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3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실사단이 수원을 방문했다. 대한민국은 창덕궁과 수원화성(사적 3호)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밀고 있었다. 수원시가 적극적으로 나선 덕에 실사단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돌아갔다. 하지만 6월 들어 창덕궁은 가능하지만 화성은 어려울 것 같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심재덕 당시 수원시장은 즉시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파리 행 비행기를 탔다. 직접 가서 심사위원들을 설득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심 시장은 출국 전 역사학자 사운 이종학으로부터 건네받아 온 <화성성역의궤> 영인본을 펼쳐 보이며 심사위원들을 각개격파식으로 설득해 나갔다. 축조 당시 설계도와 정밀한 공사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므로 원형 복원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화성이 갖는 역사적 가치는 인정했으나, 축조 200년 세월이 흐르면서 성곽 바로 옆에 다닥다닥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 여전히 난색을 보였다.
집행위원회 결정을 앞두고 열린 만찬 자리에서 심 시장은 이렇게 연설했다. “수원시민들은 저에게 개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화성 성곽 안에 사는 사람들의 개발요구는 너무나도 심합니다. 화성 안은 문화재보호법 때문에 집을 높이도 못 짓고, 못하나 제대로 박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만약 여러분들이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지 않으면 곧바로 수원으로 돌아가 화성을 허물어 버릴 것입니다.” 이틀 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이사회는 등재 권고 결정을 내렸다. (당시 동행 취재했던 박두호 기자의 회고.) 심 시장을 비롯해 역사문화유산의 가치를 깊이 이해했던 인물들은, 수원을 탄생시킨 역사 상징이 수원의 미래 또한 바꾸리라는 믿음을 밀고 나갔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정식 등재 이후 화성 일대는 크게 변모했다. 팔달문 좌우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전 구간이 복원되었고, 행궁 또한 제 모습을 찾았다. 행궁 앞 주택과 건물을 모두 헐어 탁 트인 광장이 조성됐다. 현재의 장안공원과 화서문 일대를 비롯해 성곽의 경관을 저해하던 집들도 차례로 철거되었다. 화성과 행궁이 제 모습을 찾으면서 수원의 자부심은 뿌리가 깊어졌다.
최근 들어 화성 일대 문화재 보호구역을 직선거리 500m에서 200m로 줄이려는 움직임이 진행 중이라 한다. 심 시장이 토로했던 개발요구가 여전하다는 얘기다. 압력에 밀려 거리를 축소하기 시작하면 조만간 더 줄이자는 주장이 등장할 게다. 지금 필요한 것은, 500m 규정을 그대로 두면서 화성과 수원의 더 괜찮은 미래를 그려가는 상상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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