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편한 주안역 인근 신접살림 차린 부부
매입임대 선택…원도심 전세사기 간신히 피해
신혼희망타운, 주거·생활비 급등 부담에 포기
인천시 차원 실질적 청년층 지원 미미한 수준
선혜와 승우, 두 사람의 결혼에서 신혼집은 필요충분조건이나 다름없었다. 연애하면서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사이였지만 단 한 가지, 집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당장 집을 사기가 어려웠던 둘은 결혼을 늦춰야만 했다.
기획 <신혼N컷> 네 번째 주인공인 선혜와 승우는 대학생 시절 교생 실습을 하면서 만났다. 2015년 무렵이었으니 두 사람 모두 20대 중반 나이었다. 연애 초반부터 결혼을 결심하고도 혼인신고를 하기까지 꼬박 5년이 넘게 걸렸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선혜는 대전에서 대학교를 다녔다. 대전 출신인 승우는 부천에서 대학교를 나왔는데, 교생 실습은 모교에서 했다. 첫 만남은 대전이었고, 신혼 생활은 인천에서 시작했다.
청소년 지도사로 진로를 택한 선혜와 청소년 상담사 자격증을 가진 승우에겐 일자리가 필요했다. 집값은 맞벌이로 감당하면서 지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차량 구입도 후일로 미룬 상황에서 최우선 고려 대상은 지하철역이 가까워야 한다는 점이었다. 수도권, 그중에서도 인천, 원도심인 미추홀구 역세권으로 두 사람 시선이 모인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직과 이직을 거쳐 승우는 2019년 봄 인천으로 왔다. 선혜는 인천 서구 청소년 기관을 다니고 있었다. 대전에서 태어난 승우와 대전에서 대학교를 나온 선혜에게 인천은 취업에 유리한 도시였다. 인천에 집을 구하면 대중교통으로 서울·경기까지 수도권 취업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승우는 “인천에서 일자리를 못 구하더라도 지하철을 타면 서울로 출퇴근할 수 있다는 접근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승우 자취방은 미추홀구 주안역 남광장 쪽에 있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두 사람이 매입임대주택으로 신접살림을 차린 곳도 주안역 북광장 인근이었다. 한마디로 역세권. 인천을 동서로 가로질러 서울로 향하는 경인전철 노선 가운데 급행열차가 정차하고, 선혜 직장을 한 번에 오갈 수 있는 인천 2호선과 만나는 더블 역세권. 그리고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도심.
두 사람 생각은 인천에 터를 잡은 여느 청년들과 다르지 않았다. 인천연구원이 지난해 4~5월 인천청년네트워크 참여자 580명을 표본 집단으로 진행한 '2022년 인천시 청년·신혼부부 주거실태조사'에서 주택 마련 계획이 있는 청년과 신혼부부 가구가 선호하는 입지로는 역세권(30.4%), 직장 및 학교 근처(25.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건축업자와 임대업자, 공인중개사 등이 조직적으로 결탁한 사기단은 이런 수요를 표적으로 삼았다. 인천시는 이달 초 전세사기 피해 실태조사 결과, 이른바 '건축왕·빌라왕·청년빌라왕'이 소유한 주택이 인천 전역에서 2969채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83.6%인 2484채가 미추홀구에 몰려 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가 지난 2월 국회 토론회에서 공개한 피해 건물 분포 역시 주안역·도원역·제물포역으로 이어지는 원도심 역세권에 집중됐다.
두 사람은 원도심 역세권에서 조직적 사기 함정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전세와 월세 차이, 그뿐이었다.
'신희타' 포기하니 '내 집 장만' 꿈도 멀어졌다
선혜와 승우가 결혼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신혼집은 한순간 결혼에 가속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전환점은 2020년 2월 찾아왔다. 그때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 예비 입주자 모집 공고를 냈다. 신청 자격에는 '예비 신혼부부'도 포함됐고, 두 사람은 입주를 앞두고 혼인신고를 했다.
두 사람이 살고 있는 매입임대주택 면적은 44㎡(13평), 방 2개짜리 집이다. 승우는 “아이를 낳을 때까지 계속 산다는 생각으로 고른 집이 아니라서 크기는 신경 쓰지 않았다”며 “출퇴근이 편리해야 한다는 게 최우선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매입임대는 LH가 사들인 주택을 수리하고, 시세의 30~40%로 공급하는 형태다. 거주 기간은 최장 20년이다. 인천시 공공임대주택 현황 자료를 보면 매입임대주택은 LH와 인천도시공사 물량을 합쳐 1만8654채로 집계되는데 지역별 편중 현상이 나타난다. 주안역 인근을 선호했던 선혜와 승우에겐 다행일지 몰라도 전체 매입임대주택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6805채가 미추홀구에 있다.
인천연구원은 지난해 '인천시 청년주택 공급 방향' 보고서에서 “인천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2020년 기준 8.34%로, 서울(8.84%)·경기(9.77%)보다 낮아 지속적인 확대 공급이 필요하다”며 “청년계층을 위한 주거 정책은 행복주택·청년전세임대·신혼희망타운 등 맞춤형 주택 공급과 전월세 보증금 등 금융 지원이 마련돼 있지만 인천시 차원의 실질적인 지원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매입임대주택 공고를 접하고 정확히 2년 뒤, 선혜와 승우는 신혼희망타운(신희타) 공공분양 사전 청약 공고를 봤다. 공급 위치에는 인천 가정2지구가 들어 있었다. '60㎡ 이하'인 전용 면적으로 보면 방 하나와 화장실 하나가 늘어나는 정도였지만, 30년간 원리금을 상환하면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돈은 관리비를 포함해 100만원이 넘었다고 두 사람은 떠올렸다.
앞서 언급한 '인천시 청년·신혼부부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선혜와 승우가 고민한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실태조사에서 신혼부부 월평균 생활비는 227.7만원으로 집계됐다. 두 사람이 살고 있는 매입임대주택은 보증금 800만원에 월세는 20만원대 초반이다. 주거비가 다섯 배 급등하고, 신혼부부 월평균 생활비 절반에 이르는 금액을 지출해야 상황을 맞닥뜨린 셈이다.
신혼희망타운을 놓고 갈팡질팡했던 선혜와 승우는 부동산 경기가 내리막을 거듭한 올 초 결국 본청약을 포기했다. 사전청약에 당첨됐지만, 희망보다 불안이 앞섰다. 선혜는 “역세권도 아니고, 지금 사는 집과 면적이 큰 차이가 없는데 무리해서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며 “지출이 너무 많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선혜와 승우는 다음 달이면 혼인신고를 기준으로 결혼 3주년을 맞는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신혼부부 통계 결과' 자료를 보면 신혼부부 주택 소유 비중은 1년 차 30.7%에서 3년 차에는 41.1%로, 5년 차에는 51.9%로 상승한다. 조성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같은 해 '신혼부부의 일자리 및 주거 변동과 출산' 보고서에서 “신혼부부는 보증부 월세 및 전세에서 자가로 주거 이동을 하려고 하며 다세대주택 및 연립주택에서 아파트·주상복합으로 이동하는 패턴”이라며 “신혼집 마련 비용은 수도권과 지방 격차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난다. 수도권 신혼부부들의 주택 마련 비용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더욱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둘이서 살 만한 면적으로 원하는 위치에 공공임대주택을 구한 선혜와 승우 부부는 그나마 행운을 마주했을지 모른다. 인천에는 매입임대와 영구임대주택, 장기전세임대 등 공공임대주택 9만7331채(지난해 말 기준)가 있는데, 평균 대기 기간은 2년 2개월이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미대를 졸업하고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툰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yesilverly’ 작가. 그는 자신의 인스타 계정에서 청년의 고민과 걱정, 연애, 미술치료 등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으로서 집과 신혼, 결혼 등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신혼N컷> 기획 의도에 공감이 가서 협업을 결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인스타 아이디 ‘yesilverly’ 계정에선 작가의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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