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UNESCO)가 1980년에 내놓은 '예술가의 지위에 관한 권고'는 첫머리에서 '예술가'를 이렇게 정의한다. “어떤 협회에 관계하고 있는지와는 관계없이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거나 인정받기를 요청하는 모든 사람.” 한마디로, 자기 생활의 본질이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술가라는 것이다. 그 앞에 몇 줄의 설명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다시 읽어 봐도 저 한 줄로 수렴된다.
이솝 우화 <개미와 매미>든, 변형 버전인 <개미와 베짱이>든, 매미와 베짱이는 예술가인가 아닌가. 그들 생활의 본질이 예술 장르인 노래(연주)였으니, 예술가 맞다. 삶의 필수요소인 문화예술을 위해 여름내 수고한 예술가의 몫을 인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매미와 베짱이의 사회 기여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관점은, 2차원 평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개미의 시각이다.
민선 8기 경기도지사가 예술인 기회소득이라는 걸 주자고 한다. 경기지역의 예술활동증명유효자 가운데 전체 중위소득의 120% 이하인 예술인들에게 연 150만원씩 지급하자는 내용이다. 유네스코 정의처럼 “나 예술가!”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도 아니고, 예술인복지법 상 예술활동증명을 유효하게 발급받은 사람, 그것도 기준을 정해, 고작 월 12만5000원씩 주잔다. 예술과 예술인의 사회적 가치를 그 정도라도 인정하니 다행이라 해야 하나, 아직도 이 수준인가 한탄해야 하나.
하여튼 이 마저도 경기도의회에서 막혔다. 도의원 일부가 '혈세낭비'라고 반대하는 바람에 조례 통과가 무산됐다. 설령 도 조례가 제정돼도 시·군 조례가 있어야 예술인 기회소득이 실현될 수 있는데, 현재 관련 조례를 제정한 지역은 1곳뿐이고, 조례를 준비 중인 12곳 기초의회에서도 도의회처럼 반대 의원들이 적지 않아 전망이 어둡다. 예술활동으로 월 100만원을 벌지 못하는 허다한 예술인에게 소정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일이 정말 세금 낭비일까.
기회소득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만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대상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일정 기간 소득을 지원해주자는 개념이다. 어떤 일(직종)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가, 보상은 제대로 받고 있나가 핵심이다. 그러므로 논쟁 구도는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고”가 아니라 “누구를 왜 주어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가치를 드러난다.
사족 : 기본소득과 안심소득도 나름 장점이 상당하다. 어느 게 바람직하고, 유효하며, 실현 가능성이 큰지 깊이 성찰할 공론장이 더 열려야 한다.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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