당시에 레지스탕스 운동 희생자 기념패에는 추모화가 오늘날까지도 꽂혀있다.
▶지난해 파리에서 만났던 유대종 주불 대사는 프랑스 국민과 정부가 대한민국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면서 코로나 사태 초기에 참전용사와 가족들에게 마스크와 의약품을 보냈던 반향도 의외였다고 했다. 또한 근년에 파리 대학 기숙사촌에 완공된 한국기숙사에 우리나라 유학생만이 아니라 타국 유학생까지 적극적으로 입주시키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타국 기숙사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던 한국이 보답하는 모습을 호의적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추모와 보은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프랑스에서 앞으로 한국의 품격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임무라는 유 대사의 말이 실감 나게 들렸다.
▶언론계 선배 김용원 회장과 음악인 신갑순 여사 부부가 창립하여 30년째 아침 강연과 문화행사를 계속하고 있는 한강포럼에서는 지난주 산남(山南) 김동길 박사를 추모하는 조찬 모임을 마련했다. 이날 회고 모임에는 조완규(전 서울대 총장), 김종열(김동길 박사가 창시한 목요서당 접장), 여상환(자유지성 300인 대표), 홍의빈(김동길 박사 비서실장)씨 등이 생전 김 박사와의 인연과 일화를 소개하면서 생애 마지막까지 국가와 민족의 바른길을 위해 쓴소리를 마다했던 거인을 추모했다.
▶김동길 박사가 남긴 수많은 말과 글 중에서 그의 좌우명과 같았던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의 시에 나오는 '검소한 생활, 고귀한 생각'은 필자도 좋아하는 명구이기도 하다. 정신적 가치를 외면한 채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당시 영국을 개탄한 시 구절과 함께 추모와 보은을 대표적 가치로 삼고 실천하고 있는 프랑스가 자주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신용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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