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의 '탄소중립 생활' 쉽진 않았지만 희망을 보다

◆인천일보 이순민 기자 탄소중립 체험기

△4월4일-EM 세제·천연 수세미로 설거지
△4월5일-로컬푸드로 '탄소 발자국' 지우기
△4월6일-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4월7일-실내 난방·전기밥솥 보온 기능 끄기
△4월8일-즐비한 담배꽁초…'줍깅' 도전 실패
△4월9일-뒤엉켜버린 '랜더스필드' 자원순환
△4월10일-물티슈, 탄소중립 생활 실천 '걸림돌'

오늘의 날씨는 기온과 습도로 모든 게 설명되지 않는다. 외출하기 전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일은 필수가 됐다. 건조해진 대기에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먼 나라 일처럼 여겨졌던 폭염과 폭우는 일상을 위협하고, 장마와 가뭄이 교차한다. 이상 기후는 이제 이상 현상이 아니다. 대통령 소속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자료를 보면, 지난 10년간(2009~2018년) 국내에서만 기상 재해로 이재민 20만명이 발생했다. 기후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인천일보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시행에 맞춰 특별기획 ‘1.5℃의 약속, 탄소중립 안내서’를 연재한다. 전환의 시대를 맞은 산업계, 탈탄소에 직면한 화력발전소, 에너지 효율화 과제를 떠안은 건물, 온실가스 감축이 불가피한 수송 현장을 기록한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흡수량을 높여 균형을 이루는 탄소중립은 ‘환경특별시’를 선언한 인천이 앞당길 수 있다.

‘탄소’가 여전히 낯설어도, ‘중립’이라는 개념이 모호해도 탄소중립은 멀리 있지 않다. 일상에서 당장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선택들이 놓여 있다. 기후변화로 에너지 사용이 늘고, 그로 인한 탄소 배출이 기후변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이 안내서는 미래도, 다음 세대도 아닌 지금 우리의 이야기다.  

2018년 인천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승인됐다. 탄소중립기본법은 지난달 25일 시행됐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흡수량을 높이는 탄소중립은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지금 우리는 2050년 탄소중립으로 향하는 길 위에 서 있다.

국제사회와 정부 차원에서 논의가 활발하지만, 탄소중립은 시민에게 여전히 낯선 단어다. 재생에너지나 친환경차처럼 시기상조인 변화, 일상과 관계없는 '외부'의 문제로만 여겨지기도 한다.

특별기획 '1.5℃의 약속, 탄소중립 안내서'를 매주 한 차례, 총 12회에 걸쳐 싣는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에너지·산업·수송 등 분야별 대응 과제를 짚는다. 지역사회·지방정부가 함께 만들어갈 실천의 약속도 담는다. 길을 안내하기에 앞서 일주일간 탄소중립 생활을 체험하며 적은 일기를 펼친다. 결국 변화는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플라스틱으로부터의 해방

탄소중립 생활 실천을 선언한 4일 월요일, 출근 준비를 하며 플라스틱 통에 담긴 샴푸로 머리를 감았다.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 있는 치약을 짜서 플라스틱 칫솔로 양치질을 했다. 개수대에 쌓인 그릇은 플라스틱 용기에서 나온 세제를 아크릴 수세미에 묻혀 설거지했다. 플라스틱으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했다. 한국환경연구원 자료를 보면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은 국민 1명당 132.7㎏(2015년 기준)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점심시간을 활용해 회사 근처 배다리에 문을 연 제로웨이스트(쓰레기 최소화) 가게 '슬로슬로'를 찾았다. 유용 미생물(EM)로 만든 친환경 주방세제를 누군가가 놓고 간 유리병에 따랐다. 비누 모양으로 문질러서 쓰는 샴푸바와 고체 치약도 샀다. 집으로 돌아온 저녁, 천연 수세미로 닦아낸 그릇에선 뽀드득 소리가 났다. 플라스틱과 작별하며 탄소중립과 마주했다.

 

'푸드마일리지' 줄이기

'탄소 발자국'이라는 개념이 있다. 식재료 생산과 수송,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량을 일컫는다. 수입산처럼 멀리서 온 음식을, 열을 가하고 요리해서 먹을수록 탄소 발자국이 쌓인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31%가 먹거리에서 나온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국내 전체 온실가스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9% 수준이지만, 이는 생산만을 고려하고 유통·소비 부문은 제외된 수치다. 한국의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도 각각 45.8%, 20.2%(2020년 기준)에 그친다.

5일 퇴근을 한 뒤 집에서 걸으면 10분 거리인 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에 갔다. 쌈 채소와 오이를 샀다. 생산지는 집 근처였다. 매장에서 만든 두부는 따끈했다. 이날부터 푸드마일리지(식품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거리)를 줄이려고 생채식 위주로 저탄소 식단을 유지했다. 육식도 자제했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소고기 1㎏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국내산 27.75㎏, 수입산 108.2㎏에 이른다. 딱 하루, 아이가 먹고 남긴 햄으로 기름기를 채웠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도 탄소중립 실천이라고 합리화했다.

 

전환기를 맞은 버스 행렬

6일 출근길에 무심코 엘리베이터를 탔다. 전날 애지중지했던 다회용 컵도 빠뜨리고 나왔다. 익숙했던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휘발유차를 뒤로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고양시 백석동 집에서 인천일보 본사까진 35㎞, 차로 1시간 남짓 걸린다. 휴대폰으로 최적 경로를 확인해보니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50분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국내 수송 부문의 이산화탄소 배출 비중은 14%다. 전체 자동차 가운데 자가용은 92.4%를 차지한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친환경차가 100만 대를 돌파(116만 대)했지만, 비중은 4.7%에 그친다.

퇴근길 버스를 기다린 계산역 정류장에선 정차 중인 전세버스가 배기가스를 내뿜었다. 이어 '매연 없는 천연가스버스'라는 문구가 적힌 시내버스가 도착했다. 소음도 없이 미끄러지듯 멈춰선 전기버스가 뒤따랐다. 전환의 시대를 실감했다. 출퇴근부터 현장 취재까지 대중교통만 이용한 이날 1만2122보를 걸었다. 전날 만보기 앱에 찍힌 숫자는 '4135'이었다.

 

 

에너지 효율은 좋아졌지만

7일 연차를 내고 집에 머물렀다. 육아와 살림을 혼자 떠맡는 날이었다. 난방 스위치부터 껐다. 꽃샘추위 때문에 아이가 머무는 공간은 실내온도를 23도로 유지하고 있었다. 환경부가 지난해 발간한 '탄소중립 생활 실천 안내서'를 보면 첫 번째 수칙이 “난방온도 2도 낮추고 냉방온도 2도 높이기”다.

가장 손쉬운 실천이자, 전력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변화는 전기밥솥 보온 기능을 쓰지 않는 것이었다. 보온 기능 사용을 하루 평균 9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이면 연간 전기료를 5만6547원이나 절감할 수 있다. 국내 전체적으로는 3257만6154그루의 나무를 심는 효과가 있다고 환경부는 추산한다.

집안을 둘러보니 건조기와 에어프라이어, 공기청정기 등 몇 년 새 구입한 가전제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전력 전력데이터 개방포털시스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인천 주택용 전력 사용량은 469만4206㎿h였다. 10년 전인 2011년 348만9296㎿h에서 대폭 늘어난 수치다. 전기요금으로 보면 2011년 4196억원에서 지난해 5208억원으로, 1000억원 넘게 급증했다. 조경두 인천기후환경연구센터장은 “가전제품 하나하나의 에너지 효율은 좋아졌는데도, 전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제품들이 쏟아지면서 전력 소비는 오히려 증가 추세”라며 “탄소중립을 위해선 재생에너지 확대도 중요하지만, 에너지 절감과 효율화로 소비 총량을 줄이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허무하게 끝난 '줍깅'

 

기사 마감이 없는 휴무일인 8일 오후, 아이를 서구 검암동 부모님 집에 맡기고 난생처음 '줍깅(줍다+조깅)'을 하러 나섰다. 목적지는 1.5㎞ 떨어진 아라뱃길 시천가람터. 장갑을 끼고, 종이가방을 들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니 길가에는 담배꽁초가 셀 수 없을 만큼 떨어져 있었다. 담배꽁초는 플라스틱 쓰레기다. 미세플라스틱이 들어 있는 담배꽁초는 빗물받이 등을 통해 바다로 흘러든다. 지난 2020년 환경운동연합은 해안 쓰레기를 조사한 결과, 담배꽁초가 가장 많이 수거됐다고 밝혔다.

조깅은커녕 밭일 수준으로 담배꽁초를 주워야 할 판이었다. 담배꽁초는 포기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 위주로 종이가방에 담았다. 어린이공원에선 컵라면 용기와 맥주병이 나뒹굴었다. 검암역에 닿기도 전에 종이가방은 쓰레기로 가득 들어찼다. 불과 30여분 만에 음료수 캔과 병 17개, 일회용 컵 6개, 페트병 4개, 컵라면 용기 3개, 비닐 쓰레기 3개가 모였다. 벚꽃이 만개한 아라뱃길은 보지도 못한 채 줍깅은 허무하게 끝났다.

 

2만 관중이 들어찬 야구장

9일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인천 SSG 랜더스필드'로 향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한 김광현 선수가 마운드에 오른 날, 야구장에는 2만1005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일회용기에 음식을 들고 나르는 행렬도 이어졌다. 일회용 응원 용품인 막대풍선은 사라졌지만, 관중석마다 맥주 캔과 일회용 컵이 꽂혔다. 복도에서 어렵게 마주한 투명페트병 수거함은 비어 있었다.

일반쓰레기와 플라스틱, 캔으로 나뉜 분리수거함에는 뒤섞인 폐기물이 사람 키만큼 쌓였다. 경기가 끝난 야구장에는 2만 관중이 배출한 쓰레기 더미가 남았다. 이튿날 인천시와 SSG 랜더스가 업무협약을 체결해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확대하고, 자원순환 캠페인을 진행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비관보다 낙관을

마지막날인 10일 아침, 빨랫감 바구니가 일주일간 입은 옷들로 채워졌다. 개인 쓰레기를 모은 상자를 보니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 등의 폐기물을 제외하면 비닐 쓰레기가 대부분이었다. 일주일 동안 먹고 소비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탄소중립 생활 실천에서 걸림돌은 엉뚱하게도 물티슈였다. 육아하면서 기저귀를 갈 때, 아이가 흘린 음식물을 치울 때 등등 물티슈는 필수품이었다. 플라스틱 계열 소재로 만들어진 물티슈는 재활용되지 않는다. 행주와 가제 수건으로 대체하려고 했는데, 물티슈 사용을 '제로화'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차량 운행도 최소화했지만, 주행 거리는 189㎞가 찍혔다. 결국 반성문으로 끝맺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다만 일주일이 지나서도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일회용 컵을 더 이상 쓰지 않고, 전기밥솥은 여전히 꺼진 상태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은 말문이 트일 무렵, 페트병에 적힌 세모 모양 화살표를 가리키며 “재활용”이란 말을 내뱉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 전등이 켜져 있으면 “지구가 아파”라면서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한순간에 온실가스 배출을 멈출 수는 없지만, 비관하기보다 낙관할 이유가 더 많았다.

/글·사진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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