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인간과 고라니가 공존하는 길은 없을까? 요즘 광교산 일대에 고라니가 출몰해 농작물 등이 피해를 본다는 소식에 마음이 언짢다. 지난해 10월 세종시 세종수목원이 고라니 12마리를 총기 사살해 물의가 빚어졌다. 멸종위기종인 야생 동물을 그리 잔혹하게 포획할 수 있느냐는 시민 항의가 잇따랐다. 수목원 측도 할 말이 없지는 않았다. 2020년부터 고라니가 떼를 지어 다니면서 애써 심은 식물들의 새싹을 먹어치웠다. 고라니는 유해조수이기도 하다.

식물보호를 위해 말 못하는 동물에게 총을 써야 하는 아이러니 상황. 세종수목원이 찾아낸 해법은 울타리를 정비하고 그 바깥으로 '고라니숲'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고라니가 좋아하는 먹이를 심어 수목원 경계로 들어오는 일을 예방하자는 취지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라 한다. 그런데, 광교산에는 울타리를 치고 '고라니숲'을 별도로 가꿀 곳이 마땅찮으니 딱하다.

영어로는 물사슴(water deer), 중국어로는 어금니노루(牙獐)이라 부른다는 고라니는 중국과 한국에만 주로 서식한다. 중국에 1만 마리, 한국에 10만 마리쯤으로 추정된다. 한국 개체가 압도적인 이유는 상위 포식자가 없는 탓이다. 귀한 한국 동물로 대접받아야 할 듯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데다 울음소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오히려 환영받지 못한다. 야간에 도로로 뛰어들어 운전자를 놀라게 하고 '로드킬'을 당하는 대표 동물이기도 하다.

밤사이 우리 밭을 온통 헤집어놓았다거나 할아버지 산소를 들쑤셔 놓았다면 앞장서서 때려잡으러 나설 테다. 10만 마리나 된다니 몇 마리쯤 해치워도 문제없다는 생각도 할 게다. 해마다 자치단체들이 포상금까지 걸고 고라니 포획에 나서는 이유가 이해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는 10년도 안 가 한국 고라니가 완전히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북미 지역의 '나그네 비둘기'는 19세기에 무려 50억 마리나 살았으나, 불과 반세기 만에 멸종되고 말았다. 보존운동이 뒤늦게 시작되었으나, 1914년 9월 1일 오후 1시에 마지막 암컷 한 마리가 죽었다.

누가 한 말인지 잊었으나, 공존은 도덕적 당위가 아니라 시대의 명령이다. 200% 공감한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12년 전인 2011년 수원시는 이제부터 대한민국 환경수도 역할을 하겠다고 스스로 선언했다. 당시 실천과제에 '생태서식지 보존'이 들어 있었다. 고라니와 시민이 함께 사는 광교산. 지혜를 모으면 못 찾을 리 없다고 믿는다. 일단, 광교산 고라니 서식밀도부터 과학적으로 파악했으면 좋겠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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