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개방적 해양정책·교역 통해 위상 높아져
'쇄국' 일관 조선, 시대적 흐름 놓쳐 망국 이르러
바다 중요하게 여긴 제국 '문화 대국'으로 성장
한국, 천년 전 宋처럼 30년간 중국에 문명 전파
천여 년 전 동아시아는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高麗),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이 세운 요(遼), 5대 10국을 마감한 송(宋)이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고 있었다.
고려와 요는 압록강 일대를 경계로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항상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였다. 고려는 '다물' 정신으로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고자 하였지만, 요의 장수인 소손녕이 현재의 중국 랴오닝성 요양을 차지하고 고려에 항복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자 고려의 장수 서희가 소손녕을 만나 “압록강 안팎 또한 우리 땅”이라는 논리를 펴가며 외교적으로 담판을 벌여 압록강 동쪽 6개 주의 땅을 돌려받았다.
송은 고려의 국력을 재평가하고 요의 배후에 있는 고려를 우호세력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1123년, 70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사신단을 고려에 파견하였다. 하지만 고려는 12세기의 동아시아 정세를 잘 판단하고 있었다. 따라서 송과의 동맹관계만을 중시하지 않았다. 송은 국력이 쇠약하고 요는 강성하였다. 요에 대항하는 여진도 급성장하고 있었다. 고려는 냉혹한 국제관계 속에서 네 나라가 균형을 유지하면서 공존할 수 있도록 등거리외교를 펼쳤다.
송의 휘종은 연운16주를 되찾고자 여진의 금과 동맹을 맺어 요를 멸망시키는데 성공하자 곧바로 금과의 협약을 깨버렸다. 이러한 송의 정책은 금의 공격을 야기해 두 황제는 포로로 끌려가고 수도를 카이펑(開封)에서 항저우(杭州)로 옮기는 국란에 처하게 된다.
고려는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도 실리를 중시하는 외교와 국방정책으로 다자간 교류와 외교관계를 펼치며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유지시켰다. 또한 해상실크로드를 통한 활발한 교류를 통해 일본, 동남아는 물론 멀리 이슬람 지역에 이르기까지 '코리아'의 명성을 알렸다. 고려는 황해를 아우르는 개방적인 해양정책과 고려 상인들의 교역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동아시아를 넘어 서방에까지 그 위상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조선은 바다를 중시하지 않은 까닭에 동아시아의 시대적 변화를 읽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냈다. 16세기 최강이었던 이순신의 수군은 19세기에 이르면 감축을 넘어 군선 무용론이 회자될 만큼 추락하고 말았다. 해금정책과 수군의 약화는 우리의 바다를 포기하는 것이었으니 그 결과는 명약관화한 것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은 “고려는 송과의 해상무역을 장려하여 물화(物貨)는 물론 동아시아 정세도 파악하였는데, 조선은 통상을 하지 않아 명이 망한 후 항거하였던 '삼왕(三王)의 일'도 모른 채 소중화주의에만 매몰되어 있다”며 한탄하였다. 조선은 이후에도 쇄국으로 일관하였다. 조선이 바다를 등한시한 결과는 연암이 우려했던 것보다 더 큰 망국의 결과로 이어졌던 것이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정세도 12세기 서긍의 고려 방문 시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남북 분단의 장기화로 인한 육상교역의 어려움, 주변 국가들과의 이해관계 중첩에 따른 외교적 판단과 국가정책 실행의 엄중함, 고비용의 항공보다는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해상교역 증대의 필요성 등이 천년 전의 시대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역사는 옛이야기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열어가는 중요한 지렛대이다. 우리의 역사를 살펴볼 때 황해를 적극적으로 경영한 국가가 문화적으로도 우월한 유산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해양국가다. 전 세계적으로 해양의 가치와 개발이 중요한 논점이 되는 이때, 우리도 국가 발전에 필수적인 요건인 해양정책을 보다 공고히 하여야만 한다.
황해는 동아시아 문명이 상호 교류하며 발전하는데 있어서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황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국가가 튼튼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명을 이끌었다. 황해의 동쪽에서는 고조선과 백제가 그러했고, 통일신라와 고려가 황해를 누볐다. 서쪽에서는 한, 당이 그러했고, 송이 전성기를 누렸다. 바다를 중요시한 제국이 개방과 포용을 바탕으로 문화대국이 되었고 이웃 나라들은 앞다퉈 선진 문물과 문명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황해는 문명 창출의 원동력이자 문명 전파의 고속도로였던 것이다.
이는 비단 과거만의 법칙이 아니다. 한중 양국이 황해를 중심으로 동방 문명을 창출해 온 수천 년의 역사는 서세동점의 아픔을 이겨내며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천년 전, 송이 고려에 선진적 문명을 전해준 것처럼, 지난 30년은 한국이 중국에 선진적 문명을 전해주었다.
이제 양국은 그동안 축적된 인적·물적 교류를 바탕으로 21세기 신문명 창출에 필요한 보다 진일보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전 지구가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재앙에 위기를 맞고 있는 오늘, 인류가 평화로운 공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홍익인간'을 철칙으로 삼는 새로운 문명의 실천이 절실하다. 이러한 문명은 동방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며 황해에서 창출할 수밖에 없는 문명이다. 그러하매 한중 양국은 수교 30주년을 징검다리로 삼고 신뢰와 우호로 호흡하며 새로운 인류 문명을 열어가는 백년지기(百年知己)가 되어야 한다.
대중 교류 '길목' 인천, 한반도 평화 꿈꾸다
“내년 서긍 방문 900주년…중국-남-북 항해 행사 해 볼만”
인천은 한반도의 배꼽에 위치하였다. 한강과 예성강을 아우르는 길목에 위치하여 대중국 교류는 물론 향후 남북협력시대를 열어갈 평화지대로서의 터전도 갖춘 곳이다. 천년 전의 고려가 다자외교와 교류를 펼치며 전 세계에 코리아의 위상을 알린 것처럼, 인천은 21세기 황해로드를 열어가는 중심지이자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끌어갈 원동력을 두루 갖춘 도시다.
인천은 1650년 전인 백제 근초고왕 때부터 황해를 누비며 활발한 교류를 하였다. 이때부터 시작된 인천의 황해로드는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시기도 쉬지 않고 한반도의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왔다. 해양도시인 인천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그 어느 도시보다 월등하였기 때문이다. 인천은 이러한 중요성을 숙지하고 황해로드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여 왔다. 그 결과 인천은 중국과의 수교 이전부터 황해를 오가며 새로운 한중관계의 물길을 열었다.
인천은 황해로드를 통해 남북 화해와 협력도 이끌어 갈 수 있는 도시로서도 적격이다. 한강과 예성강의 하구인 강화도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이곳을 오가던 많은 배가 난파된 곳이다. 이곳에 묻혀 있는 난파선과 유물을 남북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발굴하는 것은 학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황해로드의 분단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듦으로써 21세기 인류 문명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경호 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도 고려도경 콘텐츠를 남북한 교류의 지렛대로 삼자는데 동의한다.
문 교수는 “현재 중국은 물론이고 북한하고도 관계가 굉장히 안 좋은데 고려도경은 세 나라를 다 연결해 줄 수 있는 좋은 문화콘텐츠”라며 “내년은 송의 서긍이 고려를 방문한 지 900주년이 되는 해인데 이를 기념해 중국 명주에서 출발해 한국 서남해안과 북한의 벽란도로 들어가는 해상교류 퍼포먼스를 하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남북이 만나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되고, 대화가 안 되면 상종하지 못할 대상이 된다”면서 “지금 안 만나고 있는 건 굉장히 위험한 것이고, 그래서 고려도경 퍼포먼스를 통해 정치적 문제를 문화로는 부드럽게 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중 양국은 지난 30년간 우호적인 관계 속에 비약적인 교류를 이뤄왔다. 양국은 이제까지의 관계를 확고한 믿음으로 승화시켜 상호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며 수교 100년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이는 양국의 번영뿐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에도 매우 중요한 것이며, 인천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적격자임은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천일보 신고려도경 특별취재팀
남창섭 기자 csnam@incheonilbo.com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허우범 교수 appolo21@hanmail.net
신춘호 박사 docu8888@daum.net
설재욱 대표 media_29@naver.com
※ 이 기사는 2022년도 인천광역시 지역언론지원사업으로 시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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