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장망(國家將亡, 나라가 망하려면)
필유요얼(必有妖孼, 반드시 요물이 나온다)

<신라 말에 흉악한 괴물이 나타났다. 짐승은 짐승인데 빛은 검고 몸뚱이는 난 지 사흘쯤 되었다. 성미는 길들여진 듯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직 쇠만을 먹었다. 사람들이 헌 쇠그릇을 주니 천백 개라도 목구멍으로 눈 스러지듯 넘어갔다. 점점 자라 마소만큼 커지자 숨을 쉴 때마다 불을 내뿜어 주위에 가기만 하면 무슨 물건이든지 다 타버렸다. 사람들이 쫓아도 가지 않았다. 나무로 때리고 돌로 쳐도 꿈적 않았고 칼과 톱을 가지고 가도 먹이만 될 뿐이었다. 이에 사람들은 그놈을 '가히 말할 수 없는 놈'이란 뜻으로 불가설(不可說)이라 하였다. 불가설은 날마다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관가에서 민가까지, 임금 창고에서 농사지을 호미까지 쇠붙이는 아주 모조리 먹어치웠다. 더욱이 여러 해 흉년까지 들었다.>

이 이야기는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1762~1849) 선생의 <불가설설(不可說說, 가히 말할 수 없는 놈 이야기)>이란 글이다. <불가설설>은 나라가 망할 때 나온다는 '불가[사리]살이(不可殺伊)' 이야기이다.

0.7%로 승패가 갈렸다. 당선자는 있지만 승자는 없는 선거 결과였다. 여당이 된 저들에겐 환경, 양극화, 저출산, 연금개혁, 차별금지법, 경제문제…등 산적한 현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당이 하루하루 근신하며 정책을 가꿔 나가도 국민들은 시틋하게 여길 판이다. 국가장흥(國家將興) 필유정상(必有禎祥)이라고 나라가 흥하려면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보여야 한다. 그러나 상서로운 조짐은커녕 '이준석, 윤핵관 2선 후퇴론은 위장 거세쇼', '국민의힘 어쩌나, 쇄신 외친 날 외모 품평·술자리 논란 후폭풍' 등등 한 마디로 '고려 적 잠꼬대'같은 일들이 신문 지상에 난분분한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했던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권력에 취한 행태들이다. '尹대통령 지지율 27%', '국정수행 부정은 63%'가 현실이다. 오죽하면 영국 대표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대통령은 기본을 배울 필요가 있다(South Korea's president needs to learn the basics)'는 제목의 칼럼(8월 25일)에서 “윤 대통령이 무서운 속도로 흔들리고 있다”며 취임 100일 만에 지지율 급락 이유를 분석했다. 기사는 '인사 검증 실패, 사적 채용 논란' 등 국정 실패를 조목조목 언급하며 “기본 정치 스킬조차 못 갖춘 아마추어”라고 한다. 양손에 구두를 신고 한쪽 발에 넥타이를 맨 삽화는 더욱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이러한 데도 저들은 광기 어린 권력욕으로 여의도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6200만 원짜리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여사까지 출현하였다. 국민의 면전에서 거리낌 없는 방자함으로 무장하고 불가살이가 쇠 먹듯 권력 주무르기를 떡 먹듯 하니 국격은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입은 말을 하라는 것인데 오로지 쇠붙이만 먹어치우듯, 권력을 주어 나라를 잘 다스리라 하였더니 제 배만 불리려는 불가살이식 이익단체가 되어 버렸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유사한 작은 사고와 사전 징후가 선행한다는 경험 법칙)'을 몰라도 '탄핵(彈劾)'이란 말이 곧 우리들의 안전에 전개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든다. 이쯤이면 지금 이 나라에 저 불가살이가 나타난 것 아닌가.

추재 선생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본다. “<중용>에 이르기를 '나라가 망하려 한다면 반드시 요물이 나온다'하였다. 불가설이 나온 것은 장차 신라가 망할 징조였음인가. 천하에 임금 된 자가 처음에는 소인을 가까이하여 길러 내서는 그 세력이 먼 들판의 불길처럼 어찌할 수 없게 된다. 비록 그가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크게 해치는 불가설이 되는 줄 알지만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소인을 불가설(不可褻,가히 가까이 말아야할 놈)이라 한다.”

선생은 '나라가 망하려면 반드시 요물이 나온다'는 <중용> 제24장의 말을 인용하였다. 불가살이가 나라를 망할 징조임을 분명히 하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도 '고려(송도) 말년 불가사리'라는 말이 있다. 몹시 나쁜 짓을 하나 아무도 그것을 말릴 수 없다는 뜻이요, 어떤 좋지 못한 일이 생기기 전의 불길한 징조로 쓴다. 선생은 이 불가사리를 음의 유사를 이용하여 '불가설(不可說)=불가설(不可褻)'을 만들었다. 여기서 불가사리는 '소인(小人, 도량이 좁고 간사한 사람)'이다. 선생의 견해대로라면 소인은 '가히 말할 수 없는 놈'이요, '가히 가까이 말아야할 놈'이다. 선생은 임금 옆에 붙은 소인을 불가사리라 하였다. 이 불가살이 이야기를 <불가설설>이라 제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선생과 대면할 수는 없지만 19세기, 세도정치로 썩어가는 조선의 멸망을 '불가살이'로 읽었다고 추론해도 무방하다.

불가사리를 한자로 옮기면 '불가살이(不可殺伊)'이다. 아무리 해도 죽거나 없어지지 않는 괴물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선생이 말하는 소인의 무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니 이 또한 참으로 섬뜩하다. 저 여의도에 널린 게 정치 무뢰배요, 저들의 행태가 소인배 무리이기에 말이다. 이쯤이면 선조들은 책문(策問)을 하였고 대책문(大策文)을 올렸다. 책문은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이니 이러하다. 책문: '나라에서 불가살이를 영원히 없앨 방안을 강구하라!'

(다음 편에 계속)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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